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경상도 새댁이 기억하는 광주의 이웃
부모님 덕 지역감정 몰랐는데 훗날 5·18 충격
김해 국화 들고 광주 참배 소식, 치유의 희망 봐
어머니는 5남매의 셋째로 언니와 여동생이 있었다. 둘 다 야무지고 집안일을 잘했다. 몸이 약했던 어머니는 집안일을 돕지 않았고, 할머니도 굳이 어머니에게까지 일을 시키지 않았다. 내 아버지는 총각 시절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시부모가 없는 자리에 반색했다. 입버릇처럼 어머니에게 너는 시부모가 없는 자리에 시집가야 하는데, 하며 걱정하셨다 한다. 허약한 어머니에게 집안일을 가르치지 못해서였다.
아버지는 첫눈에 어머니에게 반했다. 어머니가 어리둥절하는 사이에 결혼은 일사천리로 추진되었다. 할머니는 내 아버지가 동네 이웃의 남동생이라서, 아버지는 내 어머니가 누님과 한 동네 사람이라서 믿을 만하다 여겼다. 외삼촌과 이모가 광주까지 어떻게 보내냐 걱정했지만, 시부모가 없는 이런 좋은 자리를 놓칠 수 없었던 할머니는 단호했다. 대구에서 광주 가는 것이 요즘 시대 서울에서 도쿄 가는 것보다 어려웠던 시절, 어머니는 할머니가 준비해 둔 혼수도 가져가지 못했다. 신혼을 월세 단칸방에서 시작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던 시절, 아버지는 이불이며 식기며 다 깨끗하게 새로 준비해 두었으니 좁은 집에 혼수는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60년 전에 대구에서 광주로 시집갔다.
어머니는 기차 안에서 내내 울었다 한다. 가족 친구를 모두 떠나 낯선 타향에서 어찌 살지 아득해서였다. 결혼 일 년 뒤 내가 태어났고, 그 일 년 뒤 우리 가족은 대구로 돌아갔다. 대구로 가는 기차에서 어머니는 또 내내 울었다 한다. 광주에서 사귄 이웃과 헤어지는 게 너무 슬퍼서였다. 카톡은 고사하고 전화도 없던 시절, 그렇게 헤어지면 다시 만날 기약이 없었다.
광주의 이웃은 타향천리에 떨어진 경상도 새댁에게 호의적이었다. 그 당시로는 매우 드물게 밥물조차 맞출 줄 모르면서 결혼한 어머니를 위해 주인집 아주머니가 매일 아침 밥물을 봐 주었다. 같이 세를 살던 어느 부부에게는 애가 없었는데, 부인이 나를 몹시 예뻐해서 몸이 허약한 어머니를 대신해 자주 돌봐주었다. 아버지 직장 상사의 부인이 김장을 도와주러 왔는데, 김장에 필요한 그릇까지 들고 와서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지난 부처님오신날에 개혁신당 당선인 세 명이 경남 김해에서 난 국화 천 송이를 들고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는 기사를 보고 감격했다. 그 며칠 뒤 마침 어머니 집에 들를 일이 있어서 어머니에게 광주에 살던 때 얘기를 자세히 물어보았다. 나는 어머니가 울면서 광주에 갔다가 울면서 떠났다는 얘기는 여러 번 들었지만 그 시절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내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유년기 얘기에 별 관심이 없었고, 부모님도 내게 굳이 시시콜콜 말하지 않았다. 언젠가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가 아무개 엄마도 이제 이 세상 사람 아니겠지 하자 아버지가 그렇겠지 하던 기억이 있는데, 그 아무개 엄마가 밥물을 봐 주던 주인집 아주머니였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두려움을 안고 광주에 도착했던 경상도 새댁은 광주의 이웃이 베푼 정을 60년이 지난 지금도 놀랄 만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이직으로 우리 가족은 충남에서도 살았다. 어머니는 거기도 울면서 갔다가 울면서 떠났다. 내 부모님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 이웃도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부모님 덕에 지역감정을 모르고 자랐다. 대학생이 되어 광주의 비극을 알고 놀랐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영호남의 극심한 갈등과 반목에 당황했다. 그리고 이제껏 그 갈등과 상처가 극복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절망하고 있었다. 김해에서 온 국화 천 송이에 지역과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이 경탄하는 것을 들으며 비로소 희망을 본다. 아아 제발, 우리 세대가 치유하지 못한 그 큰 상처가 우리 다음 세대에서는 치유되기를 하늘을 우러러 빈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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