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규제완화에 소외" 갈팡질팡 리모델링 용적률 관건

정영희 기자 2024. 5. 25.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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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부동산 대책' '1기 신도시 특별법' 재건축 규제 완화에 리모델링 조합 혼란 가중
재건축보다 진입이 쉽고 사업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각광받던 리모델링이 정부의 연이은 규제 완화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그동안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전국 다수의 조합들은 재건축과의 갈림길에 멈춰선 채 혼란을 겪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가 올 초 '1·10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며 재건축 규제를 크게 완화하기로 한 가운데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조합이 갈림길에 섰다. 조합 유지 후 리모델링 진행과 재건축으로의 선회를 둔 줄다리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번 주 1기 신도시 중 재건축 규제 완화 혜택을 처음 받게 될 선도지구와 선정 규모·기준도 확정되며 이러한 고민은 신도시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리모델링 접자" 재건축 규제 완화에 들썩이는 조합


25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2단지 리모델링 조합은 다음달 14일 조합 해산을 안건으로 하는 총회를 개최한다.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조합은 설립인가 이후 3년이 경과하면 해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주민 일부가 모인 '대치2단지 정비사업 정상화 모임'은 이달 중으로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송파 거여1단지는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주민 반발에 지난해 3월 리모델링추진위원회가 해산됐다. 송파 강변현대아파트도 지난해 5월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에 나섰으나 참여 의사를 밝힌 건설업체가 한 곳도 없어 올 초 조합 해산 절차에 돌입했다.

준공 연한 기준을 채우지 못해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을 선택한 단지가 비교적 많았던 일산·분당 등 1기 신도시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1기 신도시 특별법) 청사진이 모습을 드러내며 소유주 간 의견이 충돌하는 모습이다.

올해 평촌 은하수마을 청구, 샘마을대우, 한양 등이 리모델링 철회를 결정했다. 2022년과 2023년 각각 포스코이앤씨, 현대건설로 시공사 선정을 완료한 일산 문촌마을 16단지와 강선마을 14단지 등도 일부 소유주 사이 리모델링 대신 재건축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분당에선 매화마을 1단지의 리모델링 사업 추진이 잠정 중단됐다. 지난달 총회에서 분담금 확정 안건이 부결되면서다. 높은 기준금리에 따른 금융 부담과 원자잿값 상승으로 공사비 인상이 겹치며 조합원 분담금이 확대된 것이 원인이 됐다.

리모델링 사업은 준공 후 15년 만에 추진이 가능하고 안전진단 문턱도 낮아 재건축보다 빠른 진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안전진단 없이 아파트를 재건축할 수 있도록 규제 빗장을 푼 데다 1기 신도시 재건축도 본궤도에 오를 준비를 하며 리모델링의 속도와 사업성 모두 열위가 됐다.

고금리에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공사비와 분담금 부담이 커지면서 사업성이 더 좋은 재건축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진 것이다.

리모델링 규제 강화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서울시는 '2030 서울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발표, 가구 수가 증가하지 않는 필로티와 1개 층의 상향을 기존 수평증축에서 수직증축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수평증축은 1차 안전진단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반면 수직증축은 2차 안전진단을 받아야 해 리모델링 절차가 더욱 까다로워진 셈이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과거에 규제 때문에 재건축 추진이 어려워 대안으로 리모델링을 선택했던 단지들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리모델링의 경우 지금 같은 전면 재건축 형태보다 설비 개선이나 모듈러 기술을 활용해 시설물을 일부 개선하는 형태로 변모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재건축 규제 완화 정책을 쏟아내자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각 조합이 방향을 선회하는 움직임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각 조합 사이에서도 '조합 유지'와 '조합 해산'을 두고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모습이다./사진=뉴시스


리모델링 '뚝심' 보이는 조합… 이유는


반대로 리모델링 의사를 꾸준히 이어가는 단지도 있다. 마포 신정동 서강 GS아파트 리모델링조합은 지난달 초 정기총회를 열고 '리모델링 사업 지속·해산 여부의 건'을 상정해 '지속 176표', '해산 126표', '기권·무효 4표'로 리모델링조합 유지를 결정했다.

동작 사당동의 우성2·3단지와 극동, 신동아4차 리모델링 조합은 시공사 선정에 한창이다. 당초 우성2·3단지와 극동 아파트가 통합해 리모델링을 진행하기로 했으나 인근에 위치한 신동아4차까지 합세하며 규모를 키웠다.

조합 내에서도 일부 조합원의 재건축 선회 의견이 제기됐으나 리모델링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 더욱 이득이라는 여론이 우세해 사업을 속행하기로 했다. 통합 리모델링 완료 시 4397가구에서 5054가구의 '미니 신도시급' 단지로 탈바꿈한다. 예상 사업비는 1조5000억원으로 리모델링 사상 가장 높은 금액이다.

강동 암사동 선사현대 또한 리모델링을 진행한다. 선사현대 리모델링조합은 2022년 현대건설·롯데건설 컨소시엄을 리모델링 시공사로 선정, 지난 3월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서 지구단위계획 결정안의 조건부 동의를 받았다. 지난해 5월 설립인가를 받은 서초 잠원동 잠원강변 리모델링조합은 지난 19일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지하 4층~지상 20층, 4개 동 389가구로 재탄생한다. 기존보다 29가구 증가한다.

리모델링을 선택한 단지는 용적률이 매우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당 우성2·3단지나 극동아파트의 현재 용적률은 248%, 선사현대는 393%다. 잠원강변은 243%에 달한다. 통상 용적률이 200% 이상이면 사업성이 떨어져 재건축이 어려운 단지로 본다.

일각에서는 리모델링 조합이 재건축으로 돌아서는 데에 현실적인 걸림돌이 많다는 의견도 나온다. 리모델링을 추진하다가 재건축을 하게 되면 기존 조합을 해산하고 조합설립인가를 다시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기존 리모델링 조합의 조합장과 임원이던 이들이 다시 결성된 조합의 집행부로 선임되지 못할 수도 있어 분쟁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연구소 소장은 "리모델링 조합 설립 이후 시공사를 선정한 단지들은 재건축으로 바꾸려면 그동안 사용한 사업비 대여금도 다시 돌려줘야 한다"면서 "리모델링 시공사가 재건축에 재참여한다는 보장도 없어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지적했다.

김인만 김인만경제연구소 소장은 "리모델링으로 상당 부분 사업이 진행된 단지가 아니면 리모델링과 재건축 사이에서 소유주 간 분쟁으로 공사가 더 미뤄지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라며 "현 정책 하에 리모델링을 선택한 단지가 불가피하게 겪어야 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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