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속의 빈곤 [생활속산업이야기]
생산성이 낮고 품질은 불량...생산설비 노후화
北 시멘트 강도, 국내 50%에 불과
“아 그랬구나!” 일상 곳곳에서 우리 삶을 지탱해 주지만 무심코 지나쳐 잘 모르는 존재가 있습니다. 페인트, 종이, 시멘트, 가구, 농기계(농업) 등등 얼핏 나와 무관해 보이지만 또 없으면 안 되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곁에 스며 있지만 숨겨진 ‘생활 속 산업 이야기’(생산이)를 전합니다. 각 섹터(페인트-종이-시멘트-가구-농업·농기계)별 전문가가 매주 토요일 ‘생산이’를 들려줍니다. <편집자주>
[이창기 한국시멘트협회 부회장] 통일 대박. 지난 2014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이 대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남북통일을 거론하며 꺼낸 발언이다. 당시 이 내용은 언론에서 크게 보도돼 많은 국민이 공감할 만큼 큰 이슈가 됐다.
당시 국내 연구기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통일 이후 30년간 북한은 매년 약 1500~2200만톤의 시멘트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국내 시멘트 연간 수요의 약 30~50%에 달하는 양이다. 통일이 아닌 남북간 경제협력에 그치더라도 각종 건설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 시멘트 신규 수요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됐다.
여기서 의아한 점은 북한도 우리나라처럼 석회석 매장량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시멘트 공장도 운영 중인데 왜 통일이 되면 남한 시멘트업계의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고 했을까라는 대목이다.
국내 연구기관에 따르면 북한에는 시멘트 주원료인 석회석 약 1000억톤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국내 시멘트 수요는 약 5000만톤. 단순 계산해도 무려 1000년 이상을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무한대에 가까운 석회석을 보유한 북한은 품질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왜 통일이 되면 국내 시멘트업계가 북한에 제품을 공급해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 최근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이 전역의 시멘트공장을 방문해 시멘트 생산을 독려하는 모습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이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북한의 시멘트 산업은 정부의 많은 지원을 받으며 절대적인 위상을 인정받고 있지만, 정작 낮은 생산성과 품질 불량으로 시멘트 제품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있다. 북한에는 현재 총 12개의 시멘트공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해외 기업과 합작해 설립한 평양 인근의 순천시멘트, 상원시멘트를 제외하면 일제 강점기에 건립된 공장을 보수해 사용하고 있어 생산설비 노후화가 심각하고 생산량도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또한, 24시간 365일 내내 가동하기 위해서는 대용량이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지만 북한은 전력난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안정적인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450℃의 고온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경제난으로 연료 확보와 투입이 어려운 형편이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평양을 비롯한 북한의 전역에서 아파트와 같은 높은 건축물이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적잖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시멘트에 모래, 자갈 등을 혼합해 제조한 콘크리트를 사용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의 압축강도는 건물의 안전성과 내구성을 보장하는 척도다. 북한 시멘트 제품을 입수해 압축강도를 측정해 보면 국내 시멘트 제품의 50% 수준에 불과하다. 아무리 질 좋은 석회석 원료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기술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시멘트 제품의 제대로된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반면에 국내 시멘트업계는 대용량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충분한 인프라를 갖췄다. 또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화석연료를 대체해 폐타이어, 폐플라스틱 등 가연성 폐기물을 사용해도 뛰어난 품질의 시멘트 생산이 가능한 안정적인 제조공정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건축자재 분야 학자와 전문가들은 시멘트를 대체할 경제적이고 대용량의 공급이 가능한 자재는 나타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통일 혹은 남북한 경제협력이 활성화될 경우 북한의 사회기반 시설 구축과 시멘트 제조기술의 이전은 불가피하다. 무한대로 사용 가능한 북한의 질 좋은 석회석과 남한의 뛰어난 제조기술이 어우러진 환상의 콤비를 볼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염원해본다.
노희준 (gurazip@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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