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2시간 거래 '대체거래소'…변동성 커 '코인판' 전락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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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거래소 68년 만에 경쟁 시대로
내년 3월이면 68년간 한국거래소(KRX)가 독점하던 국내 증권거래시장이 경쟁 체제로 탈바꿈한다. 국내 첫 대체거래소(ATS·다자간매매체결회사)인 넥스트레이드(NXT)가 지난해 7월 금융당국의 예비인가를 받고 3월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넥스트레이드는 금융투자협회와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증권사, 출자기관 34곳이 모여 2022년 11월 세운 ATS 준비법인이다. 그런데, 새 거래소 출범을 앞두고 벌써부터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신규 거래소가 설립되는 건 2013년 금융당국이 자본시장법에 거래소 허가제 및 ATS 도입 근거를 명시한 이후 12년 만의 변화다. 금융당국이 대체거래소를 만들려는 건 주식 투자의 접근성과 편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ATS는 현재 한국거래소 정규장인 9시~15시 30분 전후로 프리마켓(오전 8시~8시 50분), 애프터마켓(오후 3시 30분~8시)을 운영해 하루 최대 12시간까지 주식 거래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또 최우선 매수·매도 호가의 중간가격으로 가격이 자동 조정되는 ‘중간가호가’, 특정 가격에 도달하면 지정가 호가를 내는 ‘스톱지정가호가’ 등 거래 호가 단위도 지금보다 세분화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혜택이 한국 증시의 선진화나 부양에는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본다. 거래시간을 확대하거나 호가가 다양해진다고 해서 거래량이나 주가가 오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6년 8월에도 한국증시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거래시간을 3시에서 3시 30분으로 늘렸지만, 거래시간 연장 이후 시장 거래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당시 코스피는 거래시간 연장 이전 대비 연간 일평균 거래량이 17.5% 감소했고, 코스닥 또한 1.15% 감소했다.
2001년에는 한국ECN증권이 정규 장마감 이후인 오후 4시에서 9시까지 거래가 가능한 거래소를 운영했으나 호가 제한과 30분 단위 체결 등의 규제로 하루 거래대금이 30억~40억원 수준에 그쳐 4년 만에 문을 닫은 바 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ATS는 규제가 상당히 완화된 상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한국ECN증권와는 다를 것”이라며 “다만 거래시간과 거래량이 비례해 늘어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거래수수료 인하도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한국거래소의 거래수수료가 0.0027%로 상당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ATS는 여기에서 20~40%를 더 인하한다는 계획이지만, 주식 투자자가 수수료가 확 줄었다고 체감하긴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증권사 또한 거래소 다양화로 인한 이익보다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입장이다. 넥스트레이드 주주로 참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신규 거래소로 인해 수수료 수익은 소폭 늘 수 있겠지만, 시스템 개발부터 추가 인력까지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수익 확대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플랫폼 개편, 최선집행의무 가이드라인 구축 등 대비해야 할 영역이 많아 마냥 반길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무엇보다 시장에서는 한국 증시의 변동성이 더 심해질 것으로 우려한다. ATS는 기업 공시 마감(오후 7시) 이후에도 거래가 가능한데, 공시 시간 종료 후 중대한 공시 상황이 발생할 경우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통상 장중 변동성을 고려해 장 마감을 앞둔 3~4시에 공시 또는 기업설명회를 진행하는데, 개장시간이 확대되면 실적 등으로 인한 변동성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오보나 전일 미공시내역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가상화폐(코인)처럼 주가가 날뛸 수 있다”고 말했다.
불법 공매도 등의 우려가 큰 상황에서 대체거래소까지 생기면 차익거래나 시세조종 등 범법행위가 더욱 잦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 관계자는 “공매도 세력 등에 대한 개인 투자자의 불신이 남아있기 때문에 불법행위에 대한 의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대체거래소 신설로) 개인 투자자의 민원은 더욱 빗발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개인 투자자들도 대체거래소 설립이 반갑지만은 않다. 금융당국이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 방법의 하나로 대체거래소 설립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 박모(45)씨는 “수수료를 아무리 낮추고, 거래시간을 늘려준다고 해도 장이 불황이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며 “오히려 거래 시 비교해야 할 요소만 많아지고, 코인처럼 시장 변동성으로 인한 피로감만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증시 저평가의 주된 원인인 기업가치 개선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 없이 형식적인 절차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얘기다. 임희연 신한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정부의 궁극적 목표인 유동성 증가는 단순히 거래시간 확대나 거래 수수료 부담 축소보다는 국내 증시의 매력 상승이 선행돼야 한다”며 “대체거래소 출범뿐만 아니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등 점진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출범까지 남은 10개월 간 관리감독 규정 등을 상세히 마련해 대체거래소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시장 감시와 청산 등의 업무는 기존 한국거래소가 소화하고 있는 만큼 두 기관의 합리적 업무 분담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남종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거래소 간 이해관계 충돌 가능성, 거래정보의 투명성 확보 등 아직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며 “본인가 전까지 이런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대체거래소 설립은 해외에서도 트렌드인 만큼 국내에도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 증시가 활성화된 주요 선진국은 이미 대체거래소가 10%대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최근 미국 야간거래 ATS인 블루오션이 국내 증권사와 계약을 체결해 국내에서도 미국 주식 주간거래 시장이 열린 것처럼 국내에도 대체거래소로 인해 해외 투자자 유입이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남 실장은 “독점시장이 경쟁 시장으로 바뀐다는 것 자체가 시장에 긍정적인 변화 신호”라며 “투자자 유입은 물론 상품 다양화 등으로 점차 투자자의 선택권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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