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데, 그 먼 데를 향하여[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50〉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사람 사는 곳어디인들 크게 다르랴,아내 닮은 사람과 사랑을 하고자식 닮은 사람들과 아옹다옹 싸우다가,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매화꽃 피고 지기 어언 십년이다.
나는 가보지도 않았던 장터와 떠도는 서러움을 만나보지도 못한 시인이 알려주었다.
여기서 시인은 쏜살같이 지나간 인생을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먼 데 가는 길은 응당 가야 할 길이고,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 되돌아가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선택할 '인간의 길'이라는 말이 시에서 들리는 듯하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
어디인들 크게 다르랴,
아내 닮은 사람과 사랑을 하고
자식 닮은 사람들과 아옹다옹 싸우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매화꽃 피고 지기 어언 십년이다.
어쩌면 나는 내가 기껏 떠났던 집으로
되돌아온 것은 아닐까.
아니, 당초 집을 떠난 일이 없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다시,
아주 먼 데.
말도 통하지 않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먼 데까지 가자고.
나는 집을 나온다.
걷고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몇날 몇밤을 지나서.
―신경림(1936∼2024)
시인의 이름을 알기도 전에 ‘가난한 사랑노래’부터 알았다. 중학생 때였는데, ‘왜 모르겠는가’ 묻는 시 앞에서 이 시인은 꼭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의 이름에 익숙해지기 전에 ‘목계장터’부터 배웠다. 나는 가보지도 않았던 장터와 떠도는 서러움을 만나보지도 못한 시인이 알려주었다. 짧게 왔지만 길게 남는 시였다. 그 시인이 별세하셨다. 이제 배웅하는 마음이 되어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는다.
이 작품은 ‘서러운 행복과 애잔한 아름다움’이라고 평가받은, 10년 전의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상당히 후반기의 작품인 셈이다. 여기서 시인은 쏜살같이 지나간 인생을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신경림 시인은 인생을 ‘먼 데를 향해 걷는 일’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반드시 어디에 도착한다는 욕망 없이, 그저 꾸준히 나아가는 것. 남들이 너무 이상적이어서 도달할 수 없다고 말려도 타박타박 걸어가는 것. 생각해 보면 시인이 존경받는 이유는 이런 자세 자체에 있다. 먼 데 가는 길은 응당 가야 할 길이고,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 되돌아가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선택할 ‘인간의 길’이라는 말이 시에서 들리는 듯하다. 우리에게도 이런 어른이 계셨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탄핵’ 불때는 野…‘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 앞두고 대규모 장외 공세
- ‘요리사’로 나선 尹, 출입기자단과 만찬… “더 많은 조언·비판 받을 것”
- 김호중, ‘음주 뺑소니’ 혐의로 보름만에 구속…법원 “증거인멸 우려”
- 22대 국회의원 사무실 배정 완료… ‘로열층’ 차지한 의원들은 누구?
- 한중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성명 문안 이견… 정상회의 앞두고 조율중
- 의대증원 못박았지만…학칙개정 안된 대학 10곳 등 진통 여전
- 갑자기 손에 힘이 빠지면서 물건을 떨어뜨리곤 한다
- 강형욱, 첫 입장 발표 “안 좋은 모습 보여드려 죄송…CCTV 감시용 아냐”
- 경찰차 뒷자리에 놓인 현금 누가?…CCTV 담긴 모습에 감동
- 민주 “연금 개혁, 22대서? 진정성 없어”…국힘 “법안 처리 명분 쌓기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