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시카고로 ‘대서양 넘나든 사랑’
17년간 보낸 연서 304통 고스란히
관능적이고 다정한 애정 표현 가득
파리 지성계 사건들 세심하게 전달
프랑스 미시사로 손색 없는 풍속화
연애편지/ 시몬 드 보부아르/ 이정순 옮김/ 을유문화사/ 3만8000원
“제가 당신 책을 얼마나 좋아했고 또 당신에게도 큰 호감을 느끼고 있다고 꼭 전하고 싶었어요.”
잘 알려졌듯 보부아르는 20대 초반에 사르트르를 만나 ‘계약결혼’을 한다. 2년 동안 가장 가까운 사이로 지내본 뒤 계약을 갱신하기로 한다. 2년 뒤 이들은 서로에게 ‘우연적 사랑’도 허용하는 영원한 관계로 들어가기로 합의한다.
이런 독특한 관계 아래 사르트르는 많은 여성과 인연을 맺었다. 보부아르 역시 39살에 만난 올그런, 44살에 만난 17살 연하 클로드 랑즈만 등과 사랑에 빠진다.
올그런이 문화적, 사회적으로 이방인인 만큼 보부아르는 파리 지성계의 사건들을 신경 써서 세심하게 전한다. 작가 알베르 카뮈와 앙드레 지드, 미술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 자신이 만난 수많은 이를 언급하고 새로 나온 연극과 영화, 그와 사르트르가 신경을 쏟는 사회운동을 설명한다. 보부아르의 연서는 그 자체로 1950∼1960년대 프랑스 미시사로 손색없는 방대한 풍속화인 셈이다.
1947년 7월15일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연극 ‘공손한 매춘부’가 영국 런던에서 초연한 밤을 묘사한다. 보부아르는 리셉션에 대해 “저는 (배우) 리타 헤이워스의 맞은편에 앉아 … 그녀의 기막히게 멋진 어깨와 유방에 감탄하면서 그녀와 대화하려 애쓰고 있었어요”라며 “그녀는 지루해 어쩔 줄 몰라 했고 사르트르도 줄곧 지루해했으며 모든 사람이 내내 따분해했어요”라고 전한다. 같은 해 11월5일에는 자신과 사르트르의 ‘아주 절친한 친구’ 자코메티를 소개한다.
“조각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지 20년이나 됐어요. … 갑자기 그는 … 자신을 소모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속물들에게 등을 돌리고 생활에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팔지 않고 홀로 예술을 추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더러운 옷을 벗지 못하고 무척 가난하게 산답니다. … 넓디넓은 헛간 같은 곳에서 살고 있어요. 거기에는 가구도 먹을거리도 없고, 난방도 되지 않아요. … 그를 특히 높이 평가하는 건 2년간 작업한 작품들을 하루아침에 산산이 부숴버릴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는 모든 것을 깨뜨려 버렸어요.”
소설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에 대한 설명은 매혹적이다. 콜레트는 “살이 피둥피둥 찌고 손발이 부자유스러운” 75살 소설가이지만 “그녀가 이야기하고 미소 짓고 웃기 시작한다면 누구도 그녀보다 더 젊고 더 예쁜 여자를 바라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1947년 7월3일 쓴 편지에서는 삶에 대한 보부아르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지독하게 탐욕스럽고 인생의 모든 것을 원하지요. 여자이기도 하고 또한 남자이고 싶고, 많은 친구를 갖고 싶지만 또한 고독하고 싶기도 하고, 엄청나게 일하고 좋은 책들을 쓰고 싶고 또한 여행하며 즐기고 싶고, 이기주의자인 동시에 관대하고 싶고 …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기란 쉽지 않아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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