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멘터리] V8엔진이 돌아왔다! 조지 밀러, 액션과 이야기의 숭배자
종종 영화는 보여줘야 할 것을 말(대사)로 때우면서 실패한다. ‘매드 맥스’ 시리즈의 아버지이자 액션 영화(“kinetic cinema”)의 신봉자인 조지 밀러 감독은 영화 언어는 무성(無聲) 영화 시절에 정립됐다고 본다. 무성 영화는 본질적으로 액션 영화다.
조지 밀러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데뷔작 《듀얼》(Duel,1971)과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1959)의 전차 장면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한다.(“뉴요커”) MBC ‘주말의 명화’에서 《대추적》이란 제목으로 방영됐던 《듀얼》은 한적한 고속도로에서 정체불명의 대형 트럭에게 쫓기는 한 승용차 운전자의 이야기인데, 대사가 거의 없는데도 러닝타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벤허》의 유명한 전차 장면은 말 발굽 소리와 채찍 휘두르는 소리 외에는 다만 액션이 있을 뿐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였던 조지 밀러가 1979년 호주에서 첫 번째 《매드 맥스》를 찍을 때만 해도 액션씬은 조감독들의 몫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지 밀러는 생각이 달랐다. 1985년 《매드 맥스: 썬더돔》까지 삼부작으로 막을 내린 줄 알았던 ‘매드 맥스’ 프랜차이즈는 30년이나 지난 2015년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로 다시 돌아왔는데, '할배가 약 빨고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액션 그 자체’인 영화였다.
70대의 나이에 ‘매드 맥스’같은 광기와 똘끼로 가득한 액션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감독은 지구상에 조지 밀러가 유일할 것이다.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 개봉 당시 이 극장과 저 극장에서 서너 번씩 이 영화를 보면서 찬탄과 경악을 금치 못한 사람은 필자만이 아니었다. 봉준호 감독은 최근 내한했던 조지 밀러 감독과 함께 한 관객과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초반에 모래 폭풍 속으로 돌진하는 씬에서 차와 사람들이 하늘로 빨려 올라가면서 음악이 고조될 때 눈물이 막 쏟아졌어요. 이것이 씨네마다. 온 정신이 고양되는 느낌이었어요”
이처럼 9년 전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를 봤던 393만 관객의 기대치가 이미 ‘맥스(max)’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매드 맥스’ 프랜차이즈의 다섯 번째 영화가 나왔다. 제목은 《퓨리오사:매드 맥스 사가》. 시리즈의 주인공인 맥스 로켓탄스키가 나오지 않는 첫 번째 ‘매드 맥스’ 영화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전작(前作)을 뛰어넘기가 애초부터 힘에 부친다.
이야기 상으로는 《분노의 도로》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이 영화는 전편(前篇)에서 용감무쌍한 외팔의 전사(戰士)였던 퓨리오사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명 붕괴 후 폐허가 된 황무지(wasteland) 세상, 퓨리오사는 미지의 녹색의 땅에서 엄마와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바이커 군단의 두령 디멘투스(“벤허”의 전차처럼 생긴 바이크 머신을 타고 다닌다)에게 납치를 당하고, 자신을 구하러 온 어머니마저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걸 보게 된다.
디멘투스는 물과 식량을 가진 성채 시타델의 지배자이자 여성들을 유린하는 임모탄과 세력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퓨리오사를 임모탄에게 넘긴다. 임모탄의 아이를 낳는 기계로 살뻔했던 퓨리오사는 머리를 밀고 남자로 분장해 시타델의 전사로 자라나 무기 농장을 차지하려는 디멘투스와 복수심에 불탄 한판 승부를 벌인다.
