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정·살인…초연 때 낯설어 외면당했던 걸작, 비제 ‘카르멘’
민은기의 클래식 비망록
하지만 초연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새로운 것에 대한 청중의 낯가림일 것이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음악을 편견 없이 즐기는 청중은 의외로 많지 않다. 복잡하고 어려운 작품일수록,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일수록 더욱 그렇다. 모르는 것을 좋아하기 어렵고, 낯선 것에 환호를 보내기는 더 어렵다. 인간의 유전자가 그렇게 진화한 모양이다. 위대한 곡 중에 유독 초연에 실패한 경우가 많은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심지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조차 초연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했다. 베토벤이 직접 지휘자로 나섰으나 연주자들이 제대로 연습되어 있지 않아서 청중은 곡에 몰입하지 못했고 처음 듣는 음악의 강렬함은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뿐이었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도 초연에서 최악의 실패를 경험했다. 건강한 육체를 가진 풍만한 소프라노가 결핵을 앓고 죽어가는 여주인공 비올레타 역을 맡은 게 문제였다. 인지 부조화가 청중의 감정이입을 막았을 게다.
스승 구노 “내 노래 훔쳐…” 혹평에 상처
특히 비제가 평생 닮기를 원했고 가장 존경했던 스승 샤를 구노가 “스페인 노래와 내 노래를 훔쳐서 만든 오페라다. 비제가 한 것이라고는 양념을 뿌려 그 사실을 감춘 것 뿐”이라고 한 혹평은 그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이로 인해 비제는 지병인 호흡기 질환이 악화되고 우울증까지 걸려 몸져누웠고 투병 3개월 만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불과 37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 의사들은 그의 사인을 “급성 관절 류머티즘으로 인한 심장 합병증”이라고 결론지었으나 실은 그가 자살한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카르멘’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비제가 겪었던 난관들을 생각하면 초연 실패로 인해 그가 자살을 선택했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와 작곡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비제는 불과 19살에 프랑스 최고의 작곡가 등용문인 로마 대상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가 작곡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직후 보불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작품 활동을 펼칠 수가 없었다. 보불전쟁에서 패한 프랑스가 프로이센과 맺은 굴욕적인 종전협약에 반대하는 무장봉기와 그 후 성립된 파리 코뮌, 이어진 정부군의 잔혹한 진압으로 파리는 큰 혼란에 빠졌고 모든 예술 활동이 완전히 멈추어버렸기 때문이다.
파리가 안정을 되찾은 후 비로소 비제는 오페라 합창 지휘자로서 음악계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페라 코믹 극장으로부터 오페라 작곡까지 의뢰받아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 『카르멘』을 선택해서 바로 작곡을 시작했다. 하지만 극장의 경영진들이 이 오페라의 외설적인 내용을 문제 삼는 바람에 작업이 중단된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가장 극렬하게 반대하던 극장의 공동 감독 루벤이 사임하고 나서야 비제는 작곡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난은 끝이 아니었다. 작곡이 끝나고 리허설이 시작되자 이번에는 연주자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곡의 몇몇 부분이 너무 어려워 연주가 어렵다고 수정을 요구했으며, 심지어 합창단까지 불만을 터뜨렸다. 합창단 단원들은 자신들이 다른 오페라에서와는 달리 단지 줄지어 서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집단 패싸움 연기까지 해야 한다는 것에 큰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런저런 문제로 초연 날짜는 자꾸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초연 당일. 그날 비제가 레지옹 도뇌르 기사 훈장을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높은 기대와 함께 ‘카르멘’이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준비 부족으로 연주자와 무대 스태프들이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공연 시작이 계속 지연되었고 마지막 3막은 자정이 넘어서야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공연 시간은 무려 4시간 반을 넘겼다. 상황이 이러니 청중들의 불평이 쏟아질 수밖에. 그래도 청중들에게 익숙한 해피엔딩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불만이 폭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카르멘’은 청중의 기대를 철저히 외면하고 배반했다.
두 캐릭터는 음악도 다르다. 청순한 미카엘라의 선율은 온음계적이고 그녀의 리듬은 구령에 맞추는 체조의 리듬처럼 규칙적이고 밋밋하다. 하지만 카르멘의 노래에는 집시의 원초적인 충동이 존재한다. ‘하바네라’‘세기딜라’처럼 춤을 동반하는 그녀의 노래는 반주에서부터 하체를 흔들리게 만들고 듣는 이들의 육체적 욕망을 자극한다. 고상한 플라톤적 영역을 통과하면 그 한가운데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흩뿌리는 농염한 요부가 있다.
하바네라의 첫 부분에서 반음씩 하행하는 테트라코드는 그녀가 유혹하고 있음을 빠르게 낌새채고 그녀를 갈망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는 상대를 희롱하고 가볍게 비아냥거린다. 사람들을 구슬리고 좌절시키기를 되풀이하는 그녀는 변덕스럽고 교활하지만 매혹적이다. 오페라의 음악적 에너지는 착한 미카엘라가 아니라 카르멘에서 나온다. 오페라를 통해 가슴에 남게 되는 것은 결국 카르멘의 음악이다. 호세가 카르멘에게 완전히 사로잡혔듯이 관객도 같은 신세가 된다.
‘하바네라’ 치명적 선율, 관객도 포로 돼
카르멘은 죽음조차 강렬하고 뜨겁다. 호세에게 카르멘은 사랑의 대상이자 증오하는 악녀이며 뜨거운 욕망의 대상이다. 그리고 두려움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니 카르멘 앞에서 호세는 무기력할 수밖에. 하지만 바로 이점이 카르멘에게 비극적인 결말이 닥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경멸의 대상인 여성 이교도 집시가 엘리트 백인 장교를 파멸로 이끌었으니 비극적 종말은 피할 수 없다. 카르멘을 갈망하던 호세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녀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를 칼로 찔러 죽인다.
비제를 죽음으로 몰아간 초연 실패. 그러나 그 이후의 상황 전개는 놀라운 반전의 연속이다. 초연 이후 빈 궁정 오페라가 ‘카르멘’에 관심을 보였고, 3개월 후 비제가 사망하기 직전 빈 극장과 공연 계약이 성사되었다, 빈 공연에서 빈의 청중들은 파리 초연 때와는 반대로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바그너와 브람스를 중심으로 보수파와 진보파로 양분되어 있던 빈의 작곡가들도 진영을 가리지 않고 모두 ‘카르멘’을 격찬했다. 그리고 이 성공을 계기로 ‘카르멘’은 브뤼셀, 상트페테르부르크, 뉴욕 세계 주요 도시에서 공연되었다. ‘카르멘’의 인기는 그 이후 한 번도 식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누구나 익숙한 것이 편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새로운 것은 종종 낯설음이 되고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카르멘’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인생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즐거움은 그러한 낯설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편한 것도 좋지만 낯선 것에도 조금 관대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지 못한 놀라운 경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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