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부터 홍콩ELS 배상 협의 본격 개시…H지수 반등도 변수
"非녹인 ELS, 6월 H지수 약 6,800이면 모두 이익 상환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약 두 달 동안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던 주요 시중은행과 투자자 간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배상 협의가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상반기 수천 명의 배상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지만, 여전히 전액 배상 등을 요구하며 분쟁조정이나 소송 등을 고려하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최근 반등한 홍콩H지수의 향후 수준에 따라 손실·배상 규모가 눈에 띄게 줄어들 가능성도 있어 은행과 투자자 모두 지수 추이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3월말 배상 방침 결정하고도 두달간 협의 지지부진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H지수 ELS를 가장 많이 판 KB국민은행은 27일부터 올해 1월 만기 도래한 6천300여 건의 ELS 손실 확정 계좌(중도해지 포함)를 대상으로 자율배상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관련 위원회를 통해 만기 도래 순서에 따라 계좌별 배상 비율을 확정한 뒤, 해당 고객에게 KB국민은행 본사가 자율배상 조정 절차와 방법을 담은 문자 메시지를 발송할 예정이다. 이후 개별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점 직원이 다시 한번 유선전화로도 안내한다.
하나은행도 지난 주말 배상위원회를 열고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다수의 고객과 협의·조정에 들어간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자율배상을 신속히 진행하기 위해 관련 전산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앞으로 매월 격주로 배상위원회를 개최해 배상을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권에서 가장 배상 협의 속도가 빠른 신한은행의 경우 이번 주 합의 사례가 1천 건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은 23일까지 820건에 대한 배상 협의를 마쳤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정상혁 은행장이 ELS 투자 손실 고객들에 대한 조속한 배상을 강조한 만큼 최대한 조정을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NH농협은행도 이번 주 수백 건의 자율배상 성사를 앞두고 있다. 지난 21일 손실 고객을 대상으로 자율배상 조정 신청을 받기 시작한 뒤 모두 667건이 접수됐지만, 아직 첫 배상금 지급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배상 비율에 이의를 제기한 69건을 제외한 598건의 경우, 이르면 이번 주 중 배상금 지급과 함께 조정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은행들은 3월 말 일제히 이사회에서 ELS 자율배상 결정하고도 신한은행과 판매 규모가 미미한 우리은행을 빼고는 대부분 지금까지 배상 협의 완료 실적이 수십건에 불과했다.
은행권 안팎의 압박에 따라 총선을 앞두고 ELS 배상 원칙을 부랴부랴 선언했을 뿐, 배상위원회 구성 등 실제 준비가 부족했던 데다 ELS 불완전판매 대표 사례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5월 13일 개최) 결과 등을 지켜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본격적으로 배상 협상이 시작되더라도 타결 사례가 은행의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배상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고객들은 대부분 합의에 동의하고 있다"며 "하지만 비율이 낮은 고객 가운데 조정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는 만큼 협의가 빠르게 진척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H지수 반등에 ELS 손실률 54%→37%…8월 이후 6,500 넘으면 손실 '0'
2022년 4,900대로 추락했다가 최근 6,600대까지 회복한 H지수도 은행·투자자 간 ELS 손실 배상 협의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3년 전인 2021년 ELS 가입 당시 기초자산(H지수) 가격에 견줘 현재 가격의 비율이 높을수록 이익이 나거나, 원금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손실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품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가입 기간에 한 번이라도 기초자산 가격이 가입 시점보다 50% 초과 하락'과 같은 '녹인(knock-in)' 조건이 붙은 ELS의 경우 현재 H지수가 가입 당시의 70%, 녹인 조건이 없는 ELS의 경우 65%를 각각 넘어야 이자(이익)를 받고 상환할 수 있는 상태다.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해 손실이 나더라도 가입 당시 지수 대비 하락률이 곧 손실률이므로 투자자 입장에서는 만기 시점의 지수가 높을수록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 '비(非) 녹인' ELS를 판매한 A 은행의 경우 올해 2월 53.89%에 이르렀던 손실률(손실액/만기도래 원금)이 5월에는 37.12%까지 떨어졌다.
은행들이 당국의 가이드라인(지침)에 맞춰 제시하는 자율배상액이 일반적으로 손실액의 40% 안팎인 만큼, 만약 앞으로 H지수가 다시 급락하지만 않는다면 각 은행의 배상액은 당초 예상보다 줄고, 배상을 위해 쌓아둔 충당부채의 일부가 다시 이익으로 잡힐 가능성이 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배상 규모가 축소되면 1분기에 쌓아둔 충당부채가 다시 환입될 수 있다"며 "충당부채를 많이 쌓은 곳은 이익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구나 8월 이후부터는 H지수가 6,500선만 넘어도 만기 도래하는 5대 은행 ELS에서 거의 손실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8월 이후 H지수가 급격히 떨어져 만기 시점의 이익 분기점(배리어)도 그만큼 낮아졌기 때문이다.
非녹인 ELS 판매 은행 "6월 6,770 이상 유지하면 만기 ELS 모두 이익상환 가능"
심지어 3년 전 관련 ELS에 가입하고도 최근 H지수 반등에 따라 손실이 아닌 이익을 보는 사례까지 속속 확인되고 있다.
신한은행에서는 지난 13일 11명 가입자의 H지수 ELS가 3년 만에 9.9%(연 3.3%)의 수익을 확정하면서 상환됐다.
가입 당시 H지수가 10,399.99, 최종 이익 배리어가 6,720.99(65%)였는데 만기 시점의 지수(6,761.64)가 이를 웃돌았기 때문이다.
B 은행에서도 같은 날 561건(456억3천만원)의 이익 상환이 이뤄졌다.
현재 6,600대로 떨어진 H지수가 다시 6,700선을 회복하고 6,800에 근접할 경우, 당장 6월부터 녹인 조건이 없는 H지수 ELS 만기 도래 계좌는 모두 이익 상환될 가능성도 있다.
A 은행 관계자는 "내부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6월 H지수가 계속 6,770을 웃돌면 같은 달 만기가 돌아오는 약 5천개 ELS 계좌가 모두 이익 상환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shk999@yna.co.kr, hanjh@yna.co.kr, s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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