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우면서 부끄럽지 않다고 [주말을 여는 시]

하린 시인 2024. 5. 25.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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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
이우성의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맞추고 싶어지는 퍼즐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더해지는 시인의 숙명

이우성​

금요일 밤인데 외롭지가 않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집에 있는 게 부끄러울 때도 있다
줄넘기를 하러 갈까
바닥으로 떨어진 몸을 다시 띄우는 순간엔 왠지 더 잘생겨지는 것 같다
얼굴은 이만하면 됐지만 어제는 애인이 떠났다
나는 원래 애인이 별로 안 좋았는데 싫은 티는 안 냈다
애인이 없으면 잘못 사는 것 같다
야한 동영상을 다운 받는 동안 시를 쓴다
불경한 마음이 자꾸 앞선다 근데 왜 내가 뭐
그래도 서른한 살인데
머릿속에선 이렇게 되뇌지만 나는 인정 못 하겠다
열 시도 안 됐는데 야동을 본다
금방 끈다
그래도 서른한 살인데
침대에 눕는다
잔다 잔다 잔다
책을 읽다가 다시 모니터 앞으로 온다
그래도 시인인데
애인이랑 통화하느라 못 쓴 시는 써야지
애인이랑 모텔 가느라 못 쓴 시는 써야지
야동 보느라 회사 가느라 못 쓴 시는 써야지
만두 먹어라 어른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다행히 오늘은 바지를 입고 있다

사람들​

나는 나에게서 나왔다 예전에 나는 나로 가득 차 있었다
입안에서 우성이를 몇 개 꺼내 흔든다
사람들은 어떤 우성이를 좋아하지
우성이는 어둠이라고 부르는 곳에 살았다
그때는 우성이가 다를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미남일 필요조차
그러나 가장 다양한 우성이는 우성이었다
공기의 모양을 추측하는 표정으로 사람들이 서 있다
우성이가 사실인지 어리둥절하다
우성이를 만진다
우성이가 자신과 똑같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나 우성이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나는 내가 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수십 수백만 개의 우성이가 떠오를 거라고 말했다

이우성
·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데뷔
· 시집 「내가 이유인 것 같아서」 등 다수
· 남성 패션지 GQ·아레나 등 피처 에디터

이우성,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문학과지성사, 2012.

시인은 만지는 감각으로 독자와 가까워진다.[사진=펙셀]

이우성 시인의 첫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를 읽는 것은 퍼즐 맞추기 게임을 즐기는 것과 같다. 시집을 읽으면서 독자는 조각난 정지 화면이나 영상을 발견하고 그것의 출처나 의도와 상관없이 퍼즐 맞추기에 돌입한다. 이것은 단순히 분산된 조각이 아니다. 분산만 돼 있었다면 복잡한 퍼즐을 맞췄을 때 쾌감을 맛보겠지만 그것은 '이우성식'이 아니다.

전적으로 이것은 여러 방식과 여러 방향으로 조립이 가능하며, 마지막 퍼즐을 놓았을 때 질서 정연한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인내심에 한계가 생겨 퍼즐 판을 던져버리게 만드는 해체적 시 쓰기도 아니다. 한번 돌입하면 계속해서 퍼즐을 맞추게 만드는 매력이 이우성의 시에는 있다.

시 '사람들'에서 우리는 퍼즐의 원리를 발견한다. "사람들은 어떤 우성이를 좋아하는지" 모르지만 시인은 "입안에서 우성이를 몇개 꺼내 흔든다". 처음에 '우성이'는 '어둠'이라는 한 색깔로만 살아가고 있었기에 여러 개이거나 "다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심지어 미남일 필요조차" 없었다. 시인의 등단작 '무럭무럭 구덩이'처럼 말이다. '무럭무럭 구덩이'는 여러 개의 '우성이'의 전조처럼 다양한 상징적 변주를 보여주지만 적어도 '빈곤의 현상학'이라는 한 가지의 '우성이'로만 읽힌다.

그러나 시인은 "가장 다양한 우성이"가 '우성이'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래서 퍼즐 조각을 흩어놓듯 순간적인 이미지와 짧은 영상을 '우성이' 찾기 코드로 시에 배치한다. 그러자 "공기의 모양을 추측하는 표정으로" 서 있던 사람들은 바뀐 "우성이가 사실인지 어리둥절하"게 된다. 어떤 '우성이'가 진짜 '우성이'인지 궁금해 직접 "우성이를 만져" 보기도 한다.

만지는 것은 아주 밀착된 행위다. 여기에서 이우성 시인의 시적 매력이 발산한다. 독자와 시적 주체 사이에 실체적인 밀착이 일어나도록 시인은 요설적인 언술을 자제하고 짧고 명확한 구절만을 사용해 독자의 정서를 환기한다. 다른 신세대 시인들이 이미지의 소통을 아예 거부하거나 독자를 신경쓰지 않고 시를 쓰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우성 시의 또 다른 매력은 솔직 담백한 화법을 통해 시 읽기의 즐거움(fun)을 선사하는 것이다. 시인 스스로 자신을 '미남'이라고 칭하는 나르시스적인 사고가 그 단적인 예다.

시 「이우성」도 바로 그런 즐거움을 주는 시다. 서른한 살의 청년 화자(시인 자신)가 시 쓰기와 관련된 일상을 여과 없이 이야기하는데 읽는 내내 미소가 번진다. 시인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여가 시간에 심각한 철학 책이나 인문학 책을 늘 보는 사람도 아니고 근엄하게 폼을 잡고 하루 종일 시나 쓰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일상을 사는 일반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사람이다.

[사진=펙셀]

시 속 화자인 청년은 금요일 밤에 집에 있으면 뭔가 부끄러워진다. 애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자는 애인과 헤어지고 나르시스적인 사고에 빠져있다. 줄넘기를 할 때 "바닥으로 떨어진 몸을 다시 띄우는 순간" 자신이 "왠지 더 잘생겨지는 것 같다"고 느끼고, "얼굴은 이만하면" 됐다라고 말하며 이별의 상황을 나르시시즘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그것은 외롭고 슬픈 자가 자기 위로를 할 때 나오는 과장된 제스처다. "나는 애인이 별로 안 좋았는데 싫은 티는 안 냈다"는 것도 애인의 부재에서 오는 상실감을 반어적인 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독자는 곧바로 미소를 짓는다. 너무나 솔직해서 '서른한 살'이 갖는 감정과 처지를 이해해서다.

그런데 시에서 화자는 시를 써야겠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서른한 살'의 감정과 처지와는 별개로(일반인의 삶을 살더라도) 시인은 시인의 숙명을 기꺼이 살고자 시를 실천한다. 애인이랑 통화하느라, 모텔 가느라, 야동 보느라, 회사 가느라 못 쓴 시를 쓰겠다고 선언한다. 그렇게 시인은 일반인인 동시에 특별한 요소를 품은 예술가이다. '이우성'이다.

하린 시인 | 더스쿠프
poeth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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