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특검에 필요한 17표…“국회의원은 악수해도 속을 모른다”
한나라당, 노무현 대통령 겨냥한
측근 비리 특검법 재의결 전력
‘반대 당론’ 국힘, 이탈표 있어야
“걱정 안 해” vs “표 단속 쉽잖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 찬반 무기명 투표를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합니다. 재의결로 법안이 통과되면 어떻게 될까요? 특검이 임명되고 수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특검 수사로 윤 대통령의 ‘격노’와 ‘외압’이 사실로 드러나면 윤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몰릴 수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 발의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가능합니다.
법안이 부결되면 어떻게 될까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반기 원 구성을 먼저 해야 하고 국회법 절차도 밟아야 하므로 시간은 좀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22대 국회는 국민의힘 의원이 108명에 불과합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국민의힘 의원 8명만 재의결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지면 법안이 통과됩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위험 부담이 훨씬 더 커지는 셈입니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있는데, 윤 대통령 처지가 지금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발등에 떨어진 불은 28일 본회의 투표입니다. 특검법이 재의결되면 형사 책임이나 탄핵 소추와는 별도로 당장 윤 대통령은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됩니다. 거부권이 무력화된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대통령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국정은 마비될 것입니다. 레임덕입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할 것입니다. 정국은 폭풍과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승만 45회, 윤석열 10회 ‘거부권’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과 국회 재의결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러는 것일까요? 대통령 거부권은 “국회의 법률 제정에 대한 독점권을 방지함으로써 국회를 견제하는 장치”입니다. 그러나 거부권을 남용하면 오히려 국회의 법률 제정권이 형해화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 의결 정족수’를 통해 국회가 최종적인 입법 결정권을 갖습니다. 그게 바로 재의결입니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1948년 제정된 헌법부터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재임 중 무려 45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회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재의결 정족수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률안 가운데 31건은 국회가 재의결, 수정의결 등을 통해 법률안으로 확정했습니다. 정부 수립 초기 혼란상의 반영입니다.
1960년 개정된 2공화국 헌법에는 대통령 거부권이 없었습니다. 의원내각제였기 때문입니다.
1962년 개정된 3공화국 헌법에서 대통령 거부권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특별 의결 정족수도, ‘재의결로 확정된 법률안을 대통령이 공포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공포한다’는 조항도 그때 들어갔습니다.
3공화국 이후에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많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5건, 노태우 대통령 7건, 노무현 대통령 4건, 고건 권한대행 2건, 이명박 대통령 1건, 박근혜 대통령 2건이었습니다. 최규하·전두환·김영삼·김대중·문재인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가 없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채 상병 특검법까지 모두 10건의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3공화국 이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률을 국회에서 재의결한 사례가 있었을까요? 딱 한차례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고 8개월쯤 지난 2003년 10월31일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최도술·이광재·양길승 관련 권력형 비리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라는 매우 긴 이름의 법안을 김용균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했습니다. 한나라당 의원 147명이 발의에 동참했습니다. 검찰의 한나라당 대선자금 수사에 맞불을 놓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를 수사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정략적 특검법’을 발의한 것입니다.
당시는 16대 국회였습니다. 의원 정수는 273명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소야대 상황이었습니다. 국회의장도 한나라당 출신 박관용 의원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의원들이 집단 탈당해 새로운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던 와중이었습니다. 여당 의원은 50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압도적 다수였던 야당은 2003년 11월10일 국회 본회의에서 특검법안을 의결했습니다. 열린우리당 이호웅·송영길·이종걸 의원이 반대 토론을 했고, 한나라당 홍준표·김용균 의원과 민주당 윤철상 의원이 찬성 토론을 했습니다. 재석 192명 중 찬성 183명, 반대 2명, 기권 7명으로 가결됐습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찬성했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퇴장했습니다. 찬성 의원 중에는 김무성·박근혜·오세훈·원희룡·이낙연·황우여 의원 등이 있었습니다. 민주당의 김방림 의원이 재석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가 투표가 끝난 뒤에 뒤늦게 찬성 의사를 밝혀 표결 결과를 수정하는 해프닝도 벌어졌습니다.
