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적 산수화? 조선은 실경의 나라였다
최열 지음
혜화1117
“당연히 나라 안에 제일가는 명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고려에 태어나기를 원한다는 말이 어찌 헛말이랴.”
조선 실학자 이중환(1690~1752)이 『택리지』에서 언급한 이 명산은 금강산. 숱한 화가들이 여러 차례 찾았다. 코스도 다양했다. 신라 때는 동해에서 해금강 통해 외금강으로 진입했다. 고려·조선 때는 개성이나 한양에서 출발해 내금강으로 들어가 해금강으로 나갔다.
이걸로 그치지 않는다. 2권 ‘강원’, 3권 ‘경기·충청·전라·경상’까지 세 권이다. 총 1520쪽 분량에 옛 그림 1300여 점을 수록한 노작이다. 완간 소감을 묻자 미술사학자인 저자 최열은 “두렵다”고 했다. “한꺼번에 다 모아놓는다는 건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또 출판이 어렵다는데 이런 책을 내놓아도 되나 겁도 났다”고 말했다.
서울서 출발해 제주 돌아 금강과 강원, 경기·충청·전라·경상을 아우르며 자료 찾고 글을 쓰는 노정에 30년이 걸렸다. 시작은 “중국의 관념 산수화를 수입한 조선엔 실경이 없다. 겸재 정선 정도뿐”이라던 어린 시절 가르침에 품었던 반발심. 정말 겸재 뿐일까. 실제 경치를 그리지 않았다니, 그럴 리 없다는 저자의 오랜 궁금증은 옛 그림에 인연이 닿았다. 점령자들이 찍기 시작한 20세기 초 우리 땅의 사진은 참담했지만, 옛 그림은 도리어 낯설고 신기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실경의 숲에서 서른 해”를 보낸 저자는 감히 말한다. “조선은 실경의 나라요, 실경의 천국이다.”
땅의 아름다움보다 자산가치를 보는 ‘임장’과 ‘영끌’의 시대다. 저자는 책에 거론한 땅의 3분의 2는 직접 밟아봤건만 서울 도봉산 자락 아파트에 30년 넘게 살고 있는 주변머리의 서생. 그는 현재 갈 수도 없는 금강산을 앙망한다. 가 보고 싶은 곳은 고려부터 조선까지 이어진 천 년의 코스, 단발령에서 외금강 바라보는 육로길이다. 그가 가 보라 권하는 곳은 깊고 험악한 산세가 완만하게 느껴지는 봄의 설악이다.
팔랑팔랑 책장 넘어가게 하는 긴박한 스토리는 없다. 그보다는 곁에 두고 짬짬이 빈둥거리며 옛 그림을 들춰보는 ‘와유’가 이 책의 사용법. 들여다보면 배 위에서, 산마루에서 절경에 넋 놓은 사람들이 보이고, 함께 가고픈 이들이 머리에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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