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공관 비리로 장관이 얼굴 들고 다닐 수 없다”

이하원 외교담당 에디터 2024. 5. 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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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8회> ]
DJ 청와대 “외교부가 밥 장사를 해왔다”며 강하게 개혁 요구
이정빈 장관, 공관장 회의서 예산 전용·비리 거론하며 질타
외교부 감찰 강화됐으나 카지노 도박, 금품 수수 잇달아 터져

[조선일보 외교부-민주당 출입기자·한나라당 취재반장·외교안보팀장·워싱턴-도쿄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과 TV조선 정치부장으로 정치·외교·안보 분야를 25년간 취재해왔습니다. 주요 사안의 막전막후에서 취재한 비사를 전해드립니다.]

1989년 2월 평민당 총재로 스웨덴을 방문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친필사인이 담긴 사진을 보내주었다./월간조선

2000년 1월 14일 이정빈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이 신임 외교부 장관으로 첫 출근 하자 청와대에서는 박준영 대변인이 브리핑합니다. “홍순영 외교부장관의 교체 배경에 대해 차관급 인사와 탈북자 처리미숙 등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으나 홍 장관은 능력 있는 분으로 특별한 흠이 없다. 기본적으로 외교부가 개혁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고, 새 시대를 맞아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점이 교체의 배경이다. 해외공관은 더욱 개혁돼야 한다.” 홍 장관이 능력은 있으나, 김대중 정부 개혁에 다소 소극적이었기에 경질됐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비슷한 시기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일부 기자들을 만나 직설적으로 “외교부가 밥 장사를 해왔다”며 외교부 개혁 필요성을 거론합니다. “외교부는 앞으로 더 개혁돼야 한다. 외교부는 그동안 밥 장사를 해왔다. 초청 인원을 과다하게 산정해서 돈 빼 먹고, 호화주택에서 생활해왔다. 무슨 고교 인맥, 대학 인맥, 이런 것이 김대중 정부 출범 후에도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동교동계, ‘외교문서 변조사건’ 때 저항한 외교부 개혁 요구

청와대가 이정빈 장관 체제 출범에 맞춰 ‘외교부 개혁’을 강조하기 시작한 배경에는 동교동계의 불신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1997년 대선에서 김 대통령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게 승리했으나, 차기 대선에 다시 이 총재가 다시 나올 것으로 보고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동교동계를 비롯한 새천년민주당 주류는 이회창 총재와 동문인 ‘KS(경기고-서울대)’ 출신들이 외교부를 장악, 자신들에게 비판적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북한과의 화해를 내건 햇볕정책에 소극적이고, 1995년 ‘외교문서 변조사건’이 났을 때 외교부가 강하게 저항한 것도 원인이 됐습니다. 외교부와 일부 외교관들에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정권 핵심 세력이 ‘주류 세력 교체’라는 목적하에 혁신을 요구한 겁니다.

이 같은 기류를 잘 아는 이정빈 장관은 취임 후 잇달아 외교부 개혁을 언급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외교부 개혁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며 개혁을 과감하게 하라고 하셨다. 현재 외교부 인력이 1500명 된다. 해외 공관이 125개다. 방대한 조직이다. 1500명의 맨 파워가 작은 것은 아닌데, 현재의 조직으로 과연 효율적으로 외교를 할 수 있겠느냐. 지금은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체제 경쟁을 할 때가 아니다. 환경,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국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체제를 가지고는 굉장히 어렵게 돼 있다.”

이 장관은 취임 한 달만인 2월 14일 조선일보 김창기 정치부장(이후에 편집국장, 조선뉴스프레스 대표 역임. 현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이사장) 과 인터뷰를 갖습니다. 이 장관은 인터뷰에서 “앞으로 외교관들은 10년마다 한 번씩 외교관의 자질을 엄격히 심사,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외교부에서 퇴출 시킬 것” 이라고 했습니다.

-외교부가 개혁돼야 한다는 소리가 여권 핵심부와 행정부 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장관은 어떤 구상을 갖고 있나.

“조직과 인원 운영에 관해 부분적 수정이 아니라 기본적 틀을 바꾸고자 한다. 유능한 외교관들이 인사를 걱정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관심 있는 분야에 서 전문성을 갖게 하겠다. 외교관 각자의 근무내용을 자료로 축적해서 10년마다 심사하고, 자격이 안 되면 퇴출도 시키겠다.”

