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37] 수납의 개념 이동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2024. 5. 2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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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의 ‘오리올(Aureole)’ 레스토랑의 와인타워. 아담 티하니(Adam Tihany)의 1999년 작품으로, 뒤편 창고에 보관했다가 테이블로 내어오는 와인을 전면에 전시하며 수납의 개념을 바꾸었다.

디자이너 아담 티하니(Adam Tihany)는 1999년 라스베이거스의 ‘오리올(Aureole)’ 레스토랑에 건물 4층 높이의 투명한 와인 타워를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늘 창고에 보관했다가 테이블로 내오는 와인 수납 개념을 바꾼 것이다. 손님이 주문하면 바로 타워에서 자그마한 여성이 밧줄을 타고 올라가 와인을 꺼내 온다. 서커스 쇼가 수두룩한 라스베이거스에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여성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 아이디어는 전 세계 수많은 레스토랑에서 와인병을 드러내 전시하는 인테리어를 트렌드로 만들었다.

뉴욕의 리바이스 매장. 스트레이트 앵글, 슬림 컷, 부트 컷, 와이드 레그, 배기 대드 등 수많은 옵션의 청바지들이 정연하게 분리, 전시되어 있다.

뉴욕의 리바이스 매장 벽 선반은 각종 청바지로 가득 메워져 있다. 사이즈별로는 물론이고, 스트레이트 앵글, 슬림 컷, 부트 컷, 와이드 레그, 배기 대드 등의 다양한 스타일이 정연하게 분리, 전시되어 있다. 한눈에 원하는 상품을 고르기 편하면서 그 자체 또한 훌륭한 장식이 된다. 렘 콜하스가 디자인한 뉴욕의 프라다 상점 역시 구두 상자를 쌓아 벽면을 마감했다. 크기가 다양한 구두를 창고가 아닌 매장의 잘 보이는 곳에, 그 나름대로 리듬과 패턴을 살려 쌓음으로서 수납 자체를 미적으로 연출했다.

뉴욕 소호의 프라다 상점. 렘 콜하스 디자인으로 다양한 사이즈의 구두를 리듬과 패턴을 살려 쌓음으로서 수납자체가 아름다움이 되도록 연출했다.

이런 디자인은 충분히 다양하고 많은 상품을 과시하는 스토리텔링 효과를 매장에 준다. 그저 잘 정돈한 것처럼 보이지만 반복, 리듬과 같은 미적 요소를 잘 적용한 인테리어다. 기능적 장점도 있다. 상품 세일즈맨들에 따르면, 고객이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고르고도 사이즈에 맞는 걸 가지러 창고에 들어갔다 오는 사이 마음이 바뀌어 사라지는 일이 많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방지할 수 있고, 또 직원으로서도 창고에서 가져오기보다 덜 번거로운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하이라이트는 고객이 경험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한 순간이다. 내가 원하는 청바지를 사다리를 타고 꺼내 주거나, 구두를 바로 옆 벽에서 가져다 주고, 와인 타워에서 주문한 와인을 곡예와 같은 동작으로 나를 위해서 꺼내 주는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온라인 쇼핑에서 경험할 수 없는 공간의 장점이자 전략이기도 하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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