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출산휴가 위해 법 바꾼 영국
조선일보·상의 ‘저출생 콘퍼런스’
수엘라 브레이버만(44) 영국 하원 의원은 케임브리지 퀸스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 출신으로, 35세에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영국 검찰총장과 내무장관까지 지냈다. 그와 동시에 5세 아들, 3세 딸을 둔 워킹맘이기도 하다. 둘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된 2020년 여름은 그가 검찰총장을 맡은 지 반년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브레이버만 의원은 24일 조선일보와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 중구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주최한 ‘저출생 콘퍼런스’에서 자신의 출산 경험을 언급하며 “둘째 임신 사실을 안 뒤 ‘나도 일을 그만둬야 하나’, ‘출산 직후 며칠 휴가만 내고 다시 출근할까’ 많이 고민했는데, 어머니로서 삶도 좋았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영국 장관급은 출산휴가를 갈 수 있다는 규정이 없어 검찰총장직을 사퇴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상사였던 보리스 존슨 총리를 찾아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고 한다.
브레이버만 의원은 “1600년대부터 내려온 역대 검찰총장 가운데 임기 중 임신을 한 사람은 없었다”며 “‘총리가 분노하거나 실망하지 않을까’ 많이 긴장한 상태에서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존슨 총리는 ‘정말 기쁜 소식이다. 걱정하지 말라’면서 웃으며 축하해줬다”고 했다.
이후 영국 의회는 시대 변화에 맞춰 장관급도 출산휴가를 갈 수 있도록 ‘각료의 출산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다. 이 법은 그의 딸 이름을 딴 ‘가브리엘라법’으로도 불린다. 그는 2021년 3월 영국 내각 사상 처음으로 출산휴가(6개월)를 다녀왔다. 복직 후엔 검찰총장으로 1년 더 일한 뒤 내무장관도 맡았다. 그는 “출산한 여성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일할 수 있는 사회로 반전시켜야 한국의 심각한 저출생 흐름도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며 “여성의 출산과 출산 후 복귀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여성의 근로 의욕을 넘어 사회 전반에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수엘라 브레이버만 의원은 22~2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ALC(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이어 24일 저출생 콘퍼런스에서도 초(超)저출생 대응을 연구하는 각국 석학 20여 명과 함께 연사로 나섰다. 브레이버만 의원은 이날 조선일보·대한상의 주최 저출생 콘퍼런스에서 자신의 개인사를 언급하며 “시대 흐름에 따라 여성의 출산·양육 트렌드도 빠르게 바뀌는 만큼 저출생 정책을 설계할 때도 그에 맞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브레이버만 의원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는 모두 인도계다. 1960년대에 모리셔스와 케냐에서 각각 영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자신의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본인의 삶을 비교하며 여성의 삶이 달라지는 양상을 언급했다.
브레이버만 의원은 “1922년 모리셔스의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11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자랐고, 5명의 아이를 낳았다”면서 “1945년생인 어머니는 18세 때 선진국인 영국으로 건너와 간호사라는 일자리를 찾은 뒤 일·가정의 상충 요인을 조정하다가 35세에 나를 낳았다”고 했다. 그는 “반면 1980년생으로 좋은 교육을 받은 나는 커리어에 집중하다가 38세에 결혼한 뒤 39세에 첫째, 41세에 둘째를 낳았다”며 “같은 여성이지만, 두 세대 만에 할머니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도 결혼 직후 몇 년 동안은 아이를 원치 않았고 출산을 연기했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커리어와 출산이 충돌하던 시기에 상사와 동료의 지지를 받았다”며 “이는 곧 아이를 돌보는 일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첫째 출산 당시엔 하원 의원으로 6개월 유급 출산휴가를 받아 아이를 돌봤고, 둘째를 임신한 뒤에는 존슨 총리의 의지와 의회의 지지로 법을 개정해 다시 6개월 유급 출산휴가를 다녀왔다.
브레이버만 의원은 “존슨 총리 본인도 자녀가 7명이고 재임 당시 출산을 경험했다는 점이 작용했겠지만, 출산을 앞둔 여성에 대한 직장 내 지지가 출산을 앞둔 나의 걱정, 공무원 사회의 우려를 모두 불식시켰다”고 했다. 그는 2021년 3월 영국 의회가 ‘각료의 출산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한 지 닷새 만에 둘째를 출산했다. 영국 내각에서 처음으로 출산휴가를 다녀온 장관급 각료가 된 것이다. 이에 그는 유럽 공직 사회에서 여성 경력 단절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상징적 인물로 불린다. 그에 이어 헬렌 매켄티 아일랜드 법무장관도 2021년 아일랜드 내각에서 처음으로 6개월 출산 휴가를 다녀왔다.
브레이버만 의원은 “여성이 출산휴가 등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승진에서 차별을 받는다거나 해고될 위험에 처하는 사회에선 절대 저출생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며 “기업의 고용주와 남성 동료들이 직장 문화를 가족 친화적으로 바꾸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출산) 기회의 창’에는 제한이 있기 때문에 아이를 조금 더 일찍 낳은 다음에 30대 나이에 일터로 복귀할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돕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라고 했다.
그는 특히 저출생 해결에서 민간 부문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면서 “기업 입장에선 육아휴직 같은 제도를 비용으로 인식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단기 비용’일 뿐 결국 좋은 인재를 유치하고 회사의 경쟁력을 키우는 ‘장기 투자’”라고도 했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영국도 저출생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다. 2021년 기준 합계 출산율은 1.53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1.58명에 못 미친다. 2010년 1.9명대에서 1.5명대로 급락한 것이다.
브레이버만 의원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주택 구입 비용 지원, 출산 세제 혜택, 육아 보조금 등에서 더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정부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정적 주거가 가족을 꾸리는 주요 동력인데, 영국도 주거 비용을 포함해 가족을 구성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인식이 많다”며 “영국 정부도 경제적 지원책을 계속 연구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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