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대령이 순직 사건 수사 브리핑을 하려 했던 날…국방부에서는 무슨 일이? [그날의 기록]
“해병대사령부에서 오늘 계획했던 백 브리핑을 하지 못하게 됐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지난해 7월31일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올 무렵 나왔던 공지사항이다. 이날 오후 2시 호우피해 복구작전 중 순직한 해병대원 사건 처리에 대한 해병대수사단의 브리핑이 예고돼 있었다. 브리핑이 끝나면 해당 내용을 곧바로 보도할 수 있었다. 브리퍼는 박정훈 당시 해병대수사단장이었다.
스무살 해병대원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국민 모두 군의 사건처리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수사권은 경찰에 있었지만 군의 초동조사가 향후 경찰 조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날 예정된 브리핑은 군이 책임자를 얼마나 엄정히 가려냈는지 판가름할 수 있는 가늠자였다. 그러나 브리핑 시간이 2시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취소하겠다고 알려온 것이다.
“어떤 내용을 설명하려고 했던 건가요”, “안 하는 이유가 뭡니까” 출입기자들뿐만 아니라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군 당국자들도 혼란에 빠졌다. 해병대가 밝힌 취소사유도 계속해서 달라졌다. 처음에는 수사를 보강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가 이후에는 군이 조사 내용, 혐의를 언론에 알리면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병대사령부의 자체적 판단이 아닌 국방부의 법무검토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도 했다. 법무검토를 했다는 곳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이다.
현장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경찰이 언론보도를 보고 수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브리핑이 수사에 영향을 미치냐”, “3일 전에는 왜 브리핑한다고 먼저 말했나”는 비판이 나왔다.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자 해병대가 아닌 국방부 관계자들이 기자실을 찾아 보충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국방부 역시 수사관할권이 민간경찰로 넘어갔는데 군에서 조사한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해명했다.
민감한 부분을 제외하고라도 알려달라는 의견도, 봐주기 수사를 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약속된 오후 2시가 됐지만 해병대사령부 관계자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날 브리핑을 하기로 했던 박정훈 전 단장은 상관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고 사건을 경찰에 이첩시켰다는 이유로 보직이 해임됐고 항명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해병대수사단은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이첩하려고 했으나 국방부는 경북경찰청에 이첩된 자료들은 회수했고 혐의자를 2명으로 축소한 뒤 경북청에 재이첩했다. 임 사단장의 이름은 빠진 상태였다.
박 전 단장 변호인 측의 설명에 따르면 해병대가 국방부에 브리핑하겠다고 한 2023년 7월28일 해병대수사단은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에게 수사결과를 보고했고 유가족에게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이첩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7월30일 오전 10시쯤 해군참모총장에게 보고하며 사단장 보직해임 등 인사조치 관련해 이야기했고 오후 4시30분에는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장관 보고가 끝난 후 국가안보실에 파견된 김형래 대령은 수사결과보고서를 공유해달라고 요청하자 수사단에서 난색을 보였고 결국 다음날 언론 브리핑 때 제공하려고 했던 언론 브리핑 자료를 보내주게 된다. 대통령실이 해병대수사단의 수사결과를 인지하게 된 시점이다. 이때 김 대령은 이메일을 통해 자료를 전달받으며 “절대 이쪽에 전달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회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단장 측은 언론브리핑이 취소된 7월31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주관회의에서 국방비서관으로부터 수사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했다는 말을 김계환 사령관에게 들었다며 ‘VIP 격노설’을 제기했다. 혐의자에 임성근 1사단장이 포함된 것을 두고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질책했다는 것이다.
이후 이종섭 장관은 대통령실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이 장관은 오전 11시56분쯤 김 사령관에게 이첩보류 지시를 했다고 한다. 한 시간 후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브리핑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이 장관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에게 법률검토를 지시했고 법무관리관은 그날 오후 박 전 단장에게 전화해 ‘직접적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해 피의자를 특정하는 게 좋다’는 언급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전 단장 측은 이를 두고 외압을 가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유재은 관리관은 이첩 방법을 원론적으로 설명한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종섭 전 장관의 변호인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 전 장관은 2023년 7월 31일 대통령의 격노를 접한 사실이 없다”며 “대통령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빼라’는 말을 듣거나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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