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망했다”던 美교수 “저출생, 생산성 낮은 장시간 근로 때문”
조앤 윌리엄스(72)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는 24일 조선일보와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저출생 콘퍼런스’에서 “주 50시간 이상, 40년간 휴직 없이 자주 야근하는 직장인을 ‘이상적 근로자’로 여기는 한국의 직장 문화가 초저출생을 야기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육아 지원 제도는 잘 갖췄지만, 생산성 낮은 장시간 근로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어떤 정책으로도 저출생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버드대 법학 박사로 미국에서 손꼽히는 노동법 전문가인 그는 여성이 직장에서 부딪히는 구조적 문제 등을 평생 연구해왔다. 지난해 EBS 인터뷰에서 한국의 합계 출산율(2022년 0.78명)을 전해듣고,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은 채 놀란 표정으로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말한 장면으로 더 유명해졌다. 그는 이날 콘퍼런스에서 수엘라 브레이버만(44) 영국 하원의원 등과 저출생 극복 대안 등에 관해 토론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 기업은 일하는 시간은 많은데 생산성은 미국의 절반밖에 안 된다”며 “기업 등이 ‘상사보다 늦게까지 남는’ 희생을 강요할 게 아니라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미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가정 친화적 정책을 경쟁적으로 도입해야 하고, 그래야 저출생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EBS 인터뷰 때보다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더 떨어졌다(작년 0.72명)”며 정부의 정책적 고민도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예컨대 한국 정부의 주 69시간제 도입 추진도 부모의 양육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었는데, 개별 정책이 양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더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여성에게 과도한 육아 부담이 전가되는 가족 문화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한국 드라마에선 출산휴가를 갔다가 동료에게 부담될까 봐 곧 다시 복직하고, 부부 사원 중 여성 직원만 대거 해고당하는 케이스가 등장한다”며 “한국 사회는 남녀 역할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다르고 그것이 아이 둔 여성의 재취업 장벽 등으로 이어지는데, 부부가 맞벌이하고 함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의 가정에선 여성들이 일을 그만두도록 하는 압력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날 수엘라 브레이버만 의원은 “기업 입장에선 육아휴직 같은 제도를 비용으로 인식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단기 비용’일 뿐 좋은 인재를 유치하고 회사의 경쟁력을 키우는 ‘장기 투자’”라고 했다.
변호사 출신으로 영국 검찰총장, 내무장관을 지낸 그는 검찰총장으로 재직 중이던 2021년 출산과 동시에 6개월 유급 출산휴가를 다녀왔다. 장관급 출산휴가 규정이 없어 사퇴해야 할 상황에서 여야가 뜻을 모아 법을 개정한 덕분에 영국 내각 사상 처음으로 출산휴가를 다녀온 장관급 각료가 됐다. 복직 후엔 검찰총장으로 1년 더 근무하다 내무장관으로 영전했다.
그는 “나 또한 그만둬야 하나, 며칠 병가만 내고 다시 출근해야 하나 많이 고민했지만, 당시 상사였던 보리스 존슨 총리는 물론 여야가 초당적 지지를 보내줬다”며 “그런 분위기가 여성의 근로 의욕을 넘어 사회 전반에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날 저출생 극복을 위해 ‘경제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다만 브레이버만 의원은 주택 구입비용 지원, 출산 세제 혜택, 육아 보조금 등에서 더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윌리엄스 교수는 ‘출산한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이 특히 중요하다고 했다.
브레이버만 의원은 “안정적 주거가 가족을 꾸리는 주요 동력인데, 영국도 주거 비용을 포함해 가족을 구성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인식이 많다”며 “많은 가족이 육아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정부가 지원책을 계속 연구 중”이라고 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최빈국에서 경제적 기적을 일으킨 한국에선 ‘물질적 웰빙’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됐고, 이를 위해 비혼·비출산을 택하는 경향이 훨씬 더 강하다”고 했다. 2021년 미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가 17개 주요국 국민을 대상으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를 물은 결과, 14개국이 ‘가족’을 가장 많이 꼽은 반면 우리나라는 ‘물질적 풍요’를 꼽았다.
그는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육아·교육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이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들의 목표를 함께 달성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출산·육아 때문에 정규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경제력을 잃을 경우엔 보상이 불가능하다”며 “단기 지원금만으로는 부족하고, 자녀를 둔 여성이 경력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또 “직장 내 관리자는 평생 주 60시간 일했던 본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데, 본인도 과거와는 다른 문화적 전환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며 “한국의 야근·회식 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처럼 직장 내 문화적 변화를 제대로 관리하고 효과적으로 다룬다면 출산율 문제에서도 고무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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