-외교관의 전문성 확보라는 목표와 오지 순환근무라는 관행은 서로 모순되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선진국과 오지 순환근무는 불평 무마 방식이었을 뿐, 전문성 확보와는 무관했다. 앞으로는 지역별 또는 업무분야별 전문성 확보에 중점을 두겠다.”

이 장관은 2000년 3월 외교관들에 대한 인사고과 평점을 상급자뿐만 아니라 동료, 부하직원들까지 매기도록 하는 ‘다면(多面) 평가제’를 도입하겠다고 김 대통령에게 보고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면평가제는 관가에서 일반화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인사철마다 뒷말이 나 오고 때로는 권력층도 인사에 개입하는 사례가 있어 다면평가제 아이디어가 나온 겁니다. 대한민국 외교관은 당시 특1급~7급으로 분류했는데, 이를 폐지한다는 조치를 발표하기도 합니다.

외교부의 주류 세력 교체도 시도됐습니다. 당시 한 관리는 “홍순영 장관이 경질된 후, 청와대로부터 모든 인사라인을 바꾸라는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경기고 출신을 요직에서 배제하라”는 말을 들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이정빈 장관은 외교부의 인사를 총괄하는 요직인 기획관리실장, 인사과장을 모두 호남출신으로 바꿉니다. 기획관리실장에는 전북 김제 출신으로 남성고-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박양천 전 루마니아 대사가 기용됐습니다. 박 실장은 외무고시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1963년부터 1968년까지 5년 동안 외교관을 선발하는 고시가 시행되지 않을 당시 대학을 졸업한 후 1967년 7급으로 외교부에 입부했습니다. 입부 10년 만인 1977년에는 인사계장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는 더블 버튼 양복을 즐겨 입으며 상대방을 조용하게 설득하는 스타일로 외교부내에서 평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주홍콩 총영사관에서 부영사, 영사, 총영사로 세 번 근무한 중국 전문가로, 한중 수교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중국에 대한 고급 정보를 입수해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외교부에서 핵심 부서를 거치지는 못했습니다.

◇재외공관 금품 사건, 외교행낭 부정 사용 등 잇따라 적발

외교부에서 2000년은 첫 남북정상회담과 첫 남북외무장관 회담,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서울 개최로 굵직굵직한 외교 사안이 많은 해로 기억됩니다. 그 반면에 내부적으로는 청와대와 동교동계의 개혁 요구가 커지면서 내부적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해이기도 했습니다. 외교부가 정부부처 중 중점 개혁 대상이 되면서 감찰(監察)이 심해졌습니다. 2000년 초 남미 지역에 파견된 대사가 교민들로부터 금품을 받았다가 파면됐습니다. 5월에는 중동지역 공관장이 현지 카지노에서 거액의 도박을 하다가 적발됐습니다. 그는 카지노를 10여 차례 출입하면서 현지 교민회장, 교포, 사업가들로부터 돈을 빌려 도박을 하는 등 총 6만 3000달러 빚을 진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컸습니다. 6월엔 국제회의에 함께 참석한 여자 교수의 호텔 방에 ‘관련 서류를 전달하겠다’며 밤늦게 찾아갔던 외교관이 직위 해제됐습니다. 12월에 외교부 파우치(외교행낭)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공관장 4명 등 10여 명의 외교관 적발, 장관 명의 주의처분이 내려졌습니다. 통상적이라면 비공개로 처리됐을 사안인데, 당시 보도 자료는 외교부가 개혁대상이 된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자료입니다.

외교부는 2000년 1월 홍순영 장관 경질을 계기로 청와대와 동교동계로부터 '개혁'을 강하게 요구받기 시작했다. 사진은 정부종합청사로부터 독립, 이전한 외교부 청사 전경.

1. 국가기강 확립대책 추진계획상의 특별감찰활동 일환으로 12.23-27간 69개 공관 외교행낭 및 본부 발송 외교행낭에 대한 불시점검 결과, 적발된 사항을 아래와 같이 참고로 알려드리오니 규정에 따른 외교행낭 운영에 적극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ㅇ발송료 환수 및 장관명의 주의처분 : 공관장 1명 및 해당직원 1명

