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격노’는 죄가 아니지만 해명이라도 해야 [핫이슈]
20년 전 러시아 특파원을 했다는 이유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인기가 왜 지금도 높은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때마다 꼽는 이유 중 하나는 ‘적절한 화내기’다. 러시아 TV 뉴스에서는 푸틴이 최고위 관료, 여당 의원, 기업 총수 등을 상대로 1대 1로 대화하는 장면이 거의 매일 나온다. 이들이 탁자를 두고 마주 앉아 대화하는 내용을 들려주는데 여기서 푸틴은 상대방 잘못을 지적하고 화를 낸다. 장관한테는 지난번 지시한 일의 진행속도가 느리다며 타박한다. 러시아 재벌(올리가르히)은 푸틴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꾸중을 듣는다. 이를 본 많은 국민은 “우리 대통령 열심히 일한다”고 느낀다. 꼴보기 싫은 관료와 정치인, 돈 많다고 폼잡는 기업인을 불러다가 대통령이 직접 혼내주니 국민은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이러니 연출일지라도 푸틴에 대한 국민 지지는 계속된다.
대통령이라는 지엄한 위치 때문에 최고통치권자가 화를 내면 대통령실은 물론 정부와 정치권, 국민까지 술렁인다. “무슨 일이래?” 하면서 말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격노’가 화두가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소리를 쳤거나 성질을 부렸다고 할 일을 ‘분노’, ‘격노’라는 단어를 써가며 대통령 심기가 매우 불편함을 강조하려 든다.
지금은 사망 원인에 대한 실체 규명보다 대통령이 누구를 빼내려고 격노했는지 여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듯하다. 공수처가 대통령 격노 관련 녹음 파일을 복원했다고 하니 들어보면 진짜 격노인지, 화낸 수준인지, 건의 차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격노한 정황이 나오더라도 군 통수권자로서 당시 수색구조 업무 지휘관한테 과실치사를 묻는데 대해 대통령이 반대 의견을 낼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사태가 지금처럼 꼬인 것은 윤 대통령이 9일 기자회견은 물론 사건 발생 초기부터 격노설에 대해 함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의혹은 커지고 특검 압박은 증폭됐다. 28일 국회 재의결에서 채상병 특검법은 처리되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하지만 야당은 22대 국회에서 1호 법안으로 벼르고 있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경찰과 공수처 수사가 먼저라고 하지만 여당 내에서도 ‘특검 수용’ 얘기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 간에 지난해 7월 말~8월 초 수차례 통화한 것으로 드러나 사건 진위에 대한 국민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격노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파급력을 멈추려면 대통령은 이제라도 자초지종을 밝히던지, 대국민 설명자료라도 준비해서 채상병 특검법의 모순점들을 엄숙하고 조리있게 조목조목 반박하길 바란다. 그래도 국민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현 특검법 독소조항을 고쳐 특검을 수용하는 결단도 고민해야 한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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