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과 ESG] 과거의 전기, 미래의 전기
우리는 매일 전기, 가스, 휘발유 등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가장 큰 불편함을 겪을 에너지를 꼽는다면, 대다수는 전기를 택할 것이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떠올려보면 TV, 냉장고를 비롯한 가전제품부터 에어컨, 전기장판 등 냉난방 기기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의 전자 기기, 조명 그리고 전기차에 이르기까지 전기는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인 에너지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기 소비 증가세는 향후에도 지속 전망
실제로 에너지 소비에서 전기의 비중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21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에너지원은 석유류와 전기다. 그런데 과거 30년간 이 두 가지 주요 에너지의 소비 변화를 살펴보면 그 양상이 정반대로 나타났다. 석유류는 1971년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47%를 차지하였으나 2021년 그 비중이 39%로 하락 추세다. 반면, 전기 비중은 동 기간 9%에서 21%로 증가했다. 우리나라도 전기가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1년 6%에 불과하였으나 2021년에는 25%로 상승했다.
앞으로도 전기 소비는 계속해서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 달성을 위해서는 전력화가 필수적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는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기존의 화석연료로 소비되던 것을 전기로 대체한다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는 각국 정부가 선언한 국가 에너지 및 기후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 2050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에너지 소비에서 전기의 비중이 41%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력화는 탄소 중립 달성의 주요 수단으로 간주되지만, 유의해야 할 부분은 발전 부문의 탄소 중립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바꾼다면 차량을 운전할 때 직접적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줄일 수 있겠으나, 그 전기가 어떤 발전원으로 생산되었는지에 따라 국가 전체의 온실가스 감축 여부는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전력화와 동시에 발전 부문의 탈탄소화가 병행되어야 국가 전체 차원에서의 탄소 중립이 이루어진다.
화석연료에서 무탄소‧저탄소 에너지원으로 변화
전통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주요 발전원은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였다. 전 세계의 전원 믹스에서 화석연료가 차지한 비중은 1971년 기준 74% 수준이었으나, 이후 30년간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의 비중이 증가하며 2021년에는 62%로 감소하였다. 화석연료 중심의 전원 믹스를 무탄소‧저탄소 발전원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 국총회(COP28)의 합의문에는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이라는 문구가 포함되었다. 또한, 주요 7개국(G7)은 지난 4월 열린 기후·에너지·환경 장관회의에서 2030년대 상반기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는 데 합의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2022년 전원 믹스는 발전량 기준으로 석탄 33%, 천연가스 29%, 원자력 28%, 재생에너지 10%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석탄은 그 비중이 2013년에 41%였던 것을 고려하였을 때 감소세가 두드러진다. 향후에도 국제사회의 탈석탄 기조와 동일하게 우리나라에서도 석탄의 발전 비중은 계속 감소할 전망이다. 대신 재생에너지, 원자력, 수소, 암모니아 등 무탄소‧저탄소 발전원이 확대될 예정이다. 특히 올해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수소 발전 입찰 시장을 개설하여 수소 발전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전기 공급 방식, 중앙 집중형에서 분산형으로 전환
전기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과정에도 변화가 나타날 전망이다. 전기는 발전설비에서생산되어 송전과 배전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여기서 송전은 발전설비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요지 인근의 변전소까지 보내는 과정이고, 배전은 변전소에서 최종 소비자까지 전기를 보내는 과정이다. 우리나라의 발전설비는 주로 해안가에 대규모로 위치하고 있다. 때문에 수도권을 비롯한 수요지와 거리가 있어 장거리 송전망을 거쳐 전기가 공급된다. 이러한 중앙 집중형 에너지 시스템하에서는 전기 소비가 증가한다면 더 많은 대규모 발전소와 장거리 송전망이 필요하다. 하지만 낮은 주민 수용성으로 사회적 갈등이 빈번히 발생하는 등 신규 투자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미래의 전기는 보다 분산에너지 시스템 차원에서 공급될 것으로 보인다. 분산 에너지 시스템은 수요지 인근에 위치한 중소 규모의 발전설비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공급받는 구조다. 에너지의 소비 지역 인근에서 발전설비가 설치 및 운용되므로 장거리 송전망을 건설할 필요성이 줄어든다. 또한, 발전설비가 분산됨에 따라 전력망에 문제가 발생한경우에도 독립적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광역 정전 등의 문제로 확대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에너지 신산업도 활성화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미래의 전기를 맞이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특히 에너지 자급률이 높거나 산업단지가 있어 전력 수요량이 많은 지역들은 분산 에너지 특화 지역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중 제주는 이미 12년 전인 2012년에 ‘탄소 없는 섬 제주(Carbon Free Island Jeju by 2030)’를 발표하며 꾸준히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정책을 펼쳐왔다. 얼마 전인 5월 1일에는 2035년 아시아 최초 무탄소 도시를 실현한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 로드맵은 가정 및 상업 부문의 난방을 비롯해 대중교통과 대형 운송 수단, 선박 등 지역사회 에너지원을 100% 재생에너지와 그린 수소로 충당해 탄소 중립을 실현한다는 계획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미래의 전기 시스템은 우리의 삶과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려본 모습이 실제 현실에서 구현되기까지는 긴 여정이 남아있다. 기존 시스템이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스템으로 개편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것보다 더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동반할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기술 발전과 정책 지원이 함께 이루어지고, 개인과 기업, 정부 간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미래의 전기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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