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다고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굿바이! 미우라, 쿤타치, 우라칸”[김준의 이 차 어때?]
람보르기니가 코드명 ‘람보르기니 634(Lamborghini 634)’의 주요 제원 일부를 지난 23일 최초 공개했다. 이 차량은 올해로 생산이 중단되는 우라칸 후속 모델이다.
람보르기니 634는 플래그십 차량 레부엘토에 이은 두 번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슈퍼카로, V8 트윈 터보 엔진과 3개의 전기 모터가 결합한 ‘심장’이 얹힌다.
우라칸 후속 모델이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채택함에 따라 10년 동안 우라칸에 사용된 V10 가솔린 자연 흡기 엔진은 종언을 고하게 됐다. 이 엔진은 5.2ℓ 대배기량 자연 흡기 방식으로 압축비가 12.7, 레드존은 8250rpm에 이른다.
우라칸 후속 모델의 동력계 관련 기술 데이터가 발표된 다음날인 지난 24일, 우라칸 최상위 모델 STO를 경기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시승했다. 카매니아들의 가슴을 적시던 람보르기니 우라칸과 그의 심장 V10 N/A를 위한 ‘페어웰 드라이빙’이랄까.
STO는 우라칸의 가지치기 모델 중에서도 레이싱 트랙 주행에 가장 적합하게 만들어진 차량이다. 일반도로에서 달릴 수 있지만 ‘레이싱 머신’의 유전자를 가장 많이 물려받은 모델이라고 보면 된다.
장착된 V10 자연 흡기 엔진은 최고출력 640마력, 최대토크는 57.7kg∙m을 낸다. 지독한 경량화를 통해 공차중량이 준중형 세단과 비슷한 1339㎏에 불과하다. 거대한 출력에 가벼운 몸집으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3초면 족하다. 시속 200㎞까지 9초 만에 주파한다. 최고 속도는 시속 310㎞다.
우라칸 STO에 오르면 어쩔 수 없이 아스팔트와 친구가 돼야 한다. 지금껏 경험한 스포츠카 중에서 시트가 지면에서 가장 가깝다. 다리 공간이 타이트해 왼 다리가 페달을 밟는 오른 다리에 거의 붙는 자세의 시트 포지션이 만들어진다.
엔진 시동 버튼 위 가드를 제치고 스타트 버튼을 누른다. 시동이 걸리며 터져나오는 강렬한 배기음. 향기가 다르다. 운전자를 압도하는 사운드. 프리미엄 브랜드의 그저 그런 고성능 차와는 격이 다르다. 시동 후 배기음이 귀에 와닿는 찰나에 ‘왜 람보르기니인가?’라는 질문이 사라졌다. 슈퍼카인 것이다.
7단 듀얼클러치를 사용하는 우라칸은 변속기 버튼 뭉치에 ‘D’ 가 없다. 패들 시프트를 당기면 주행 모드(D)다.
페이스카가 신호를 보낸다. 스타트! 가속페달을 밟는 오른발에 그리 큰 힘은 필요치 않다. 발을 얹으면 시트가 등짝을 때리고, 밟는 힘을 좀 더 주면 휠스핀이 튄다.
우라칸은 F1 머신처럼 엔진을 운전자 등 뒤에 두는 미드십카다. 3000, 4000, 5000, 6000rpm···. 엔진 회전수가 높아지면 STO의 자연 흡기 V10 엔진은 소리를 쏟아내는 ‘폭포’로 변한다.
고회전 영역에 접어들수록 소프라노 톤에 가까워지는 엔진음, 소닉붐 같은 거대한 배기음에 갇혀 운전자는 차라리 무념 무상해진다.
STO의 자연 흡기 V10 엔진은 압도적인 리니어리티(선형성)를 보여준다. 운전자의 발끝이 입력한 신호에 절대적으로 비례해 출력이 터져준다.
종종 과잉된 파워를 쏟아내다 순간 느려 터진 나무늘보가 되는 터보 엔진을 비웃을 만하다. STO의 V10 자연 흡기 엔진은 맑은 눈과 영혼을 가진 미소년 같다. 드라이버를 오로지 속도에만 전념케 하는 매력을 가졌다.
태코미터는 1만rpm까지 표시돼 있다. 레드존은 8250rpm이다. 스로틀을 증가시키면 태코미터의 디지털 게이지가 빠르게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시프트 업은 최대토크가 터지는 6000rpm 전후에서 ‘딸깍’. 아직까지 레드존은 2000rpm이나 남았다. 대배기량 고회전 자연 흡기 엔진이 가져다주는 호사스러움이다.
헤어핀 진입 전 브레이킹. 우라칸 STO의 제동은 면도날처럼 예리하다. 브렘보 CCM-R, 이 모터 스포츠 DNA 가득한 브레이크는 스피도미터 속 숫자를 단숨에 반토막 낸다. 이어지는 다운 시프트에 천둥 같은 배기음이 터지고, 태코미터 게이지가 다시 솟구친다. 우라칸 STO에게 코너링은 탈출 아닌 완롱이다.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를 질주하던 우라칸 STO가 피니시 라인에 멈췄다. 람보르기니의 마지막 V10이 으르렁거린다.
미우라, 쿤타치, 무르시엘라고···. 사라진다고 잊히는 것은 아니다. 전설이 될 뿐.
“굿바이! 우라칸 V10 N/A.”
김준 선임기자 j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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