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숨 절반도 주고팠던…'강아지'가 물려 죽었다
10년간 애지중지 키운 가족, 개에게 물려간 지 나흘 만에 숨진 채 발견
구리시청, 당일 같은 산에서 멧돼지 포획 위해 2시간 동안 사냥개 풀었으나…"반려견 공격한 건 들개로 추정"
샌디 보호자 "휴일 대낮에 주민한테 알리지도 않고 사냥개 풀어" 책임 소재 파악 등 청원
5월 4일 토요일, 낮 12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반려견 샌디는 갈색 털이 복슬복슬한 작은 개였다. 10살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기념으로 여행도 앞두고 있었다. 신나게 놀며 축하해줄 참이었다. 아침에 눈 뜨면 발밑에 누워 있던 강아지. 샌디 보호자의 말마따나 '내 수명의 절반을 나누고 싶을 만큼' 끔찍이 아꼈던 강아지. 그런 가족이었다.
그날 79세 할아버지(샌디 보호자의 아버지)가 샌디와 산책을 나섰다. 용마산 산책로를 따라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시루봉 인근까지 걸어갔다. 매일 다니는 산책 코스였다.
거기서 할아버지와 샌디는 잠시 숨을 골랐다. 바위 위에 앉아서 쉬었다.
바로 그때였다. 산 어딘가에서 개 2마리가 샌디에게 죽일듯이 달려들었다. 샌디는 무서워 도망갔다. 개들은 샌디를 빠르게 쫓았고, 물려가다시피 사라졌다. 놀란 할아버지는 샌디를 구하려 쫓아가려다 넘어져 다쳤다. 순식간에 실종된 뒤였다. 사건이 발생한 등산로 아래쪽은, 구리 아치울마을 방향이었다고 했다.
우중에도, 혼절 직전의 상황에서도 가족들은 샌디를 찾아 나섰다. 3일 동안 샌디 가족, 지인, 이웃, 사단법인 유행사(유기동물 행복 찾는 사람들) 봉사자들까지 동원됐다. 실종 전단을 붙이고 산속을 계속 헤맸다.
나흘째 되던 날, 샌디는 산속에서 발견됐다. 이미 싸늘한 사체가 돼 부패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가족들은 피를 토하듯 울부짖었다. 괴로움에 몸서리쳤다. 배고프면 밥 달라, 목마르면 물 달라, 큰 소리 뻥뻥치던 사랑하는 반려견이 별안간…개들에게 물려가 숨졌다.
"홀로 며칠을 비 맞으며 추운데 우릴 얼마나 기다렸을까. 심장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어요. 샌디에게 너무너무 미안했어요. 집안엔 여전히 샌디의 흔적, 체취가 가득한데…"
5월 4일에 시간이 멈췄다던 샌디 보호자의 말이었다. 그는 샌디의 가장 좋은 언니이기도 했다.
그런데 샌디를 찾던 도중에 등산로 아래쪽에 서너 마리 개들이 모여 있는 걸 목격했다. 인근 아치울 마을 주민들에게 물으니 "멧돼지를 포획하는 사냥개들"라고 했단다. 대부분 이에 대해 잘 아는 분위기였다.
갑자기 물려 죽은 반려견. 인근에서 발견한 멧돼지 사냥개. 그러니 샌디 보호자는 자연스레 사냥개가 샌디를 물어 죽인 거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샌디 가족들이 관할 지자체인 구리시청에 문의했다. 구리시 환경과 담당자는 멧돼지 포획을 위해, 그날 사냥개를 풀었던 건 인정했다. 그러나 포획단 사냥개들이 활동한 동선, 위치, 시간 등을 감안했을 때, 사냥개가 한 일이 아니라 했다. 들개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러나 샌디 보호자는 이리 말했다.
"아버지가 샌디와 매일 산에 가시고, 3~4년을 다니시는데 들개를 보셨다고 한 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주민에게 알리지도 않고 사냥개를 주말 대낮에 풀었다는 거예요. 미리 알았다면 산에 안 갔을텐데…사냥개들이 사람을 해칠 수도 있는 건데 너무 황당합니다."
또 지난 1월에, 사냥개가 등산로 인근을 돌아다니는 걸 목격했단 이들이 찍었다는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냥개인 걸로 확정 지을 순 없으나, 산을 돌아다니는 개가 있는 모습이 찍혔다.
'들개 소행'으로 추정한 이유에 대해선, 멧돼지 포획단 사냥개가 아닌 걸로 보여서라고 답했다.
