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철의 스포트S라이트] 비행거리 100만마일… 가장 부지런한 IOC위원 되고 싶었다
대한민국엔 지금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3명 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선수위원으로 선출된 유승민(42) 대한탁구협회장과 KOC(한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인 이기흥(69) 대한체육회장, 그리고 김재열(56) 국제빙상연맹(ISU) 회장이다. 이 중 유승민 회장은 7월 말 개막하는 프랑스 파리 올림픽을 끝으로 8년 임기를 마친다. 그는 8년 전 선수 위원에 입후보했을 때 67만 보, 500km 가까이 걸으면서 선거 운동을 했다.
-선수위원 임기가 3개월도 안 남았다.
“8년이 훌쩍 지나갔다. 일 년 절반을 해외에서 보내면서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비행기만 100만 마일 가까이 탔다. 언어가 잘 안 통하고 처음엔 힘들었지만, 회의 갈 때마다 자료 준비 많이 하고, 무조건 하나 이상 질문하려고 했다. IOC 사람들이 ‘부끄럼 많이 타는 한국인과는 좀 다르다’고 하더라.”
-직접 IOC 들어가 보니 뭐가 달랐나.
“IOC 위원은 명예직이고 일이 많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정반대였다. 나이, 성별 관계없이 정말 열심히 일한다. 더구나 스포츠만 아니라 환경, 인권 등 다양한 관련 분야를 다 다룬다.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생각이 들었다. IOC 내 위원회가 30개 정도 있는데 현재 7개 분과에서 활동 중이다.”
-언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나.
“IOC 내에선 선수들 정치적 발언에 대한 제약을 많이 완화시켰다. 국내에선 소셜미디어를 통해 악성 댓글 문제점에 대한 정치권 역할을 강조했다. (국내) 포털에 (스포츠 기사) 댓글을 못 남기도록 법이 만들어진 것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국내 선수들 삶이 오로지 경기력 향상에만 맞춰 있다 보니 기본 교육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게 경쟁력이 없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IOC 조직 내에서는 아무도 수학 몇 점 받고 몇 등 했는지, 어느 대학 나왔는지 묻지 않는다. 거기서 ‘너만의 차별화된 경험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외교관, 행정가로 활동하려면 자기 커리어를 극대화하는 게 첫 번째다.”
-선수들 사건·사고 원인이 운동지상주의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 외국이나 모두 올림픽 메달에 인생을 건다. 그 목표를 위해 강훈련하는 것과 좋은 대학 가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게 뭐가 다른가. 국내 교육 체계가 학생 선수를 전문가로 인정해 주지 않는 게 문제라 생각한다. 학생이란 틀에 가둬 놓고, 운동 선수가 다른 분야에 적응 못 할 것이라는 프레임을 미리 씌워버린다. 학생이라 방학 주말에만 경기를 해야 한다는 게 정답인가. 형평성에 맞지도 않고 인권에도 어긋난다. 스포츠도 교육이다. 다양한 룰 속에서도 페어 플레이를 펼치고 승자와 패자가 우정을 나눈다. 스포츠를 통해 페어플레이 정신을 배우는 게 수업보다 나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스포츠는 생리학, 심리학 등 학문 분야부터 스포츠 캐스터나 아나운서, 에이전트 등 산업 관련까지 응용 분야가 다양하다. 선수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기 관심 분야에 대한 맞춤형 학습을 받도록 선택권을 줘야 한다. 요즘 세대들은 전과 달리 메달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지만,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감 넘치고, 자기표현도 잘한다. 선택권을 주면 기본 교육은 알아서 더 열심히 받을 것이고, 다양한 분야와 무대에서 역량을 펼칠 것이다.”
-파리 올림픽 전망이 비관적이다.
“전통적 강세 종목이 추락하고, 다른 종목들이 많이 성장했다. 이런 다양성은 긍정적이다. 진짜 큰 문제는 운동할 사람이 줄어드는 것이다. 탁구만 해도 초·중·고·대학과 실업 합쳐 등록 선수가 1300명 조금 넘는다. 엘리트(체육문화)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일 게 아니라 지원해야 할 상황이다. 스타 플레이어 한두 명에 해당 종목 희비가 엇갈려선 곤란하다.”
-유소년 클럽 활성화가 대안인가.
“당연히 활성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시스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재 스포츠 클럽은 취미나 건강 증진 수준에 그친다. 클럽 활동을 통해 뛰어난 자질을 보인 꿈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엘리트(선수)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외국을 따라만 하지 말고 우리만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스포츠 활동이 대학 입시, 기업 취업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정부가 정책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운동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제주도 국제 학교만 해도 사설 스포츠 클럽이 꽉 차서 대기자가 100~200명이나 된다. 외국 대학에서 스포츠 활동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번 파리올림픽에는 골프 스타 박인비 선수가 선수위원에 도전하는데.
“나 때만 해도 선수위원 하려는 사람 드물었는데 올해는 국내 도전자가 6명이나 됐다. 나로 인해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 뿌듯했다. 박인비 선수위원 후보와는 몇 번 만났는데 열정과 능력 모두 대단하다. 그런데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발로 뛰어라’는 하나뿐이었다. 8년 전 선수위원 도전했을 때 정말 막막했다. 외면, 무시도 당하고, 항의도 많이 받았다. 좌절감이 상당했다. 처음엔 내가 여기 왜 왔지, 진짜로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올림픽 기간 중 67만 보 정도 걸었다. 하루 3만5000보 찍힌 적도 있다. 걸은 거리도 500km 가까이 됐다. 그때 그 선거 후 지금까지도 길거리 걷다가 전단 나눠주면 다 받는다. 누군가 내 입장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어떤 건지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 움직이는 게 진짜 쉬운 게 아니었다.”
-운동선수로서, 행정가로서 이룰 건 거의 다 이뤘는데 앞으로 꿈이 있다면.
“가까운 앞날이든 먼 미래든 한국 스포츠를 위해 내가 할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후배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내게 기회가 안 왔어’라고 투덜대는 사람은 그만큼 준비를 안 한 것일 뿐이라고.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나는 내일이라도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 일할 준비가 돼 있다. 열정과 에너지는 그 누구에게도 안 뒤질 자신이 있다. 나름대로 목표도 세워뒀다. 개인적인 영달을 누리는 게 아니라 부지런한 일꾼으로서 한국 스포츠에 더 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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