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동맹 구조, ‘거점’서 ‘격자’ 기반으로 변화하고 있나? [fn기고]

이종윤 2024. 5.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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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신냉전서 기존 동맹 강화와 지역·대륙간 지정학적 융합형 동맹 형성 움직임
 -미국 거점의 유럽과 아시아로 이원화된 동맹구조에서 근본적 변화 목소리 주목
 -현상변경국 급부상·국제기구 무실화로 거점 중심 동맹서 '격자 울타리'로 변화
 -격자 동맹 구조·소다자 협력체, 인싸인듯하지만 성격·기대수준 달라 아직 시기상조...
 -격자 구조 담론 아직 기대 수준, 아시아판 나토도 현실 괴리...동맹구조 변화 잘 살펴야 
[파이낸셜뉴스]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신냉전 구도의 현 국제정치에서 단기간에 동맹 역학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선 기존 동맹이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미동맹은 역대 최강의 결속력을 보이고 있다. 미일동맹도 강화 추세가 역력하다 둘째, 동맹이 융합되고 있다. 미국, 영국, 호주가 참여하는 오커스(AUKUS)는 북미, 유럽, 아시아에서 각각 한 국가씩 참여하는 융합형 동맹 플랫폼이다. 동맹은 아니더라도 유럽과 아시아도 안보 융합적 기제가 역력하다. 최근 나토(NATO)-AP4 플랫폼도 활성화되고 있는데 이는 유럽 지정학과 인도-태평양 지정학이 융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새로운 동맹이 형성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오커스가 대표적 사례다.

이런 구도가 탄력을 받는 상황에서 아시아의 동맹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주목받고 있다. 신냉전 도래 전까지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구조의 이원화는 확연했다. 유럽은 미국을 필두로 한 나토에 기반한 소위 집단동맹 방식의 다자동맹이었다면, 아시아를 미국을 중심에 두고 각각의 국가와 동맹을 맺는 양자 방식이었다. 칼더(Kent E. Calder)는 이 후자의 동맹을 허브-앤-스포크(Hub and Spoke)로 개념화했다. 즉 미국이 중심축을 차지한 가운데 주변의 다른 국가와 안보 동맹을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미국이 ‘거점’으로 기능한 동맹구조였다. ‘거점’ 구조는 미국 없이는 동맹 자체가 기능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신냉전 기제하에서 중국 등 현상변경국의 부상 속도가 빠르고 유엔과 같은 다자자 기반의 국제기구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이를 상쇄하기 위한 기제로서 아시아에서 ‘거점형’ 구조 방식이 ‘격자형(Lattice-like)’ 구조도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회자되고 있으며 미국 정부 당국자도 이러한 논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2024년 5월 14일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도 “격자 울타리(Lattice fence)”를 언급했다. 격자 구조는 양자 기반을 뛰어넘어 소다자 협의체에 방점을 두는 안보 접근법이다. 기존 ‘거점’ 구조로는 대중국 견제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없다는 문제 인식으로 이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아시아 동맹을 ‘격자’ 구조로 바꾸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플랫폼으로 오커스가 거론된다. 한편 ‘격자’ 구조가 회자되면서 단지 동맹을 넘어 안보 협의체에도 ‘격자’ 구조를 설명하려는 확장성이 나타나고 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국은 한국과 일본인데 지금까지 미국 없이는 한국과 일본의 안보 협력 기제는 창출될 수 없었다. 하지만 소다자 협의체가 대세로 부상하는 가운데 2023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한국-미국-일본 간 안보 아키텍처가 만들어졌는데 이 3자 안보협력체도 ‘격자’ 구조로 설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격자’ 기제의 부상을 아시아 동맹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로 규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우선 소다자 협력이 국제정치의 ‘인싸(Insider)’가 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그 면면을 보면 격자로 통합된다기보다는 섬처럼 떨어져 있는 측면이 강하다. 예를 들어 쿼드, 오커스, 한미일 협력체는 각자도생 방식의 플랫폼이지 다층적으로 연결되는 플랫폼이 아니다. 격자는 나름의 규칙에 기반하여 체계적으로 배열된 구도를 의미하는데 상기 소다자 플랫폼은 체계적 배열이라기보다는 독립적 배치라는 설명이 더 적실하다. 둘째, 소다자라는 점만 공통이지 각각의 플랫폼은 성격도 기대 수준도 다르다. 오커스는 대중국견제가 동맹 창설의 목적이자 지향점이다. 한편 쿼드는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인도가 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을 넘나들며 광폭 행보를 하기에 대중국견제를 목표로 하는 지향점에서 멀어지고 있다. 한미일 3자 협력체는 글로벌 도전 협력 및 북핵 공조를 중심으로 한다. 최근 미국, 일본, 필리핀이 글로벌 인프라 파트너십(PGI)를 발표하는 등 소다자 협력에 나섰지만 그 성격이 아직 불분명하고 제도화 가능성도 미지수다.

‘격자’ 구조 담론은 아직까지는 ‘실체’보다는 ‘기대’에 가깝다. 대중국견제를 위해 ‘아시아판 나토’가 필요한데 현실화 가능성이 크지 않기에 소다자 협력이 높아지는 현 상황을 ‘격자형’ 구조로 표현한 것이라면 이는 정교한 정책이라 볼 수 없다. 물론 우회적으로 아시아판 나토 효과를 기대하는 측면이 있더라도 이는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무엇보다도 ‘격자형’ 구조는 ‘격자형’ 안보 혹은 ‘격자형’ 방책일 수는 있어도 ‘격자형’ 동맹은 아니다. 따라서 한국은 ‘격자 구조’ 담론 부상을 국제적, 지역적 동맹구조의 근본적 변화로 잘못 인식하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정리=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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