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독도’가 아니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일본 정부의 네이버 축출 시도가 논란이 되고 있다. 네이버 클라우드의 보안 사고를 이유로, 일본 정부는 일본 라인(LINE)에 대한 네이버의 지분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뒤늦게 단호한 대처를 말하고, 야당 대표는 이토 히로부미까지 소환해 반일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대응이 불공정하고 불합리하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네이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요구는 도를 넘어섰다. 일본 정부는 보안 강화를 위한 순수한 뜻에서 자본 관계의 재검토를 요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안 사고는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네이버 클라우드와 업무를 위탁받은 회사의 직원이 모두 사이버 공격을 받아 생긴 일이다. 지분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글로벌 플랫폼 시장의 보호무역 장벽
네이버가 라인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라인은 한국 IT 기업의 무덤이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한국계 기업이다. 13년 전 일본에 처음 선보인 라인은 일본 전체 인구의 80%인 약 1억 명이 사용하는 일본을 대표하는 SNS다. 동남아시아에서도 플랫폼 시장의 강자다. 일본부터 대만과 태국, 인도네시아까지 모두 합치면 월 이용자 수 2억 명 이상을 자랑한다. 네이버는 라인 덕분에 비영어권 데이터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플랫폼 회사가 됐다.
라인을 포기하면 네이버의 기업 가치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네이버는 7월1일까지 라인야후가 일본 정부에 제출할 보고서에 지분 매각과 관련된 내용은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네이버와의 시스템 분리 계획 같은 기술적 대책만 넣을 방침이라는 것이다. 보고서에 관련 내용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앞으로 매각이 없을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일이 원만하게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총무성 행정지도에서 나온 정확한 표현은 'secure governance'다. 지배구조를 변경하라는 말을 지분을 넘기라는 말 외에 다른 뜻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행정지도가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사업을 하며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를 따르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번엔 어떻게 그냥 넘어간다고 해도 무슨 이유로든 또 발목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
일본 정부의 압박에 네이버라는 기업이 대응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는 있다. 하지만 마땅한 수단이 없다. 당장 야당도 정부를 비난하기만 할 뿐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뚜렷한 의제와 분명한 전선이 있는 협상이 되기도 어렵다. 일본의 대응은 뻔하다. 우리 정부가 지분 매각을 강요하지 말라고 요구하면 표정을 바꾸지도 않고 '그런 뜻이 아니며 그럴 생각도 없다'고 할 것이다. 2019년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을 문제 삼으면서 수출규제를 할 때도 그랬다.
이쯤에서 우리도 나름대로 고민하고 미리 답을 찾아놓아야 할 문제가 있다. IT 플랫폼에 대한 국가 권력의 통제 문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독자적인 인터넷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구글과 아마존이 세계 각국의 인터넷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니다. 그래서 달리 생각하기가 쉽지 않지만, 만약 우리나라에서 카카오의 지분 절반을 중국이나 일본 자본이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데이터 유출 사고까지 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지분 매각은 아니라고 해도 대책은 필요했을 것이다. 통합 정부 사이트나 앱이 없는 일본 정부는 대국민 소통을 라인에 의존한다. 일본 총무성 조사에 따르면 정부 기관의 78%, 지자체의 65%가 라인을 사용한다. 스마트폰을 쓰는 일본인 대다수가 사용하고 동네 분리수거 이용료 납부까지 책임지는 플랫폼의 지분 절반을 한국 기업이 가지고 있다.
현재 많은 나라가 플랫폼 시장에서 데이터를 스스로 관리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무역 장벽을 쌓고 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4월24일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 강제 매각법에 서명했다. 유예기간 3개월을 포함해 앞으로 1년 안에 틱톡이 미국 기업에 운영권을 매각하지 않으면, 틱톡 애플리케이션을 올리는 미국 내 앱스토어 운영사를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명분은 미국인 이용자의 정보가 중국에 넘어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플랫폼 시장의 국경을 높이고 있는 건 어느 한 나라만이 아니다. 모든 나라는 각자 놓인 상황과 환경을 고려해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와 정책을 만든다. 중국 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터넷 공간을 국가 안보 문제로 취급해, 외국의 서비스를 철저히 배제해 왔다. 미국의 인터넷 서비스들이 중국에는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플랫폼 보호주의의 대상은 우방이라고 제외되는 것도 아니다.
네이버 스스로 이익 고려해 선택할 일
유럽연합의 '디지털 시장법'은 중국 기업만이 아니라 미국 기업들인 아마존과 애플 등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어느 나라도 자기 나라의 데이터를 다른 나라가 관리하는 상황이라면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다. 데이터 주권 문제에서는 우리도 미리 입장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알리익스프레스를 비롯한 중국의 전자상거래 플랫폼들은 우리 국민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기업들에서 우리 국민의 데이터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할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렇게 보면 네이버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모든 측면에서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네이버는 독도가 아니다. 더구나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네이버의 책임도 없지 않다. 라인은 2021년과 2023년 연속 개인정보 유출을 겪었고, 두 번 모두 제대로 된 대응에 실패했다. 보안에 허점을 보인 것은 사실이고 데이터 유출 문제는 간단한 사고가 아니다.
특별히 돌파구가 만들어지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지분 매각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실 네이버가 지분 매각을 선택할 만한 나름의 이유도 없지는 않다. 이미 라인은 소프트뱅크가 지분 구조와 상관없이 이사회를 장악하고 경영과 서비스를 총괄하고 있다. 지분 변경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인공지능 분야 투자가 절실한 네이버로선, 라인의 지분을 정리해 실익을 챙기고 그 돈을 AI 등에 투자하는 것이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소프트뱅크의 주장으로는 네이버도 지분 매각에 소극적이지는 않다고 한다. 매각을 생각한다면 핵심은 역시 매각 주식 수량과 매각 대금 등 거래 조건일 수밖에 없다. 제값을 받아야 한다. 액면가로만 따져도 8조원이다. 네이버의 실익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네이버가 스스로 기업과 주주의 이익을 고려해 선택할 일이다. 정부가 할 일은 결국 어떤 방향으로 가든 네이버가 최대한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정도일 것이다. 이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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