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팬텀①]영공 수호 55년에 현대사 고스란히…명예전역장 받는다
'팬텀맨'들 주기종 전환…퇴역기는 전시·정비교육·디코이 등으로 활용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하늘의 도깨비' F-4E '팬텀'(Phantom) 전투기가 47년간 우리 영공 수호의 임무를 마치고 다음달 퇴역한다. 성능 개량 전 버전인 F-4D의 우리 공군 첫 도입 때부터 이번 F-4E 퇴역까지 55년간 이어진 팬텀의 비행 궤적엔 대한민국 현대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다음 달 퇴역식 땐 F-4E에 명예전역장을 수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
1969년 8월 29일 대구기지에선 미국으로부터 공여받은 최초의 F-4D 인수식이 열렸다. 당시 6대의 F-4D가 우리 공군 소속이 됐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 영국, 이란에 이어 네 번째 팬텀 보유국이 됐다. F-4D는 당시 최신예 전투기였다.
1969년 9월 23일엔 최초의 F-4D 비행대대인 제151전투비행대대가 대구기지에서 창설됐다. 1개 대대의 창설식에 대통령이 참석해 축하할 만큼 그 의미와 상징성이 컸다. 이어 제152·153·159전투비행대대가 잇달아 창설되며, 대구기지는 팬텀의 주 기지로 거듭났다.
1972년 5월 26일엔 박정희 대통령 주관으로 F-4D가 경부고속도로에 있던 성환 비상활주로에 이·착륙하는 시범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F-4D는 고난도 이·착륙에 성공하며, 우수한 성능을 입증했다. 아울러 국내 기술로 완공된 경부고속도로의 완성도를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F-4D에 붙는 '필승편대'란 명칭은 1975년 방위성금으로 구매한 F-4D 5대에 박 대통령이 직접 부여한 것이다.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의 중국 방문, 베트남 공산화 등으로 인해 한반도 안보 위기가 고조되자 국민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십시일반 방위성금을 모았다. 부족한 국방 예산을 대신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모인 성금 163여억 원 중 71여억 원을 들여 F-4D 5대를 구매했고, 같은 해 12월 12일 수원기지에서 방위성금 항공기 헌납식이 진행됐다.
필승편대는 국민들의 성원에 감사를 표하고 도입 신고를 하는 의미로 헌납식 이후 서울 중경고등학교 3학년 김성수 군, 수원공업고등학교 이재성 군 등 5명을 후방석에 탑승시켜 서울 영등포 상공, 인천, 수원, 춘천, 청주 대전 등 전국 12개 주요 도시 상공을 차례로 비행했다.
필승편대는 비행을 마치고 귀환해 행사를 주관한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에게 귀환 신고를 했고, 동승한 학생들에겐 빨간 마후라를 비롯해 팬텀의 상징인 도깨비 마크가 달린 조종복, 비행모자를 선물했다.
개량형 F-4E가 처음 도입된 건 1979년이다. F-5E·F의 도입으로 1976년 8전투비행단, 1977년 16전투비행단, 1979년 18전투비행단이 각각 창설됐다.
우리 공군은 F-4D(70여 대)를 처음 도입한 후 F-4E(90여 대), 정찰기인 RF-4C(10여 대) 등 모두 190여대의 팬텀을 운영했다. F-4D 전투기는 지난해 말까지 순차적으로 퇴역을 완료했고, F-4E 10여 대만 임무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 중 6대가 수원 기지에 있으며, 필승편대란 이름을 물려받았다.
공군은 노후 전투기 퇴역 계획에 따라 2019년에 F-4E 팬텀을 도태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블록-Ⅰ 양산배치 계획이 연기되면서 도태 계획이 2025년까지 연장됐다. 이후 2022년 7월에 KF-21 최초비행에 성공하고 개발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올해 퇴역으로 재조정됐다.
팬텀은 퇴역을 앞두고도 활발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올 전반기 한미연합연습 '자유의 방패'(프리덤 실드·FS)를 계기로 지난 3월 수원 공군기지에서 실시된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코끼리 무리의 걸음) 때 F-4E가 '큰형님'격으로 F-15K, KF-16·F-16, FA-50, F-5, F-35A 등 33대 전투기의 선두에 섰다. 우리 공군이 보유한 전 기종의 전투기가 참가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또한 지난 4월 20일 대구 제11전투비행단, 27일 수원 제10전투비행단, 5월 18일 원주 제8전투비행단에서 진행된 공군의 항공우주축제 '스페이스챌린지(Space Challenge) 2024'를 통해선 F-4E가 비행 모습을 일반에 공개했다.
이달 9일엔 F-4E 4대가 49년 만의 국토순례 비행을 성공적으로 실시하기도 했다. 이때 일부 F-4E는 과거 도색이었던 정글무늬와 연회색 도색으로, 일부는 현재의 진회색 도색을 한 채 비행했다.
아울러 팬텀의 고유 캐릭터인 스푸크(도깨비) 문양이 새겨졌는데, 왼쪽엔 빨간마후라와 태극무늬를 더한 스푸크가, 오른쪽엔 조선시대 무관의 두정갑을 입은 스푸크가 위치했다.
스푸크는 팬텀 최초 개발 당시 기술도면 제작자가 항공기의 후방 모습을 보고 착안해 그린 캐릭터로, 팬텀을 운용한 여러나라에서 사랑받았다. 팬텀을 후방에서 바라봤을 때 마치 서양의 전통적인 유령(Phantom)과 흡사해 보여 생겨난 캐릭터다. 밑으로 처진 수평꼬리날개는 유령이 눌러쓴 모자로, 두 개의 엔진 배기구는 유령의 두 눈처럼 보인다.
팬텀은 다음달 7일 경기 수원 소재 제10전투비행단 내 항공기 주기장에서 퇴역식을 갖는다. 55년간 조국 영공을 수호하고 명예롭게 퇴역하는 팬텀의 성공적 임무 완수를 축하하는 행사다. 퇴역식엔 100명이 넘는 해외 취재진이 참석 신청을 할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다.
공군은 퇴역식 때 팬텀에 명예전역장을 수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역대 조종사 등이 퇴역기에 작별을 표하기 위해 꽃다발을 증정하고, 퇴역기를 향해 샴페인을 터뜨리는 행사도 진행된다. 특히, F-15K, KF-16, FA-50, F-4E, RF-4C, F-4D 등 공군 항공기들은 퇴역식 때 최종 비행을 마치는 F-4E를 도열해 맞을 예정이다.
공군은 팬텀의 활약상을 홍보해 공군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고, 공군의 위상을 알려 대국민 신뢰도를 제고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팬텀과 고락을 함께해 온 '팬텀맨'들은 주기종을 전환하게 된다. 퇴역한 팬텀은 전국 곳곳에 전시되거나 정비교육용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또한 일부는 적군의 유도탄이나 각종 탐지장비들을 혼란시키고 교란하기 위한 '디코이'로서 활주로 등에 배치될 예정이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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