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 스물여섯 김귀정이 엄마 종분입니다"[인터뷰]
김귀정 열사 33주기…"민주유공자법 통과 소망"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엄마 김종분(85)씨는 딸 귀정씨가 자신을 지켜주는 아이라고 믿었다.
다정한 딸이었다. 노점 일로 자정이 넘어서야 들어오는 김씨가 가족을 깨우기 싫어 다른 거처에서 잘 요량을 하면 "내가 늦게까지 안 자니까 엄마 오면 문 열어줄게. 택시라도 타고 와"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대학 합격 축하차 갈비를 먹으러 가자 했을 때는 "엄마 돈 없는데 고기는 무슨 고기야. 냉면이나 한 그릇씩 먹자. 내가 돈 벌어서 엄마 고기 사줄게"라고 말하는 딸이었다.
엄마도 그런 딸을 아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장사를 한시도 못 쉴 때도 귀정씨의 대소사에는 늘 함께였다. 딸의 학교 입학식·졸업식, 대학 시험을 치르는 고사장까지 빠짐없이 귀정씨 옆엔 김씨가 있었다.
한번은 대학의 지원으로 중국행 비행기를 타는 귀정씨를 공항까지 배웅했다가 교수로부터 '딸이 성인이니까 이렇게 안 오셔도 돼요'라는 말까지 들었다. 김씨는 교수에게 "내가 둘째 딸 만큼은 아무 데나 못 보내요. 내가 얘를 그렇게 아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던 딸이 1991년 5월25일, 스물여섯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해 봄은 학생·노동자 시위에 대한 노태우 정권의 폭력진압과 공안 통치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1987년 민주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냈지만, 군부 출신인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90년 민주 진영 야당인 통일민주당 김영삼이 군부 출신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했다. 노태우 정권과 민주자유당 반대 투쟁이 절정에 달했다.
이듬해 봄이었던 1991년 4월26일 명지대생 강경대가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귀정씨도 한 달 뒤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충무로 골목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했다.
성균관대학교를 다니며 동아리연합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던 귀정씨가 숨진 뒤 시위는 절정에 달했다. 귀정씨는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열사 중 한 명이 됐다.
딸은 떠났지만 김종분씨는 딸 귀정씨와 끝까지 함께하기로 다짐했다. 경찰에 쫓겨 지낼 곳 없는 성균관대생들에게 자신의 집을 거처로 내줬다. 경찰에 쫓기는 학생들을 보면 있는 현금을 털어 건네고는 집에서 밥을 해다가 먹였다.
전국을 돌며 "성균관대 스물여섯 귀정이 엄마 김종분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씨의 은혜를 입은 인연들은 김씨를 '엄마'라고 부르며 따랐다. 김씨는 자식들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유가족이자 민주화 운동가로 지난 33년간 집회와 시위, 농성과 단식을 벌였다.
김씨는 "죽은 사람 대신에 산 사람이 해보려고 애쓰는 거지"라며 "오래되니까 내가 '33년을 딸 제사를 지내주는데 만약에 내 자식들이 나를 30년 동안 제사를 지내줄까' 말하기도 해. 주변엔 영감 제사 10년 지났으니까 인제 그만 지내지 뭐 그러는 사람들도 많아"라고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여든을 훌쩍 넘긴 그가 지금 바라는 건 민주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제정돼 환갑을 넘긴 '나이 든 자식'들이 민주유공자 대우를 온당히 받는 것이다.
김씨는 "우리는 별 이득 없어. 귀정이 산소를 보훈처에서 관리를 해주니까 그것뿐이지. 귀정이는 나라에서 상도 받고 인정도 다 받았잖아"라면서 "귀정이나 (박)종철이 (전)태일이 같은 애들도 좋은데 인정 못 받고 어렵게 살아온 애들이 유공자라도 인정받았으면 하지"라고 말했다.
민주유공자법은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이한열 열사 등 4·19 혁명이나 5·18 민주화운동 외의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다치거나 숨진 이들을 '민주유공자'로 지정해 예우하고, 본인 또는 가족에게 의료·양로 지원을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민주유공자법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는 정무위원회다. 야권 중심이긴 했지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직회부 결정 후 30일이 지나면서 '부의 여부를 묻는 투표'까지는 자동으로 오는 28일 본회의 의사일정에 포함됐다.
하지만 이 투표가 가결되더라도 사실상 21대 국회에서 처리 못해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법안의 최종 처리를 위한 투표는 그다음 본회의에서 이뤄지는데, 오는 29일이 21대 국회 임기종료일이기 때문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f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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