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AI가 최전방 지킨다... '인구절벽'에 병력 부족한 軍의 실험[문지방]

김형준 2024. 5. 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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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반 복합경계작전체계' 가동
경기 연천군 5사단 GOP 가보니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경기 연천군 육군 5사단 경계작전에 시범 투입된 이동식 레일로봇 카메라. 육군 제공

경기 연천군 육군 제5보병사단 ‘열쇠전망대’ 인근 일반전초(GOP). 철책선을 따라 터벅터벅 걷던 기자의 뒤통수가 몹시 따가웠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다 슬쩍 위를 보니 철책보다 약 5m 상공으로 카메라를 장착한 박스형 로봇이 레일을 타고 움직이면서 군사분계선(MDL)과 북한을 함께 감시하고 있더군요. 알고 보니 수풀투과레이더(FP레이더), 인공지능(AI) 열상감시장비(TOD)와 함께 우리 군의 ‘AI 시범 전력 3대장’으로 꼽히는 이른바 ‘레일로봇 카메라’였습니다.


AI 시범사업, 왜 5사단인가

경기 연천군 육군 5사단에서 경계작전을 수행하는 장병들. 육군 제공

22일 찾은 5사단 GOP에선 이처럼 경계 태세를 고도화하고 병력 감소에 대비하기 위한 AI 경계 전력이 2022년부터 시범운영 중이었습니다. 2016년 12월 TOD, 카메라, 광망 등을 정식 도입한 GOP ‘과학화경계시스템’의 진화된 버전으로, 정식 명칭은 ‘AI 기반 복합경계작전체계’ 전환 준비 작업입니다.

게다가 이곳 5사단은 2007년 전군 최초로 과학화경계시스템이 적용된 곳이기도 합니다. 과학화경계시스템은 원거리에서 레이더와 각종 감시장비로 적의 접근을 탐지 및 감시하는 시스템입니다. 이런 5사단에서 이번엔 AI 기반 복합경계작전체계가 시범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5사단일까요? 군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5사단은 서부(경기도)와 동부(강원도) 철책의 중간 지점입니다. ①5사단 관할 GOP의 절반가량은 산악, 나머지는 평지라서 다양한 경우에 대한 AI 학습 및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고 ②레일로봇이 설치된 열쇠전망대 주변은 북한의 감시초소(GP)와 GOP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인 데다 ③서울에서의 접근성(차량으로 2시간 이내)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 장비 운용에 조금 더 수월하다는 겁니다.

참고로 열쇠전망대는 6·25전쟁 대표 격전지 티본, 에리, 폭찹, 화살머리, 백마고지 등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조망 가능 직선거리 4㎞ 정도 떨어진 북측엔 80여 가구 200여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략요충지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에 더더욱 안성맞춤이라는 얘기죠.


군이 그린 미래 경계 모습은

경기 연천군 육군 5사단에서 경계작전을 수행하는 장병들. 육군 제공

안개가 자욱한 이날 오전에도 레일로봇은 약 1㎞의 레일을 부지런히 오가며 ‘낯선 손님’인 국방부 기자단 동태를 살폈습니다. 레일로봇 카메라는 약 1㎞에 걸쳐 설치된 레일을 타고 초속 5m 속도로 이동하고, 때로는 경고 방송까지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레일로봇의 주된 기능은 감시보다 데이터베이스 축적입니다. 이미 사람이 다니기 힘든 길까지 이동하며 감시가 가능해 효과적인 데다, 자동으로 데이터베이스를 척척 쌓으니 갈수록 더 촘촘한 데이터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군 관계자는 “향후 AI 기술이 고도화되면 병력 감축 효과를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현행 AI TOD 기술만으로도 사람과 동물을 AI가 인식하고 표시해 주는 ‘AI 객체 인식’ 기능이 꽤 정확하다고 합니다. 이는 기존에 활용하던 TOD에 AI 기술을 접목해 영상 속 표적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진화된 기술입니다. 또 저주파 레이더를 활용해 수풀 뒤 숨은 북한군의 동태도 탐지할 수 있는 ‘수풀투과 레이더’도 설치됐습니다. 가시광선을 이용한 기술을 활용했던 이전 기술로는 수풀이나 나무 뒤에 있는 사람이나 동물까지는 탐지하기 어려웠지만, 이제 한층 더 세밀한 경계가 가능해진 셈입니다.

앞서 시작된 과학화경계시스템 기능까지 더하면 미래 철책은 한층 고도화된 경계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철책을 둘러싼 ‘광망 센서’는 경계 사각지대를 크게 줄여줬습니다. 검은색 전깃줄 모양의 광망을 사람이 움켜쥐거나 끊으면 대대 지휘통제실로 이상 신호가 전달되고, 가장 가까운 경계 근무자가 현장으로 출동하게 되는 시스템이죠.

야생동물이 물어뜯는 등 철책을 물리적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이상 신호를 전달할 만큼 예민합니다. 북한군 귀순 등의 상황 때 조기 대응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산업현장에선 이미 활용하기 시작한 이른바 ‘로봇 개(4족보행 로봇)’ 등을 도입, 철책 경계나 지뢰 탐지 등에 직접 투입하는 방안 등을 군은 검토 중입니다.


AI 알고리즘, 데이터 축적 고도화 과제

경기 연천군 육군 5사단 GOP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 전경. 육군 제공

이날 취재진이 찾은 대대 지휘통제실(OP)에는 20대 이상의 대형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GP와 GOP 인근 상황이 노출됐습니다. OP는 최고 수준의 보안을 요하는 곳이라서 휴대폰, 스마트워치 등도 맡겨두고서야 출입이 가능했습니다. 한 모니터에서 북한군 GP를 TOD로 당겨 촬영하자, GP 모습을 상당히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첨단 장비만으로 경계 작전을 완수하는 시대는 아직 먼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취합한 정보를 확인해 판단하고 현장에서 대응하는 것은 결국 장병들 몫이기 때문입니다. AI의 학습 및 판단 착오로 경계에 구멍이 났을 때도 결국엔 사람이 책임져야 합니다. 2020년 11월 발생한 ‘점프 귀순’ 사건으로 대표되는 성능 검증 미비도 우려되는 점입니다. 당시 폐쇄회로(CC)TV와 TOD가 귀순자를 포착했으나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GOP 대대장인 손영주 중령은 “알고리즘과 데이터베이스 축적이 AI 기술 적용 확대를 위한 포인트인데, 아직은 전군에 실전 투입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군은 AI 경계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보고 있습니다. 인구절벽이 현실화되기 때문이지요.

국방부와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따르면 2020년 33만4,000여 명 수준의 입영 대상 병력 자원은 2035년 22만7,000여 명까지 줄어들 전망입니다. 불과 17년 뒤인 2041년부터는 약 13만 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번 AI 경계 시스템 시범 도입 성과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단 뜻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사업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군은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똘똘한 예산 운영 및 전문인력 양성에 힘써야 할 때입니다.

문지방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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