민심 지지 없는 특검법 밀어붙였던 한나라당
노무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12월4일 본회의에 특검법 재의 안건을 상정했습니다. 유시민 의원이 의사 진행 발언으로 한나라당의 사과를 요구하자 박관용 의장이 마이크를 끄도록 지시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의 임채정·김성호 의원이 반대 토론을 했고, 한나라당 최병국 의원과 민주당 양승부 의원이 찬성 토론을 했습니다. 무기명 투표 결과는 총투표수 266표 중 가 209표, 부 54표, 기권 1표, 무효 2표였습니다. 재의결된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법안을 공포하지 않으면 박관용 국회의장이 공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12월6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특검법을 공포했습니다. 거부권 행사와 국회의 재의결 절차를 ‘헌법 정신이 정한 시스템’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특검법에 따라 대한변호사협회는 2명의 특검 후보를 추천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 가운데 김진흥 변호사를 특별검사로 임명했습니다. 김진흥 특검은 3개월 가까이 수사를 한 뒤 2004년 3월31일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한나라당이 제기했던 의혹의 대부분이 사실무근이라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시지요? 우리가 김진흥 특검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에 파묻혔기 때문입니다.
특검법 재의결로 기세가 오른 절대다수 야당은 노무현 대통령을 아예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선거 개입 발언을 명분으로 2004년 3월9일 발의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3월12일 국회에서 가결됐습니다. 전국에서 대대적인 탄핵 반대 집회가 벌어졌습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총선 참패를 막기 위해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를 맞는 광고를 내보내야 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4월15일 17대 총선에서 152석을 차지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5월14일 탄핵소추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처럼 2003년 특검법은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수사 대상인 범죄 의혹도 별다른 실체가 없었습니다. 이에 비해 2024년 특검법은 민심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데다 대통령과 대통령 참모들의 불법적 외압이라는 분명한 수사 대상이 존재합니다.
“국회의원은 악수해봐도 모른다”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채 상병 특검법이 재의결될 수 있을까요? 2024년 5월 현재 국회 재적 의원은 296명입니다. 구속 중인 윤관석 의원을 제외하고 295명이 출석한다고 가정하면 197명이 찬성해야 재의결이 이뤄집니다.
정당별 의석은 더불어민주당 155명, 국민의힘 113명, 정의당 6명, 새로운미래 5명, 개혁신당 4명, 기본소득당 1명, 진보당 1명, 자유통일당 1명, 조국혁신당 1명, 무소속 9명입니다. 이 중에서 이른바 범야권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의원이 180명입니다. 17표가 부족합니다.
26일 현재 재의결 찬성투표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국민의힘 의원은 김웅·안철수·유의동·최재형 네 사람입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특검법은 큰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자신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김재원 전 의원이 지난 22일 와이티엔(YTN) 라디오 ‘뉴스파이팅 배승희입니다’ 인터뷰에서 “보통 유권자는 악수만 해보면 아는데 국회의원은 악수해봐도 모른다”며 “표 단속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국회의원들의 무기명 투표는 예측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지난해 9월 본회의에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은 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가결됐습니다. 최근 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자 경선에서 추미애 당선자가 선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우원식 의원이 선출됐습니다.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채 상병 특검법이 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번 채 상병 특검법 사태를 겪으며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오불관언 태도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특검법이 통과되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당사자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남의 일 대하듯 하고 있습니다. 치명적 위험을 알고도 그러는 것인지, 뭘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4·10 총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패한 것은 바로 채 상병 사건 때문입니다. 총선 민심을 받아들인다면 특검법을 수용하는 것이 옳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여야 합의로 채 상병 특검법을 다시 의결하면 받아들이겠다’고 전격적으로 제안하면 파국은 피할 수 있습니다. 그게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입니다. 28일까지 약간의 시간이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반전을 기대하는 것은 저의 순진한 망상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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