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이 하는 ‘읽기’, 알고보면 마법 같은 일[책의 향기]

사지원 기자 2024. 5. 25. 01:4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영국 소설가 샘 마틴은 어느 날 소설을 펼친 순간 자신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설 속 글자를 볼 수는 있었지만, 읽을 수가 없었던 것.

영국 퀸메리런던대 교수인 저자는 마틴처럼 읽기에 문제가 생긴 다양한 사람들을 조명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읽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보내는 저자의 따뜻한 격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해력 잃은 다양한 사람들 소개… 뇌과학-인문학 관점서 읽기 조명
진화사적으론 뒤늦게 생긴 능력… 세계를 이해하는 인간만의 방식
건너뛰기-두 페이지 동시 읽기 등 사람마다 제각각 읽기 방식 소개
◇읽지 못하는 사람들/매슈 루버리 지음·장혜인 옮김/407쪽·2만2000원·더퀘스트
영국 퀸메리런던대 현대문학 전공 교수인 저자는 난독증, 실독증 등 신경질환으로 읽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난독증 독자들은 글을 읽을 때 글자가 고정되지 않고 컴퓨터 화면을 볼 때처럼 가변적인 ‘활자 유동성’ 상태를 경험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영국 소설가 샘 마틴은 어느 날 소설을 펼친 순간 자신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설 속 글자를 볼 수는 있었지만, 읽을 수가 없었던 것. 그는 당시를 “어느 쪽 눈으로 봐도 글자가 뒤죽박죽돼 전혀 알 수 없었다”고 묘사했다. 알고 보니 마틴은 뇌출혈로 인한 신경장애로 문해력을 잃은 것이었다. 결국 그는 언어치료사와 함께 재활에 들어간 지 4개월이 지나서야 소설 한 권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문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영국 퀸메리런던대 교수인 저자는 마틴처럼 읽기에 문제가 생긴 다양한 사람들을 조명한다. 6개 장에 걸쳐 난독증과 과독증, 실독증, 공감각, 환각, 치매 등 신경학적 문제로 인해 읽지 못하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언어처리, 해독, 이해 등 읽기의 여러 단계 중 어느 한 부분이라도 고장이 나면 문해력을 잃게 된다.

저자가 수집한 증언, 문헌, 자료 등은 ‘인간다움’을 완성하는 읽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뇌과학과 인문학의 관점을 조합해 읽기의 의미를 낯설게 함으로써 그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예를 들어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스몰렌스크 전투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문해력을 상실한 러시아 군인 레프 자세츠키는 “사람은 읽기를 통해서만 사물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으며,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읽기를 익힌다는 건 마법의 힘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난독증 독자들의 수기를 통해 이들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점이 흥미롭다. 우리는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하하기 위해 “너 난독증이냐”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난독증은 대부분 유전적 요인에 의한 질환이다. 난독증 환자는 책을 볼 때 종이가 픽셀화된 화면처럼 흔들리는 ‘활자 유동성’ 상태를 경험한다. 미국 작가 아일린 심프슨은 “단어가 얹힌 책 페이지가 알파벳이 뒤섞인 수프 접시로 보인다”고 말했다.

읽기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당연한 능력이 아니다. 인류의 진화사 관점에서 볼 때 비교적 최근에 발달한 능력이다. 저자는 “인간의 뇌는 읽기를 위해 설계되거나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며 “읽기에는 여러 방식이 있고 표준적인 방식이 없다”고 했다. 읽기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읽기의 본질을 성찰하게 된다.

저자는 다소 독특하게 읽는 이들도 조명한다. 서번트 증후군에 걸린 자폐인을 다룬 영화 ‘레인 맨’의 실제 주인공인 미국인 킴 픽은 동시에 양쪽 페이지를 읽었다. 캐나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은 “책의 오른쪽 페이지만 읽고 나머지 정보는 뇌로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난독증으로 제대로 읽지 못하는 이들이 ‘다시 읽기’나 ‘그저 책 붙잡고 있기’ 등을 활용해 독자로 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살펴보며 저자는 “이들에게는 ‘읽기의 차이’라는 어려움이 있을 뿐, 모두 독자”라고 강조한다.

‘심심한 사과’를 ‘지루한 사과’로, ‘사흘’을 ‘4일’로 알아듣는 젊은층이 늘고 있는 현실에서 읽기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그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 보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읽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보내는 저자의 따뜻한 격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