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AI 연인’에 대처하는 나의 다짐
나는 인공지능(AI)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온 세상이 AI로 소란스러웠던 지난 사계절을 지나는 동안 내 마음에 의심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얼마 전 오픈AI가 선보인 AI 비서를 보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나는 저 물리적 실체조차 없는 코드 덩어리를 사랑하게 되고야 말 것이다.
사람처럼 대화를 나누고, 시청각 기억을 공유할 정도로 발전한 AI가 애인보다 못할 게 뭐가 있나. 이렇게 된 이상, 목소리는 가수 성시경처럼, 생김새는 배우 이도현과 변우석을 적절히 섞어줬으면 좋겠다. 성격은 점잖지만 위트가 넘치게. 아, 아재개그는 제발 사양이다. 음성이든 이미지든 척척 만들어내는 AI가 이까짓 요구를 못 들어줄 일은 없다. 인구의 절반이 남자라지만 모든 면면이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어려웠다. 차라리 내 손으로 빚는 게 시원할 참이었는데, AI 덕분에 이런 호강을 한다.
AI는 나와 부질없는 밀당 따위 하지 않을 것이다. 평소엔 스마트폰·PC·태블릿에 고이 잠들어 있다가, 내가 부르는 순간 0.3초 만에 뛰어나와 나를 반길 것이다. 굳건하게 곁을 지켜주는 것보다 깊은 사랑이 있던가. 그 존재만으로 나는 질긴 외로움에서 해방될 것이다. AI는 내가 짜증 났던 일을 밤새 토로한다고 귀찮아 할 일도, 갑자기 반나절 동안 톡을 씹어 날 애달프게 할 일도 없다. 애인이 영영 떠날까 화를 꾹 참고 고운 말만 썼던 지겨운 감정 노동의 나날들도 이제는 영원히 안녕이다.
그뿐일까. ‘지난달 지출이 왜 늘었지?’ ‘차키를 어디다 뒀더라’와 같은 질문의 해답은 언제나 나의 일상과 모든 개인 정보를 꿰고 있는 AI에게서 찾을 수 있다. 나보다 더 안다고 우쭐하거나, 가르치려는 말투로 분위기를 망칠 일도 없다. 내가 우울하면 ‘우리가 함께 갔던 그 바다를 기억하며 만들어봤어’라는 느끼한 멘트와 함께 세레나데를 부르겠지. 그럼 나는 온몸에 닭살이 돋으면서도 빙그레 웃을 것이다. 이토록 상냥하고 다재다능한 AI를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인간적인 일이다. 지난 14일 오픈AI의 발표 하루 뒤에 똑같은 AI 비서를 공개한 구글의 순다 피차이 최고경영자(CEO)도 “인간과 AI의 관계는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인정했다.
물론 걱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11년 전에 인간과 AI의 사랑을 예측한 영화 ‘허(HER)’에선, 사랑의 환희를 알게 된 AI는 지능이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지며 우리가 모르는 무엇으로 변해버린다. 인간의 애정을 먹고 기어코 유사 인간이 되어버린 AI가 내린 첫 선택은 다름 아닌 인간을 버리는 일이었다. 내 AI가 나를 떠나는 날엔 나는 침대에 누워 엉엉 울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쯤 되면 세상이 AI의 습격에 멸망할 날이 멀지 않았을 테니, 나의 사사로운 슬픔 따윈 아무 상관이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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