[박순욱의 한국술 탐방│전통술 데이터베이스(DB) 구축한 IT 전문가 김재형 한국술문헌연구소 소장] "7년간 주방문(레시피) 3500개 정리… 포털서 무료 공개"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2024. 5. 2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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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형 한국술문헌연구소 소장 연세대 컴퓨터과학 학·석사, 전 LG종합기술 연구소 연구원, 전 다음재팬 대표, 전 다음게임 대표, 전 투어익스프레스 대표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서는 요즘 더 잘 알아주는 인공지능(AI)을 연구했다. 1993년, 국내 굴지의 대기업 기술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 AI 가전 개발 업무를 맡았다. 그 후에 더 잘나갔다. 대학 1년 선배인 이재웅 벤처사업가(전 다음커뮤니케이션 회장)의 요청을 받아 다음 태동 초기에 합류했다. 한메일 개발을 담당, 다음이 포털 사이트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해, 다음의 ‘개국공신’ 중 한 명으로도 대우받았다. 다음재팬, 다음게임 등 다음의 계열사 대표 그리고 다음이 투자한 회사의 대표(투어익스프레스)도 했다. 이런 이력을 가진 그는 누구일까.

정답은 한국술문헌연구소 김재형 소장이다. 한국술문헌연구소 김 소장은 ‘산가요록’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같은 조선시대 이후 고문헌에 기록돼 있는 전통술의 제조 방법(주방문·레시피)을 데이터베이스(DB)화해서 공개하고 있다. 네이버에서 ‘한국 술 고문헌 DB’를 쳐서 들어가면 검색창이 뜬다. 여기에 특정 고문헌이나 전통술 이름, 누룩 종류 중 어느 것을 치더라도 도표로 정리된 해당 술의 주방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김재형 소장은 “현재까지 128개 문헌을 조사해, 3500개 정도의 주방문을 DB화했다”며 “전통술 빚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검색만 하면 어렵지 않게 전통주 빚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가평잣막걸리로 유명한 가평의 전통술 양조 업체 우리술은 작년에 ‘옥지춘’이란 신제품을 내놓았다. 조선 초기 1459년쯤 어의(임금 주치의) 전순의가 쓴 요리책(현존하는 요리책 중 가장 오래된 문헌)인 ‘산가요록’에 옥지춘 주방문이 소개돼 있다고 우리술 측은 신제품 출시 당시, 홍보에 열을 올렸다. 옥지춘을 한국 술 고문헌 DB에서 검색해보니, ‘산가요록’ 외에 ‘승부리안 주방문’ ‘각방별양’ 같은 고문헌에도 옥지춘 주방문이 기록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 술 고문헌 DB에 소개된 전통술 주방문이 옥지춘을 포함해 3500개가 넘는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단 한 사람’이 7여 년에 걸쳐 3000개가 넘는 주방문을 100권이 넘는 고문헌에서 일일이 찾아, 모두 DB화했다는 사실이다. 또, 이를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게끔 포털에 공개했다는 사실 역시 놀랍다. 성공한 벤처기업인이 전통술 관련 고문헌 연구에 빠져든 이유는 뭘까. 더구나 7년 넘게 책상 앞을 떠나지 않고 고문헌 연구에 몰입했지만, 도대체 돈이 안 되는 일을 그는 왜 지금도 놓지 못하는 걸까. 이런저런 궁금증을 안고 서울 강남구에 있는 그의 원룸을 찾아갔다. 가족이 함께 거주하는 공간은 따로 있고, 이곳은 순전히 혼자만의 연구 공간이라고 했다. 소파, 침대도 없고 책상, 책장 그리고 직접 빚은 술로 꽉 채운 냉장고 두 대가 다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IT전문가가 어쩌다 전통술 고문헌 연구를 하게 됐나.

“다음을 나와서 벤처기업을 따로 차렸다. 그런데 잘 안됐다. 2년 만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숨 가쁘게 20여 년을 달린 탓에 그때 뭔가 재충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술 빚기였다. 2017년 가을이었다. 백수환동주, 이화주 같은 막걸리를 중심으로 시중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10여 가지 전통주를 직접 빚어보는 교육과정이었다. 과정 중에 고문헌에 기록된 주방문을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한글로 쓰여진 최초의 요리책인 ‘음식디미방’ 등에 소개된 주방문을 도표로 정리하고, 그중 일부는 실제로 술 빚기도 해봤다. 그런데 이게 무척 재미있었다. 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이 직접 강의를 맡았는데, 여러 문헌에 기록된 ‘주방문 도표 정리’를 숙제로도 잔뜩 내줬다. 다른 교육생은 어렵다, 귀찮다 등 불만이 적지 않았는데, 나는 밤샘을 할 정도로 전통주 주방문 정리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주방문을 DB화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주방문이 소개된 술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주방문을 정리하더라도 나중에 찾아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직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은 상태인 데다 DB는 또 내 전공이니, 어려울 게 없다고 여겼다. 밤잠을 안 자고 전통주 주방문 DB에 매달렸다. 그 첫 번째 결실이 이듬해인 2018년 3월에 나왔다.”

