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이 사랑한 작가들···윤형근·김창열 전시 한눈에
방탄소년단(BTS)의 RM을 사로잡은 두 대가의 전시가 나란히 열리고 있다.
RM이 곡을 헌정할 정도로 존경하는 작가인 ‘단색화의 거장’ 윤형근 전시는 서울 종로구 PKM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물방울의 화가’ 김창열의 전시엔 RM의 소장품이 전시돼 있다. 윤형근과 김창열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미술품 경매와 아트페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기 작가이기도 하다. 두 갤러리 사이의 거리는 불과 845m로,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두 대가의 작품을 한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50년간 그린 물방울···같은 물방울은 하나도 없다
캔버스에 스며든 물방울, 그 위에 영롱하게 맺힌 물방울, 캔버스를 적시며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 큰 물방울, 작은 물방울….
김창열(1929~2021)은 50년 동안 오로지 물방울만 그렸다. 1971년 어느 아침 파리 근교의 마구간에서 재활용하기 위해 물을 뿌려둔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을 발견한 것이 일생의 화업이 됐다. “꺼칠꺼칠한 마대에 매달린 크고 작은 물방울의 무리들, 그것은 충분히 조형적 화면이 성립되고도 남질 않겠어.…그것은 하나의 점이면서도 그 질감은 어떤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새로움의 발견이었어.”
김창열 작고 3주기를 맞아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영롱함을 넘어서’에선 김창열이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삼아 천착하고 탐구해온 물방울의 다양한 변모를 볼 수 있다. 50년은 물방울로 할 수 있는 온갖 조형적 실험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번 전시는 물방울의 다양한 표현과 그것이 놓인 표면과의 관계에 집중하며 김창열이 탐구한 ‘조형 언어로서의 물방울’에 집중한 큐레이팅을 선보인다. 여러 개인 소장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 모아 1970년대 초반 작품부터 2018년 완성한 근작까지 총 38점을 볼 수 있다.
1층에선 1970년대 주요 작품들을 선보인다. 물방울이 캔버스에 맺힌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초기작들에선 중력을 거스른 채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을 볼 수 있다. 극사실주의 그림처럼 보이지만, 물방울이 실제 캔버스에 그림처럼 맺혀있긴 힘들다. 때문에 1970년대 김창열의 작품들은 초현실주의적 맥락에서 해석되기도 했다.
2층에선 스며들고, 흔들리고, 끈적이며 다양하게 변주된 물방울들을 만날 수 있다. 물방울이 스며들어 얼룩진 캔버스, 그 위에 또 맺힌 물방울, 캔버스에 큰 물자국을 남기며 흘러내린 물방울, 캔버스 위에 모래를 바르고 그린 물방울 등 다양한 물방울들을 볼 수 있다. 한 작품에서도 물방울의 크기, 점도, 흐르는 속도가 다르게 표현되고, 물방울을 투과한 빛의 색깔도 다르게 표현됐다. 1990년대 한지를 여러겹 발라 그 위에 물방울을 그린 대형 작업들에선 잘 알려진 물방울 그림과 전혀 다른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민주주의에 관한 글이 프랑스어로 인쇄된 종이의 위아래를 뒤집은 뒤 그 위에 물방울을 그린 작품이 눈길을 끈다. 독재정권 아래 민주주의가 훼손된 상황에 대한 표현으로도 읽힌다. 세로로 긴 직사각형 캔버스에 물방울을 S자로 쪼로록 흘려놓은 듯한 그림이 RM 소장품이다.
지하 1층에선 1980년대 이후 제작된 ‘회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한자로 쓰인 천자문 위에 물방울을 그린 작품들로, 글자와 물방울이 맺고 있는 관계 또한 다양하게 변주된다. 물방울에 의해 글자가 확대된 작품, 글자가 지워진 작품, 글자 부분만 비워놓고 색을 칠하는 등 다양한 기법의 작품을 선보인다. 6월9일까지.
한지에 스며든 청다색의 향연···파리에서 그린 미공개작 27점
RM은 2022년 발표한 정규앨범 1집 <Indigo>에서 윤형근(1928~2007)의 육성을 담은 곡 ‘Yun’을 첫 번째 트랙으로 선보였다. RM이 ‘예술가 윤형근’에 대해 가진 존경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RM을 사로잡은 것은 하늘을 상징하는 청색(Ultramarine)과 땅을 상징하는 다색(Umber)의 단순하고도 묵직한 색채가 빚어낸 감동이었다. 작위와 기교가 배제된 윤형근의 작품은 삶과 예술의 일치, 진실함(진·眞)을 추구했던 작가의 이념과 맞닿아있다.
PKM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윤형근/파리/윤형근’ 전시에선 작가가 두 차례 파리에서 머물며 작업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1980년 군사독재 정권의 탄압에 분노하고 좌절해 파리로 떠나 그곳에서 몰두했던 한지 작업과 2002년 파리 장브롤리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 등 국내 미공개 작품 27점을 선보인다.
1980년 12월 파리로 향해 1년 반 동안 체류했던 윤형근은 한국 전통의 한지를 재료로 택했다. 한지 위에 스며든 청색과 다색의 물감은 번지고 겹쳐지며 색채의 스펙트럼을 극대화해 보여준다. 가운데는 심연의 검은색으로, 가장자리는 옅은 청색과 다색이 스펙트럼을 이루며 번져나간다. 박경미 PKM 갤러리 대표는 “윤형근 화백에게 파리라는 도시가 준 영감은 자신이 천착해오던 작업에 대한 또렷한 확신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윤형근이 2002년 파리에서 3개월간 머물며 선보인 작품들은 대형 캔버스 위에 힘 있게 그은 뚜렷한 청다색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세심하고 은은한 색채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한지 작업과, 대형 캔버스에 작업한 힘 있는 작품이 함께 전시돼 대비와 조화를 이루며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오는 7월엔 윤형근의 고향인 충북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윤형근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다. 6월29일까지.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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