구리시청 환경과 관계자는 "포획단 사냥개 소행이라 하면 증거가 있어야 하는 부분인데, 어느 개한테 어디서 공격당했고, 개 사체는 어떻게 발견됐고, 그런 걸 특정하게 말씀하신 게 아니라 주장만 있는 상황"이라며 "파악한 바로는 당시 행적과 민원인 행적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답했다.
이에 그 또한 포획단 진술에 의존한 것이 아니냐고 묻자 "직접 증거는 안 되겠으나, 포획단 말을 다 믿을 순 없어 아치울 마을에 가서 통장님, 수십년 거주한 주민께도 그간 사냥개 피해가 있었는지 등을 물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를 확실히 밝힐 물증이 부재한 상황. 사냥개에 통상 다는 GPS로 당일 동선 기록을 살피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관계자는 "안타깝게도 기계가 비에 맞아 작동이 안 돼, 그날 포획단이 사용을 못 했다고 했다"며 "GPS 역시 장착 의무는 아니"라고 했다.
다만 향후 관련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게 있어 보였다.
멧돼지 포획을 위해 4일 2시간 동안 풀었다던 사냥개. 활동 장소는 등산로가 아니라 했으나, 동선상 주민들이 다니는 길과 겹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다. 구리시 관계자는 "사냥개를 등산로에서 풀어 놓은 건 아닌데, 거기까지 날아갈 순 없으니 등산로를 지나갈 순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멧돼지 포획단 활동은, 구리시가 지원하거나 관리하는 게 아니라 했다. 시가 포획 허가만 내어주면 포획단이 알아서 활동하는 거였다.
그런데 포획단 활동과 관련해 안전을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은 없었다. 어느 시간대에 해야 하는지, 한다면 주민들이 조심할 수 있게 알아야 하는데 관련해 알리거나 주민 출입을 통제할 의무도 없게 돼 있었다.
구리시청 관계자는 "(그런 매뉴얼이 있었다면) 입산 통제 등을 했을 텐데 그런 게 없었다. 지금까지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면 고민했을 텐데 그동안 없었고, 이번 기회를 계기로 사냥개 활동, 홍보, 통제 등에 대한 부분도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2021년 11월엔 대구 북구 함지산 근처 산책로에선 반려견과 산책하던 부부가, 사냥개의 공격을 받았다. 사냥개는 반려견 목을 물어뜯었다. 이후 발견했을 땐 반려견의 숨이 끊어져 있었다.
관할 지자체인 대구 북구청은 이후 사냥개를 포함해 멧돼지 포획 관련 매뉴얼을 정비했다. 북구청 관계자가 말했다.
"주간엔 사냥개를 안 보내고 야간 위주로 하는 걸로 바꿨습니다. 사람 없는 지역에서 풀도록요. 그것도 안전하게 목줄을 끌고 다니며 멧돼지를 쫓을 용도로만 하게 매뉴얼을 만들었고요. 주간에 급박한 상황이 생기면 119나 경찰쪽에 요청해 현장에 나가달라고 하고, 현장 통제가 됐을 때 개를 풀고 하도록 바꿨습니다. 보완할 수 있는 건 계속 보완하려 합니다."
샌디 보호자는 경기도청원에 '휴일 낮 시간 오프리쉬(줄 풀린) 사냥개를 동원한 멧돼지 포획 반대'란 청원을 지난 20일 올렸다. △사전 고지나 안전장치 없이 낮 시간대 시행하는 문제 △포획단 허가 및 관리 체계에 대한 의문 △매뉴얼 여부 △사냥개 GPS 기록 문제 등을 개선하라고 촉구한 거였다. 1만명 이상 청원에 동의할 경우,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응답한다.
샌디 보호자가 말했다.
"너무나 소중했던 저희 집 막내딸 샌디에게, 제가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건, 이 사실을 알리고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비록 저희 샌디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지만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동참 부탁드립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대표는 "사냥 문화가 있는 유럽도 규제를 촘촘히 계속한다. 개가 물어 죽이는 방식은 오래전부터 금지됐다. 사냥개를 쫓게 하거나 쓸 때도, 영국도 법을 촘촘하게 만들어뒀다"고 했다.
이어 "현장에선 개 없이 멧돼지 사냥이 힘들단 목소리가 있어서, 한 번에 개를 쓰지 말라고 못 하더라도, 이게 문제란 걸 인식하게 하는 게 시작"이라고 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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