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흐 공격 중단’ 명령 코웃음…이스라엘, 국제법정 결정 이튿날 공습

노지원 기자 2024. 5. 2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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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법재판소, 앞서 학살방지·인도적 지원 확대
명령 무시 국제법 위반이지만 제재 조처 마땅찮아
22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최남단 라파흐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한 팔레스타인 남성과 어린이들이 무너진 건물 안에 함께 앉아 있다.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방위군(IDF)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부 라파흐 공격을 멈추라는 국제사법재판소(ICJ) 명령을 무시하고 군사작전을 계속하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은 25일 라파흐의 쿠와이티 병원 인근 지역과 샤부라 난민 캠프가 이스라엘군 공격의 목표가 됐다고 전했다. 팔레스타인 와파(WAFA) 통신은 무장 정파 하마스가 운영하는 팔레스타인 보건 당국을 인용해 이날 이스라엘군이 라파흐 북부 아다스 지역의 주택을 공습해 아이를 포함해 민간인 6명이 숨졌고, 라파흐 중부 이브나 난민 캠프에서도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사상자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 공격은 국제사법재판소가 이스라엘에 라파흐 공격 중단을 명령한 다음날 발생했다. 앞서 24일 국제사법재판소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심리에서 이스라엘이 ‘집단학살 범죄 예방 및 처벌 협약’(집단학살 협약) 위반 혐의로 제소된 사건과 관련해 새로운 잠정 조처를 할 조건이 충족됐다며 라파흐 공격 중단을 명령했다. 남아공은 지난 1월 집단학살 협약 위반을 이유로 유엔 최고 사법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에 이스라엘을 제소했고, 국제사법재판소는 판결이 나오려면 몇 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해 이스라엘에 그동안 잠정명령을 내려왔다. 1월에는 이스라엘에 학살 방지 명령 그리고 3월에는 가자지구에 식량·식수·연료 등을 공급할 육로 개방 등의 인도주의적 지원 확대를 명령했다. 이번이 세번째 잠정 명령이다. 유엔 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 명령은 법적 구속력이 있으며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국제법 위반이 된다. 하지만, 이를 강제할 집행력은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제재를 하는 방법이 있으나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이 거부권을 지닌 상임이사국이기 때문에 이 또한 실현 가능성은 작다.

국제사법재판소가 이번에 라파흐를 지목해 이스라엘에 공격 중지 명령을 내린 이유는 지난해 10월7일 가자전쟁 시작 이후 이스라엘군 공격을 피해 내려온 난민 수십만명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라파흐에는 가자지구 전체 인구 230만명 중 절반이 넘는 140여만명이 피란했다. 그러나 지난 7일 이스라엘군이 이집트와 접한 라파흐 검문소를 장악하는 등 라파흐 지상 공격까지 시작해 다시 피란을 떠나고 있다. 상당수는 아직 이스라엘이 대피령을 내리지 않은 라파흐 서부 해안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지역은 식량이 부족하고 대피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열악한 상태로 알려졌다. 라파흐를 다시 떠난 피란민도 80만명 정도다

이스라엘은 국제사법재판소 세번째 명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24일 성명을 내어 “남아공 주장은 거짓이고 터무니없으며 도덕적으로 혐오스럽다”며 “라파흐 지역에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삶의 조건 전체 또는 일부에 물리적 파괴를 가져올 수 있는 군사적 행동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이 라파흐에서 하마스를 목표로 제한된 군사작전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스라엘군은 이 도시에 하마스 부대 4개가 남아 있으며 지하에는 터널과 로켓 발사대 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군이 대피령을 내리지 않은 라파흐 서쪽에서 피란 중인 모하메드 마스리(31)는 “공습은 격렬하고 또 계속되고 있다”며 “연기 냄새가 가시질 않는다. 밤에 이스라엘군은 조금씩 전진하고 사람들은 즉시 도망을 간다”고 말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라파흐 작전에 5개 여단, 1만 병력을 투입했다고 알려졌다.

가자지구 중부와 북부 지역에서도 공격은 계속되는 중이다. 와파 통신은 25일 저녁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 난민 캠프를 겨냥한 이스라엘 공습으로 민간인 6명이 사망했고 수십명이 다쳤다면서 이 가운데 어린이도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프란체스카 알바니즈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 보고관은 법원 명령을 무시한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를 촉구했다. 그는 엑스(X·옛 트위터)에 “이스라엘은 우리가 멈추게 할 때까지 이 광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회원국은 이스라엘이 공격을 중단할 때까지 제재와 무기 금수 조처를 하고 외교, 정치적 관계를 중단해야 한다”라고 했다.

한편, 26일 하마스는 전날 북부 자발리야 전투에서 자신들이 이스라엘 군인을 포로로 붙잡았다는 주장을 내놨다. 하마스 군 대변인은 이 주장에 대한 근거는 따로 제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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