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에서 치킨너겟 냄새가 나요”…아들 혼낸 엄마, 사실 알고보니 [Books]
픽은 계산능력이 뛰어난 서번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레인맨’(1988)의 실제 모델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훗날 그가 보인 증상은 ‘서번트증후군’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진단명으로 설명됐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픽처럼 종이에 새겨진 것이 어떤 글자인지는 알아보고 복사하듯 그 정보를 뇌로 옮겨놓을 수 있지만, 언어적으로 그 뜻을 해독하거나 이해하지는 못한다. ‘읽기’의 사전적 의미인 ‘글을 바르게 읽고 이해하는 일’을 생각해보면 이런 사람들은 사실 글을 ‘읽지는’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신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매슈 루버리 영국 퀸메리런던대 현대문학 교수가 읽기라는 인간의 행위를 인문학, 사회학, 뇌과학, 의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해부한 책이다. 특히 난독증, 자폐 같은 질병 증상 때문에 제대로 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을 집중 분석하면서 읽기가 우리의 삶과 정체성, 기억과 지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헤친다.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여전히 책에서 위안을 얻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담겼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글을 읽는다. 두꺼운 책이 아니더라도 스마트폰으로 뉴스 기사를 읽고, 간판의 글을 읽고 건물을 찾아 들어간다. 지하철에서 어떤 역에 내릴지, 다른 지하철 라인으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할지 등 정보도 글자를 읽을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독서광이든 책을 멀리하는 사람이든 읽기라는 행위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 언어적 읽기는 사람의 기억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기도 하고, 이는 자아를 이루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책의 각 장에서는 난독증, 과독증, 실독증, 공감각, 환각, 치매 등 읽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경학적질환을 다루면서 이들이 왜 읽지 못하고 인간다운 모습을 잃는지 보여 준다. 대표적으로 난독증은 인지와 해독에 문제가 있어 능숙하게 글을 읽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 즉,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난독증의 문제는 상당수의 청소년이 호소할 정도로 흔해졌다. 이들의 산만한 마음은 글자를 제멋대로 움직이게 하기도 한다.
광과민성, 텍스트 오인 등 시각적 스트레스도 읽기를 방해한다. 공감각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은 밋밋한 글자에서 냄새와 촉감을 느껴 제대로 읽지 못한다. 환각 증상은 읽기에 다방면에서 영향을 준다. 일례로 먼로 콜은 뇌졸중을 겪은 뒤 개, 말, 사람 같은 환영을 보기 시작했다. 또 오른쪽 시야를 가로막는 파란색 선 때문에 집중력이 흐려졌다. 노년의 인지능력 퇴화도 읽기에 지장을 주고, 너무 많은 걸 기억해내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쳐 읽기, 쓰면서 읽기, 다시 읽기 등 대안적 방식을 통해 글을 제대로 읽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읽기의 본질을 성찰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 준다. 루버리 교수는 “이 책의 핵심 전제는 읽기라는 단일한 행동은 없다는 것”이라며 “흰 종이에 얹힌 검은 글자를 눈으로 가로지르며 구두점이나 다른 기호를 따라갈 때의 즐거움, 글자를 만날 때 일어나는 반응은 활자가 얼마나 풍부한 자극을 줄 수 있는지 알려준다”고 밝혔다.
심지어 치매 환자도 읽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책에서 위안을 얻는다는 사실은 놀랍기까지 하다. 일반적으로 치매 환자는 주의력 저하, 단기 기억력 저하 등을 겪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는 치매 환자의 인지능력이 퇴화하면서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이 되는 것을 ‘제2 유년기’라고 한다. 이에 입각해 많은 치료사들과 치매 보호자들은 치매 환자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치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은 사용되는 단어가 제한적인 동화책이 아니라 환자가 과거의 기억을 회상시키기 좋은, 사진이 함께 실린 성인용 책이라고 조언한다.
읽기는 삶의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이 책을 다 읽은 뒤 덮고 나면,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 알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읽기능력이 자연스럽고 수월한 이라면, 사는 동안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 책을 탐독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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