《분노의 도로》에서 샤를리즈 테론이 열연한 퓨리오사의 ‘다이어트 버전’(인데 눈은 더 커졌다)이라고 할 수 있는 안야 테일러 조이의 퓨리오사 역시 말을 못하거나 안하는 캐릭터로 설정됐다. 대사는 30줄에 불과하다. 그녀 역시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며 액션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하지만 아무리 이마에 시커멓게 기름칠을 해도, 아니 그럴수록, 그 커다랗고 트렌디한 눈 때문인지 그녀에게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 어울릴만한 과묵하고 깊은 샤를리즈 테론의 퓨리오사 눈빛과 연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퓨리오사:매드 맥스 사가》를 첫 번째 볼 때 이상한 경험을 했는데, 영화를 보는 도중 자꾸만 전편이 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프리퀄 영화를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닌데, 처음 느껴볼 정도로 강렬한 욕구였다.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는 21세기에 이런 미친 액션 영화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바 있다. 칸 영화제 최연소 황금종려상 수상자이자 ‘오션스’ 시리즈의 감독인 스티븐 소더버그조차도 자신은 이런 영화를 30초도 연출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컬트 영화로서 ‘매드 맥스’ 시리즈의 매력은 8기통 엔진이 터질듯한 질주와 분노, 그리고 광기다. 《분노의 도로》가 기가 호스나 워 리그처럼 V8 엔진 두 개를 단 자동차가 쉬지 않고 엔진을 풀가동하며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의 아드레날린 수치를 떨어뜨리지 않고 심박수 150-180사이를 질주한다면, 《퓨리오사》는 V8 엔진 한 개를 그것도 출력을 조절해가며 달리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전편의 엔진에 기름을 붓던 음악도 《퓨리오사》에서는 기어를 낮췄다)
우선 《퓨리오사》는 영화를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누면서 자꾸 시동을 끈다. 장(章)을 나누는 방식도 검은 바탕에 흰 글씨다. 액션의 단절이다. 비주얼의 중단이다. 이건 조지 밀러의 방식이 아니다. 게다가 이야기에 몰입해서 볼만하면 등장하는 너무 잦은 페이드 아웃 화면 전환도 영화의 매끄러운 질주를 가로막는다.
《분노의 도로》에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관객을 흥분 상태로 몰고 갔던 차량 전투씬의 설계도 다소 아쉽다. 《퓨리오사》에는 전편에는 없었던 패러슈트 액션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볼거리 선사하지만 획기적이라기보다는 새로움에 대한 약간의 강박처럼 느껴진다. 문명 붕괴 후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것만 남아있는 의도치 않은 미니멀리즘의 세상에서 효율적인 공격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장치적이고 장식적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분노의 도로》는 기이하고 컬트적인 캐릭터 설정 탓에 영화를 보면서 이건 왜 이렇고 저건 왜 저런지 궁금증이 많이 일기도 했지만, 배경 설명이 없어도 없는 그것대로도 좋았다.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고 빈틈없는 액션의 향연으로 설명을 들을 시간도 없었다. 여백은 관객이 알아서 각자 채워 넣었다. 때로는 배경 설명이 없어도 좋은 영화가 있는데 바로 그런 영화였다.
하지만 《분노의 도로》가 3일 동안 벌어진 일을 다뤘다면 《퓨리오사》는 15년의 긴 전사(前事)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설명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액션씬은 요즘 그 어떤 영화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여전히 뛰어나지만, 왠지 이야기가 꾸역꾸역 전개된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전편처럼 액션이 내러티브를 끌고 간다기보다는 이야기가 액션을 불러내는 쪽에 가깝다고 할까. 다만 이야기의 '전개'에 흥미를 느끼는 쪽이라면 더 재미있게 볼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전사에서 설명이 됐으면 하는 부분 -예를 들어 《분노의 도로》의 씬스틸러였던 빨간 내복 기타리스트 두프 워리어와 피어싱한 젖꼭지 부분만 뚫린 검은 양복을 입고 유두를 만지작대는, 한쪽 발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가스타운의 사장 식인종 등-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들은 메인 캐릭터가 아니라서 자세한 전사를 덧붙이긴 어려웠겠지만 전작에서 이 영화의 컬트적인 요소를 빛나게 하는 개성있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별 볼일 없는 등장이 못내 아쉽다. 전작에서도 이들이 많은 분량을 차지해서 돋보인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분노의 도로》와 《퓨리오사》는 메인 포스터와 카피만 봐도 승부가 결정났다는 걸 알 수 있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맥스와 퓨리오사의 강렬한 투샷 클로즈업 이미지를 배경으로 ‘희망없는 세상 미친 놈만 살아남는다’는 강렬한 카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면 《퓨리오사:매드 맥스 사가》는 “분노가 깨어나다”라는, 스타워즈 시리즈 아류작인가 싶은 안이한 카피와 주인공보다 빌런이 더 눈에 들어오는 묘한 배치의 포스터를 사용했다.
《퓨리오사》 엔드 크레딧에는 《분노의 도로》의 명장면들이 줄줄이 소환된다. 《분노의 도로》를 다시 봐야겠다는 열망은 더욱 커진다. 프리퀄을 봐서 궁금증이 해소된 것보다, ‘빨리 톰 하디와 샤를리즈 테론을 다시 만나러 가야겠어’라는 마음이 드는 쪽이다. 그런 의미에서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는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의 전성 시대에 전편을 다시 찾아보게 만드는 영리한 전략의 영화다.
조지 밀러 감독은 뉴요커지와 인터뷰에서 "관객은 개인적으로는 바보로 구성될 수 있지만, 집단적으로는 결코 틀린 적이 없다.”(Individually an audience might be comprised of idiots, collectively they are never wrong)라는 말을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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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논설위원 jool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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