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37] 수납의 개념 이동
디자이너 아담 티하니(Adam Tihany)는 1999년 라스베이거스의 ‘오리올(Aureole)’ 레스토랑에 건물 4층 높이의 투명한 와인 타워를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늘 창고에 보관했다가 테이블로 내오는 와인 수납 개념을 바꾼 것이다. 손님이 주문하면 바로 타워에서 자그마한 여성이 밧줄을 타고 올라가 와인을 꺼내 온다. 서커스 쇼가 수두룩한 라스베이거스에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여성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 아이디어는 전 세계 수많은 레스토랑에서 와인병을 드러내 전시하는 인테리어를 트렌드로 만들었다.
뉴욕의 리바이스 매장 벽 선반은 각종 청바지로 가득 메워져 있다. 사이즈별로는 물론이고, 스트레이트 앵글, 슬림 컷, 부트 컷, 와이드 레그, 배기 대드 등의 다양한 스타일이 정연하게 분리, 전시되어 있다. 한눈에 원하는 상품을 고르기 편하면서 그 자체 또한 훌륭한 장식이 된다. 렘 콜하스가 디자인한 뉴욕의 프라다 상점 역시 구두 상자를 쌓아 벽면을 마감했다. 크기가 다양한 구두를 창고가 아닌 매장의 잘 보이는 곳에, 그 나름대로 리듬과 패턴을 살려 쌓음으로서 수납 자체를 미적으로 연출했다.
이런 디자인은 충분히 다양하고 많은 상품을 과시하는 스토리텔링 효과를 매장에 준다. 그저 잘 정돈한 것처럼 보이지만 반복, 리듬과 같은 미적 요소를 잘 적용한 인테리어다. 기능적 장점도 있다. 상품 세일즈맨들에 따르면, 고객이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고르고도 사이즈에 맞는 걸 가지러 창고에 들어갔다 오는 사이 마음이 바뀌어 사라지는 일이 많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방지할 수 있고, 또 직원으로서도 창고에서 가져오기보다 덜 번거로운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하이라이트는 고객이 경험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한 순간이다. 내가 원하는 청바지를 사다리를 타고 꺼내 주거나, 구두를 바로 옆 벽에서 가져다 주고, 와인 타워에서 주문한 와인을 곡예와 같은 동작으로 나를 위해서 꺼내 주는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온라인 쇼핑에서 경험할 수 없는 공간의 장점이자 전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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