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법을 모른다 [세상에 이런 법이]

주차장에 세워둔 차가 찌그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빼곡히 주차된 곳에서 문을 열고 차를 빼다 보면 이런 일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일정 부분 감수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메모라도 남겨져 있길 바란다. “죄송합니다. 배상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배상을 해주겠다고 나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과하고 배상해주는 게 법적으로 강제되는 경우도 있다.
2019년 국가가 운영하는 우체국은행은 한정 후견 결정을 받은 정신장애인의 모든 비대면 거래를 중단하고, 30일 합산 100만원 이상 거래의 경우 후견인과 무조건 동행할 것을 강제했다. 정신장애인 18명은 후견 법인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 차별 구제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지난해 9월27일 한정 후견 결정 내용보다 은행거래를 더 어렵게 만든 우체국은행의 조치는 장애인을 부당하게 차별한 것이라며 일정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이후 우체국은행은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1000명이 넘는 피해자에게 직접 안내문을 보내고, 홈페이지에도 일정 기간 팝업창을 띄워 안내문을 공지했다. 안내문에는 자신들의 조치가 장애인 차별행위라고 인정하고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방법을 담았다. 불편은 겪었지만,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피해 장애인은 이 안내문을 받고 국가배상 신청에 나서고 있다.
우체국은행이 자기 잘못을 알리고 배상 신청을 하라고 안내하는 조치는 국가기관의 친절한 서비스가 아니라 법적 의무이행이다. 국가배상법 제12조 제2항은 ‘손해배상의 원인을 발생하게 한 공무원의 소속 기관의 장은 피해자나 유족을 위하여 국가배상 신청을 권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우체국은행의 이러한 조치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건 국가기관이 법적 의무이행을 다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보안사령부는 학생운동 전력이 있는 사병들을 대학의 동향을 파악하는 이른바 ‘프락치’, 즉 비밀 정보원으로 활용했다. 입대 전 대학 동아리에서 ‘좌경 의식’ 공부를 했다는 이유로 고문당한 피해자들은, 이후 친구들 동향을 국가에 보고하는 협조망 역할을 강요당했다.
“죄송합니다. 배상해드리겠습니다”
2022년 11월22일 국가기관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다. 국가기관의 조치가 없자 피해자 2명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1월22일 법원은 국가책임을 인정하고 위자료 지급을 선고했다.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항소를 포기했지만, 국가의 조치는 딱 거기까지였다. 보안사 관리 명단에 포함된 또 다른 피해자 2919명에게 배상 신청을 안내하는 게 국가배상법상 국가의 의무이지만, 그 의무는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다.

국가의 잘못으로 국민에게 손해를 끼친 일은 절대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국가가 “죄송합니다. 배상해드리겠습니다”라고 나선다면 피해자에게 작게나마 위로가 될 것이다. 국가가 자기 잘못을 알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해 피해자를 국가배상소송으로 내몰고, 그 소송 과정에서 막장 변론을 하다가 패소하면 마지못해 배상해주는 건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국가가 피해자를 무법천지로 내모는 2차 가해를 중단하고 국가배상법 규정을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
최정규 (변호사·<얼굴 없는 검사들> 저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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