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 죽기는 쉽지만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죽음으로 왜적에 맞서다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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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5월 25일 왜군의 습격으로 동래성 전투가 벌어졌다.
이틀 전 부산진 전투에서 무참하게 패배한 조선군은 동래성에서 왜군의 공격을 막아내려 했으나 중과부적으로 또 패했다.
동래성을 도우러 왔던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이각은 왜군의 기세에 눌려 도주해 버렸으나, 울산군수 이언성은 끝까지 전투에 동참했다.
동래성 전투는 조선의 참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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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592년 5월 25일 왜군의 습격으로 동래성 전투가 벌어졌다. 임진왜란 초기에 있었던 두 번째 주요 전투다. 이틀 전 부산진 전투에서 무참하게 패배한 조선군은 동래성에서 왜군의 공격을 막아내려 했으나 중과부적으로 또 패했다.
동래성은 경상도에서 부산 다음으로 큰 도시였으며, 조선 수군의 중요한 거점이기도 했다. 동래 부사 송상현은 백성들을 다독여 왜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동래성을 도우러 왔던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이각은 왜군의 기세에 눌려 도주해 버렸으나, 울산군수 이언성은 끝까지 전투에 동참했다.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동래성에 도착해 부대를 3개로 나누어 동래성을 포위했다. 그런 다음, '싸우겠다면 싸울 것이로되,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달라'(戰則戰矣 不戰則假道)는 내용의 패목을 세워 압박했다. 이에 송상현은 나무판에 '싸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戰死易假道難)고 회답하며 조선 장수의 기개를 보였다.
조선군은 병력 수가 열세였음에도 용맹하게 싸웠다. 송상현은 직접 성벽에 올라 병사들을 지휘했고, 백성들도 낫과 곡괭이를 들고 왜군에 맞섰다. 조선의 군민 3000여 명은 얼마간은 잘 버텼으나, 3만여 명의 왜적과 '조총'의 위력을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성곽이 상대적으로 낮은 동문이 뚫리자 왜군이 물밀듯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동래성 전투는 조선의 참패로 끝났다. 송상현과 이언성은 장렬히 전사했다. 또한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군민 3000명 이상이 전사하고 500명이 포로가 됐다. 동래성 함락은 왜군에게 경상도 진격의 발판을 제공했다. 이 전투에서의 패배로 대구, 상주, 김해, 밀양, 성주, 충주까지 함락됐다. 이후 조선은 각지에서 연패를 거듭하며 국토를 유린당했다.
비록 패배했지만, 동래성 전투는 조선의 용기와 희생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투였다. 또한,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의 전투 능력과 한계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전투이기도 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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