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메디컬 플라스틱 시장서 챔피언 되겠다

허성 코오롱ENP 대표
친환경·고부가 POM 생산능력 세계 4위
시장 진입 늦었지만 선도자 위치 따낼 것
품질관리 엄격한 메디컬 소재가 성장동력
지속가능한 미래 지원 … 올해 사명도 바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의료장비용 소재 시장에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공급을 확대하겠습니다. 세계 4위에 만족하지 않고 폴리옥시메틸렌(POM) 시장의 챔피언이 되고자 합니다."

허성 코오롱ENP 대표가 자동차 부품 시장을 넘어 의료장비 시장으로 제품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경기 과천시에 있는 코오롱 본사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한 허 대표는 "최근 글로벌 기업으로 의료장비용 POM 초도 공급이 확정됐다"며 "최종적으로 정규 양산 주문이 확정되면 회사의 수익성과 메디컬 분야의 추가 용도 개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코오롱ENP가 생산하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기계적 성질과 강도, 내열성이 우수해 자동차·전자제품·생활용품·산업용품의 핵심 부품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전기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이 붙지 않는 난연 소재, 열을 방출하는 방열 소재 등이 필요한데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이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 중 POM은 코오롱ENP가 주력하는 소재다. 코오롱ENP는 연간 15만t 규모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세계 4위 규모이며 단일 공장으로는 1위다.

허 대표는 "메디컬 시장은 POM의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시장"이라며 "이번 사례를 바탕으로 유수의 글로벌 메디컬 업체들과 협업을 통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코오롱ENP는 메디컬 전문 제품 라인으로 'M 시리즈'를 출시하고 의료장비 업체에 소규모로 공급을 지속해왔다. 허 대표는 "메디컬용 소재는 인체에 당연히 무해해야 하며, 제조 과정에서도 품질 관리가 다른 산업보다 훨씬 엄격하다"며 "의료장비 소재는 글로벌 선도 업체만이 공급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부가가치·친환경 POM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포부도 공개했다. 그는 "코오롱ENP는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 POM 시장에 늦게 진입해 그동안 '패스트 팔로어'였다"면서 "고부가가치·친환경 POM 분야에선 퍼스트 무버이자 챔피언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어 "POM 시장에서 생산 시 탄소가 적게 발생하는 제품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지만 아직 각 업체가 제품을 준비하는 단계"라며 "친환경 POM 생산체제를 구축해 경쟁사보다 빠르고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겠다"고 설명했다. 허 대표는 친환경 POM을 생산하기 위해 원재료를 확보하는 데 대한 노력도 소개했다. 그는 "친환경 제품을 만들려면 POM의 원재료인 메탄올을 친환경 메탄올로 대체해야 한다"며 "다양한 루트를 통해 친환경 메탄올을 확보하고 있으며, 올해 안에 초도 양산까지 완료해 시장에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허 대표는 기업의 ESG 경영(환경·책임·투명경영)이 수익성 확보와도 맞닿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유럽을 중심으로 재활용 소재의 가격을 더 비싸게 받아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지속가능성을 확대하는 동시에 수익성을 확보하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유럽연합(EU) 폐차처리지침(ELV)이 확정되면 앞으로 차량에 쓰이는 플라스틱의 25%는 재활용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며 "산업계에서 순환경제로의 움직임이 더디긴 하지만 확실히 오고 있다"고 말했다.

코오롱ENP는 올해 기존의 '코오롱플라스틱'에서 새롭게 사명을 변경했다. ENP는 'Empowering New Possibility'의 약어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겠다는 회사의 비전이 담겨 있다. 허 대표는 "플라스틱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일회용 플라스틱의 부정적 이미지를 떨치기 위해 사명을 바꿨다"며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고기능·친환경 소재로 장기간 사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전부터 주주, 직원들로부터 사명을 변경하자는 의견이 있어 반영했다"고 말했다.

허 대표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 역설적으로 탄소 감축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허 대표는 "사용 주기가 짧은 범용 플라스틱과는 달리 산업용 고기능 플라스틱은 사용 주기가 길다"며 "궁극적으로 에너지 절약은 물론 자원 소비량 절감을 통해 탄소 감축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다.

허 대표는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차이나플라스 2024와 지난 6~10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NPE 2024에 참석해 글로벌 영업도 강화하고 있다. 두 전시회는 세계 3대 플라스틱 전시회로 꼽힌다. 허 대표는 각 전시회에서 글로벌 고객들을 만나 협력을 논의했다. 허 대표는 미국 메탈세일즈 부사장, 네덜란드 화학·도료기업 악조노벨의 총괄이사를 역임했다. 외국계 기업에서 오래 근무해 글로벌 역량과 탄탄한 네트워크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허 대표는 치밀한 전략을 구상하면서도 회사 내에서 부드러운 리더십의 소유자로 평가받는다. 오랜 해외 기업 근무 경험으로 사내에서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구축하며 직원들과 소통하고 있다. 허 대표는 "공감을 창출하는 데 유머만큼 강한 게 없다"며 "타운홀 행사를 할 때 직원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환경·안전·보건 제도를 안착시키기 위한 노력도 소개했다. 그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인적 자원이고 경영진의 의무는 직원들을 안전하게 돌려보내는 것"이라며 "올해는 처음으로 출장 안전 가이드라인을 발간했다"고 말했다.

허성 대표 △1961년생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경제학사 △윈저대 경제학 석사 △칼턴대 경제학 박사 △2006년 메탈세일즈 부사장 △2008년 악조노벨 총괄이사 △2014년 삼화페인트 사장 △2021년 코오롱인더스트리 CSO △2023년 코오롱ENP 대표·코오롱바스프이노폼 공동 대표

[정유정 기자 / 사진 이충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