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도서관] 추억은 영원할 거야… 그리움은 편지에 담고 씩씩하게 걸어나가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장프랑수아 세네샬 지음 | 오카다 치아키 그림 | 박재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44쪽 | 1만7000원
깃털 펜을 든 아기 여우의 눈이 슬퍼 보인다. 아기 여우는 할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해님도 구름 뒤로 모습을 감추고, 새들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 숲속은 적막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당최 떠오르질 않는다.
인자한 할머니 얼굴에 그림자를 지어주던 밀짚모자는 벽에, 산책 때면 늘 들고 나서시던 지팡이도 문 앞에 그대로다. 할머니의 소중한 씨앗과 말린 꽃들을 담은 보물 상자도 그대로인데, 할머니만 곁에 없다.
둘이 함께 만들었던 동물 인형과 장난감, 숲속에서 발견하고 보물이라도 찾은 듯 의기양양했던 나뭇잎…. 산들바람이 불어 할머니의 치마가 펄럭이면 아기 여우는 그 곁에서 춤을 췄다. 둘만 아는 비밀 장소에 앉으면 세상 꼭대기에 올라온 듯 넓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더랬다.
상실은 늘 미처 준비하지 못한 때에 찾아온다. 아기 여우도 자라는 동안 크고 작은 헤어짐을 경험할 것이다. 할머니 곁에선 무섭지 않았던 폭풍우가 두려워 바위 밑에 숨어 오들오들 떨고,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내며 떡갈나무에 벼락이 떨어질 때면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기 여우는 숲속에 살아 숨 쉬는 할머니와의 추억 속에서 부재(不在)를 견디며, 강과 나무의 장엄함으로부터 슬픔을 눌러 담는 힘을 배운다. 흐르는 강물은 붙잡을 수 없고, 번개가 할퀸 떡갈나무의 상처도 언젠간 아물 것이다. 다시 해가 뜨고,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할 때, 아기 여우는 편지에 꾹꾹 눌러 쓴다. “할머니, 사랑해요.”
캐나다 작가가 쓰고 일본 작가가 그렸다. 뉴욕타임스는 ‘시대를 초월해 우아하게 감성을 자극하며 상실에 관해 말하는 책’이라고, 요미우리 신문은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안녕’을 말해야 하는지 강과 나무와 바람이 일러주는 책’이라고 평했다. 연필로 촘촘하게 음영을 쌓은 뒤 유성 색연필로 덧칠한 그림이 달콤하고 고풍스러워 더 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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