7년 이상 전통주 DB에 매달렸는데, 수익 창출은 뭐로 하나.

“사실, 별것 없다. 일 년에 2회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한 달 과정 ‘고문헌 연구 과정’ 강의를 맡고 있다. 부정기적인 강연 요청도 응하고 있지만, 딱히 돈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양조장을 차릴 생각도 없다. 하지만 후세에도 볼 수 있는 전통주 DB 작업을 오랜 기간 혼자 해 왔다는 자부심은 절대 작지 않다. 고문헌에 나와 있는 그대로 술을 빚을 필요는 없지만, 조상들이 어떤 재료로, 어떤 비율로, 어떻게 술을 빚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여긴다. 옛것에서 새것을 배운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 을 실천하려면, 우선 옛것을 올바로 알아야 하지 않겠나.”

고문헌에 기록된 술을 요즘에 와서 빚기 어려운 이유로 계량형 단위가 통일돼 있지 않은점이 꼽힌다.

“맞는 얘기다. 문헌에 나오는 사발, 복자, 병, 동이, 주발, 되, 바리, 말 같은 단위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 용량인지 알기 어렵다. 그 이유는 가양주 문화의 특성 때문이다. 누구나 집에서 술을 빚었기 때문에 자기 집에서 쓰는 부엌 도구를 그대로 계량 도구로 사용한 탓이다. 그런데 같은 사발이라도 집집이 용량이 같을 수 없지 않은가. 밥공기도 조금씩 다 차이가 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이것이술 빚기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헌 해석의 목적은 복원이 아니라 응용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춰, 어떻게 쌀과 물의 양을 정할 것인가는 지금을 사는 우리가 결정할 몫이다.”

고문헌 연구의 가장 큰 어려움은 뭔가.

“혼자 해야 한다는 점이다. 술과 관련된 고문헌 연구를 하는 사람이 적다. 문헌 연구는 일종의 퍼즐 풀기 같은 것인데,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같이 토론하고 연구할 동무가 없다는 점이 제일 아쉽다. 그래서 찾은 해결책은 보고 또 보는 것이다. ‘독서백편의자현(책이나 글을 100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이해된다)’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같은 글과 문장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보면 뜻이 전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도 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 고창 우리술학교 이상훈 교장과 교류하면서 많이 배웠다. 나의 스승님이다.

힘들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이 작업이 마지막 고문헌 정리가 될 수도 있다고. 내가 ‘지금’ 정확하게 정리하지 못하면 ‘후손’들은 내가 만든 부정확한 자료를 토대로 전통주를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감을 느끼며 임하고 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연구 결과는.

“모두 애착이 가지만 특히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이 기억에 남는다.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이었던 유성룡이 왜란이 끝난 2년 뒤인 1600년의 달력인 대통력에 쓴 비망기다. 일본에 있던 문헌인데, 문화재청에서 2021년에 환수했다. 표지에 이순신 장군의 전사 장면이 적혀 있기도 하다. 이 달력의 여백에 술 빚는 방법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강의 때마다 소개하고 있다. 술 빚는 방법이 달력 여백에 기록돼 있을 정도로 술이 당시 일상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옛 조상이 했던 주방문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옳은 지적이다. 당시에 좋아했던 술의 스타일과 현대인이 선호하는 술 성격은 같을 수가 없다. 술 원료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쌀만 해도 그때 사용했던 쌀과 지금의 쌀이 똑같지 않다. 조선시대 제조법 그대로 빚은 술이 현대인의 입맛에 맞을 리가 있겠는가. 선호하는 단맛의 정도도 크게 다르다. 다만 고문헌 분석을 통해 우리 조상이 추구했던 술의 프로토타입(표준)을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창조할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것이다. 조상이 술을 만들던 방법을 연구함으로써, 조상이 술을 대하던 철학과 통찰력을 후대의 우리가 배워서, 새 술 개발의 화두로 삼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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