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이상한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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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수회담서 안보 관련 논의 없어
권력투쟁 몰입 때 국가재난 발생
국민 합의 도출은 정치권의 능력
여야 협의는커녕 만남조차 배척
」
주지의 사실이면서 모두가 편리하게 잊고 지내는 것이 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 안정의 기본적인 조건이 한반도 밖 외부에서 제기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대륙과 해양을 잇는 독특한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한반도의 안보는 외부의 상황에 따라 크게 좌우되어 왔다. 역사상 큰 재난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이 모두 한반도 밖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연동되어 있었다. 전자의 경우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패권 성립, 후자의 경우 명나라를 대신한 청나라의 패자 등극이 우리가 겪은 참화의 전제 상황이었다.
지난 세기 초의 굴욕적인 국권 상실도 마찬가지였다. 1949년 중국의 내란이 일단락 되었을 때 영국 외무부는 한반도에서 곧 전란이 일어날 위험을 예견하였다. 비공식적인 자리였지만 1950년 1월 영국 외무부 장관인 어네스트 베빈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에 관한 경고를 하고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까지 하였다. 미 국무부에도 몇 차례 주의를 환기하려 하였지만 무시되고 말았다.
우리가 겪은 큰 재난들의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정치 지도자들이 기왕에 누리고 있는 지위에 안주하며, 국내 정치 문제 특히 정쟁과 권력 투쟁에 몰두하면서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길한 징조들에는 관심이 적었다는 점이다.
냉전 종식 이후, 특히 지난 한 세대 동안은 유례가 드문 평화의 기간이었다. 공산권은 무너지거나 큰 변신을 하였고 세계는 초강대국 한 나라가 보장하는 기본적인 질서가 유지되는 상황이었다. 제한적이지만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을 통하여 궁극적인 통일까지 지향한 햇볕 정책이 가능하였던 것도 이런 외적인 환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멀리 유럽과 중동에서 그리고 남중국해, 인도양 그리고 더 가깝게는 대만 해협에서 위기가 무르익어 가며 미구에 우리를 삼킬 것 같은 두려움도 느낀다. 마치 이런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이 북한의 지도자는, 남북이 이미 한 민족도 아니며 적대적인 두 국가여서 무력으로 통일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지난 70여년 동안 한·미 동맹은 한반도에서 대규모 충돌 사태를 방지하고 기본적인 안전을 보장하여 우리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할 환경을 조성하여 주었다.
이런 보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어려운 선택을 하여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자유 세계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인 합의를 도출할 정치권의 능력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여야 간의 협의는 고사하고 만남조차 배척받는 게 정치권의 현실이다.
한 야당 중진 의원이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양쪽이 만나면 ‘수박이다’ ‘배신자다’ 그러니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그런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한다. 특히나 상대가 높이 평가하는 사람, 상대 진영에서 인정받는 사람은 의심을 받는다. 당 내부에서도 그렇다. 당 안에서 일단 주류로부터 찍히는 것은 물론이고 기성 지지층으로부터도 배척받는다.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서로 연락을 잘 안 하게 되고, ‘만나면 나에게도 문자 오는 것 아냐’하는 분위기가 있다.”(박용진 의원, 중앙SUNDAY 5월 18일자 28면).
그런 상황에서 어렵사리 여야 영수가 만났다. 그렇다면 만사 제쳐 놓고 안보 문제에 국한해서라도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여야 협의체제 논의라도 했어야 했다. 2차대전 후 양분된 세계에서 짧은 시간 안에 중립화와 기적적인 자주 통일 독립을 달성한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피글 대통령의 말대로 가장 좋은 외교 정책의 조건은 국민적인 합의다. ‘이상한 영수 회담’이 유감인 가장 큰 이유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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