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임영웅과 김민기, 위대한 뒷광대들에 갈채를
그의 연극을 이야기할 때, 세상은 특히 두 가지를 주목한다. 하나는 지금 전국 순회공연 중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다. 비록 이번 공연은 임영웅 연출작은 아니나, ‘고도’하면 그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고도를 기다리며’에 관한 그의 선구적인 업적 때문이다. 임씨는 부조리극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196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사무엘 베케트의 이 희곡을 국내 초연했고, 사재를 털어 마련한 산울림소극장에서 꾸준히 공연하여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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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씨, 제작 및 극장 경영자로 헌신
여성연극 개척한 흥행의 보증수표
김씨 ‘학전’열고 뮤지컬 제작 몰두
앞광대 책임지며 묵묵히 소임 다해
」
연극 연출가 임씨에 관한 이런 보편적인 세평에 더하여 내가 조명하고 싶은 것은 ‘제작자 겸 극장경영가’ 로서의 임영웅이다. 문화예술 ‘업계’에서는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뒷광대’라 칭한다. 연극의 꽃인 배우들이 ‘앞광대’라면, 뒤에서 고군분투하며 제작비를 마련하고 극장을 꾸려 관객을 모아 흥행으로 이끄는 이들을 두루 뒷광대라고 한다. 연출가도 배우에 버금가는 앞광대라지만, 제작자와 극장경영자의 소임에 충실했던 임씨는 빼어난 뒷광대였다.
공연계 후배로 임씨 못지않은 뒷광대는 김민기씨다. 가수 겸 작곡가, 극작가, 연출가 등 한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능란한 다역으로 틀림없이 앞광대가 될 수 있었지만, 김씨는 뒷광대를 자처했다. 아예 자신을 ‘뒷것’이라 낮췄다. 얼마 전 방영한 SBS 다큐멘터리 3부작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뒷것, 즉 뒷광대 김민기의 진면목에 초점을 맞췄다. 앞날이 창창한 ‘앞것 배우들’을 위해 묵묵히 뒤에서 헌신하는 ‘뒷광대 김씨’의 모습에 많은 사람이 감동하고 환호했다. 날것 같아 상스럽기도 한 ‘뒷것’이라는 단어는 김씨를 통해 ‘어른다운 헌신’을 의미하는 말로 탈바꿈했다.
임씨가 1980년대 연극 불모지였던 홍익대 인근에 둥지를 틀고 소극장 운동에 매진한 뒷광대라면, 김씨는 1990년대 초 대학로 한복판에 학전소극장을 열고 작은 뮤지컬 제작에 나섰다. ‘배움의 밭’이라는 학전(學田)은 극단의 명칭이기도 하다. 단체로서 극단은 제작자의 역할이요, 극장은 극장 경영자로서의 몫이다. 두 역할을 대표하는 김씨는 앞에 나서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도 내세울 겨를이 없었다. 식구 같은 앞것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관객들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도 검증받아야 했다. 앞광대들에게 현혹된 여느 사람들은 뒷광대의 이런 숙명과 고뇌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뒷광대 김씨를 조명한 다큐멘터리에 많은 이들이 뜨겁게 반응한 이유는 그 일면을 환기한 덕분이다.
임영웅과 김민기 말고도 문화예술계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몫을 다하는 뒷광대들은 수없이 많다. 최근 새롭게 부상한 예술경영이나 문화행정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눈여겨봐야할 뒷광대들이다. 하지만 임씨와 김씨처럼 온몸을 희생하며 집요하게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독립형 뒷광대’는 많지 않다. 점차 공공보조금에 기대는 ‘보조금 의존형 제작자’가 대세를 이룬다. 이런 분들에게 임씨와 김씨 같은 패기와 용기, 헌신과 희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제 산울림 소극장 신화의 주역 임영웅은 세상을 떴고, 소극장 뮤지컬 ‘지하철1호선’의 전설을 만든 김민기는 병환이 깊어 대학로 30년의 학전소극장 시대를 접고 요양 중이다. 한국 공연사의 소중한 순간이 이울고 있다. 일생 뒷광대의 참모습을 보여준 두 제작자 겸 연출자에게 각각 명복과 쾌유를 빈다.
정재왈 서울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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