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국민 76% “원자력안전기관 믿는다”…한국과 무엇이 달랐나
“지역 주민 의견 듣는 것이 핵심”
“안전성 평가에 시간 제한 없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동시에 원자력과 관련된 정보에 대한 불신도 심해졌다. 사고 직후 일본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인 응답자의 89%가 원자력 정보 공개에 대해 믿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한국의 원자력 관련 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낮다. 지난 2017년 김서용 아주대 행정학과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원자력 관련 국가기관을 신뢰한다고 답한 국민은 20~30% 수준이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같은 국내 전문기관에 대한 불신은 지난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놓고 국내에서 불필요한 논란과 괴담까지 퍼지는 데 한몫 했다.
원자력발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북유럽의 핀란드는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핀란드는 세계 최초로 사용후 핵연료 영구 저장소인 ‘온칼로(Onkalo)’ 운영을 앞두고 있다. 우리의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같은 역할을 하는 방사선원자력안전청(STUK)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도 76%에 달한다. 그린피스나 세계자연기금(WWF)과 같은 환경 관련 비영리 단체보다도 STUK에 대한 신뢰도가 더 높다.
지난 4월 30일, 핀란드 반타시의 STUK에서 만난 카이 해맬래이넨 STUK 핵폐기물시설 규제 수석고문은 인허가 과정을 투명하게 운영하고, 국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한 게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58년 기관을 설립한 이후 프레임워크(기본 구조)를 잘 설정하고, 인허가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며 규제 관련 활동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핀란드는 크게 예비 허가와 건설 허가, 운전 허가, 폐로 허가의 4단계를 거치며 원자력 시설을 운영한다. STUK는 매 허가 단계마다 안전성을 확인해 정부에 의견서를 전달한다. 허가 외에도 부지 선정과 같은 세부 절차 때도 의견서를 제출한다.
핀란드는 한국과 달리 지방자치단체의 승인 없이는 예비 허가도 주지 않는다. 해맬래이넨 수석고문은 “지자체와 지역 주민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STUK는 지역 주민을 위한 강의나 워크숍을 열어 시설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고, 현장에서 직접 의견을 받아 가며 지자체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핀란드가 짓고 있는 세계 최초의 핵 폐기물 처분장인 ‘온칼로’는 부지 선정에만 17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투표는 물론 지방의회의 동의까지 받았다.
해맬래이넨 수석고문은 “현재 핀란드의 원자력 기업인 포시바가 제출한 온칼로의 운영 허가 신청서를 두고 안전성 평가를 2년 반 동안 진행하고 있다”며 “안전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 시간에 제한은 없다”고 말했다. 온칼로는 1983년 논의를 시작해 2016년부터 본격적인 건설에 들어갔다. 첫 삽을 뜨기까지 33년이 걸린 셈이다.
STUK는 포시바가 낸 온칼로의 운영 허가 신청서에 대한 의견을 지난해 말까지 내기로 했지만, 신청서 검토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마감 기한을 올해 말까지 1년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정에 맞추지 않고 의문점이 없을 때까지 시간을 두고 심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핀란드의 원전인 올킬루오토 3호기는 완공한 지 13년 만에 정식 가동을 시작했다.
STUK는 핀란드의 원자력에너지 법안을 개정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핀란드의 원자력 법안은 1980년대 후반 작성된 뒤 여러 차례 보완됐지만, 대중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고 소형모듈원전(SMR)과 같은 새로운 원자로에 대한 내용은 없기 때문이다.
해맬래이넨 수석고문은 “아직 SMR과 관련해 허가 신청은 없으나, 핀란드의 국영 에너지 기업인 포텀과 주변국인 스웨덴에서 SMR을 개발하고 있어 새로운 기술의 안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며 “SMR을 비롯해 원자력 규제와 관련해 한국의 관련 기관과 협력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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