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는 어땠나[영감 한 스푼]
요즘 미술인들은 만나면 “베니스 비엔날레 어땠냐”는 질문을 인사처럼 나누고 있는데요.
프리뷰 기간인 4월 16~19일 찾은 베네치아에서는 마리아 발쇼 영국 테이트 미술관장, 아담 와인버그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장 등 국제 미술사를 이끄는 기관장들은 물론 비엔날레에 각국을 대표해 참가한 수많은 큐레이터와 작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비엔날레의 본전시는 역사상 첫 남미 출신 예술 감독인 아드리아누 페드로자가 기획을 맡아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를 주제로 펼쳐졌습니다.
지난주에는 화제의 국가관과 병행 전시를 소개했는데, 오늘은 메인 전시인 국제전 리뷰를 보내드립니다.
점잖은 큐레이팅, 돋보인 작품
중앙 파빌리온은 화이트 큐브의 성격이 강하고, 아르세날레는 층고도 공간도 넓어 좀 더 과감한 설치 작품을 펼칠 수 있는 장입니다.
우선 중앙 파빌리온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20세기 미술을 조명한 섹션에서 처음에는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이 섹션을 페드로사 감독은 크게 추상화, 초상화 등 장르로 구분했는데 미국과 유럽 중심의 20세기 미술사에 기록되지 못한 작가들로 채운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추상화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거 피카소 같은데?’, ‘이건 몬드리안 같은데?’ 하는 기분이 들어 당황스러웠던 것입니다.
이런 시각은 전통적인 미술사 교육을 받은 관객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전통 미술사는 ‘유명 작가’를 중심으로 수직적인 계보를 설정하듯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가려내고 분류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개별 작품을 들여다보면서 미술사에 가졌던 편견을 깨는 계기가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즉 어떤 사조를 따라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 작가가 처한 삶이나 사회적 맥락에서 자신만이 느낀 바를 표현했다는 것에 더 집중하면서 작품을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전통적 미술관 방법론 때문에 어떤 관객들은 ‘실험적인 전시를 기대했는데 실망이다’라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서로 비슷하거나 장르를 공유하는 작품을 모아준 것은 적절한 큐레이팅이라고 제게는 느껴졌습니다.
또 사이즈가 너무 작아 코앞에서 봐야 하는 작품들을 모아 놓은 전시장이 이어졌습니다.
전시장을 보면서 ‘미술사 밖에도 재밌는 작품이 많구나’하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세계 미술을 모른다”
클레르 퐁텐의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 네온 사진 작품과 잉카 쇼니바레의 ‘난민 우주인’이 그것입니다.
특히 ‘난민 우주인’은 낡은 그물로 된 봇짐을 짊어지고 화려한 패턴이 그려진 천 옷을 입고 있습니다.
고도로 발달한 줄 알았지만 아직도 수많은 결점을 가진 인류의 ‘허름한 문명’을 상징한 작품은 “우리는 문명뿐 아니라 세계 미술도 아직 잘 모른다”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단순하지만 강렬한 시각 언어가 연이어 펼쳐지면서 보는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작품을 유리 판 위에 걸고, 캡션은 뒷면에 부착해 앞에서 보면 그림만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설치 방법이 제시하는 메시지는 분명하죠. ‘다른 정보 없이 그림만 봐달라. 그래도 훌륭하지 않느냐’.
이밖에 남미 선주민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들도 펼쳐졌습니다.
아르세날레 전시장의 3분의 2 지점을 지나면 반복되는 조형 언어 스타일에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규모에 비해 꽤 오랫동안 집중력을 갖고 작품을 볼 수 있도록 만든 세심한 큐레이팅이 보였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미술사를 확장하기만 할 수 있을까? 그럴 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향후 미술사에서 펼쳐질 관건은, 확장된 미술사 속에서 좋은 작품을 골라낼 새로운 기준을 찾는 것이 될 듯합니다.
그러니까 미국 유럽 중심 미술사가 찬양했던 ‘사조’가 아니라 세계 미술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남을 ‘클래식’을 어떻게 판별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듯합니다.
앞으로 ‘역사적인 작품’의 기준은 무엇이 될까? 여러분의 의견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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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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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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