ㅇ장관명의 주의처분 : 공관장 2명 및 해당직원 2명

ㅇ감사관명의 주의 통보 : 공관장 2명 및 해당직원 3명

2. 금번 불시점검에서는 규정위반 물품 발송 직원 및 공관장에 대하여만 주의처분하였으나,앞으로는 수령 직원에게도 책임 소재를 추궁, 수령 직원 부탁으로 인한 물품일 경우, 동 수령 직원에게도 주의처분할 예정인 바, 외교통상부 사무관리지침 제22조 규정에 합당한 물품만 외교행낭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DJ, “외교관들이 부동산 많고 못된 짓거리 한 사람 많다”

2001년 1월 재외공관장 회의를 앞두고, 중동 지역 공관장이 비리 혐의로 사표를 낸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감사원 감사에서 대사관저 비용으로 받은 돈 1만2500달러 가운데 8500달러의 사용처를 입증하지 못해 물러난 겁니다.

외교부와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상태에서 2001년 1월 29일부터 3일간 서울에서 재외공관장 회의가 열립니다. 외교부는 당시 청와대와 동교동계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 이례적으로 공관장 회의를 서울 시내 고급호텔에서 개최하지 않고, 서울시 서초구 염곡동 한국국제협력단(KOICA) 연수센터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참석하는 97명의 공관장 중 50여명만 독방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2인 1실을 쓰도록 했습니다. 이 회의 첫날 ‘장관과의 대화’에서 이정빈 장관이 비공개로 일부 공관장들의 비리, 근무태만 문제를 강도 높게 거론하며 공관장들을 질타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관장 회의가 서울시 외곽에서 열린 탓에 현장 취재를 온 취재 기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휴식시간에 친분이 있는 대사들을 만나려고 재외공관장 회의장 밖에 있을 때였습니다. 열린 문틈 사이로 마이크를 잡은 이 장관의 목소리가 고성으로 회의장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장관은 “대부분의 재외공관장이 해외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하고 있으나, 국민의 외교관에 대한 실망도 크다”고 했습니다. 그는 지난해와 1월 초 발생한 재외공관장 관련 추문을 거론한 뒤 “하도 이런 사건이 많이 생겨서 각 공관에 주의를 환기시켰음에도 금품사건, 근무태만, 해외교민 불화설, 공관운영 문제, 예산 불법사용이 잇달아 발생하고 고쳐지지 않는다”고 질타했습니다.

이 장관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옛날에는 외교관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깨끗하고, 훌륭한 줄 알았다. 그런데 (대통령 된 후) 각종 정보를 받아보니, 부동산 많고, 못된 짓거리 한 사람 많다’고 말씀하시더라”며 “도대체 장관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했습니다.

2006년 12월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역대 외교부 장관들을 한남동 공관으로 초청, 만찬을 함께 했다. 맨 왼쪽부터 이정빈, 최호중, 최광수, 이원경, 송민순, 박동진, 이상옥, 공로명, 홍순영, 한승수, 윤영관 장관. / 연합뉴스

◇ “공관장이 어떻게 행동하기에 교민들에게 멱살 잡히나”

이 장관은 목소리를 높여가며 구체적인 사례들을 일일이 언급했습니다. “공관 예산 문제로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생긴다. 모 공관장의 비리가 확인돼 담당 기관장 양해하에 조용히 처리하려고 해도 이젠 담당기관 직원이 공개해 지켜지지 않는다”. “서울 사는 공관장이 지방에 부인을 위장전입시켜서 부동산을 구입한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다. 이런 것이 적발돼 진급이 안 된 사람이 많다.” “도대체 공관장이 어떻게 행동하기에 주재국에서 교민들에게 멱살을 잡히는가”, “다른 곳을 통해 공관장들의 비위사실이 많이 들어온다.” 그는 또, 일부 재외공관장 부인들에 대해서도 개탄했습니다. “왜 공관장 부인들이 공관에서 일하는 가정부의 월급을 손대서 불필요한 잡음을 내느냐. 공관장이 부임하면 제일 먼저 관저 옮기고, 가구를 사는 이들이 많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이 장관은 “공관장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면서 할 수 없다. 우리가 돈 벌려고 외교관 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 참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공관장”이라고도 했습니다. 공관장회의 사상 처음으로 기획된 장관과의 대화는 분위기가 침체된 가운데 대화없이 1시간만에 끝났습니다. 장관의 질책이 끝난 후, 사회를 맡았던 외교부의 한 간부가 아시아 지역의 대사 한 명을 지목해 발언을 유도했으나, “할 말이 없다”며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정빈 장관의 질타는 청와대의 개혁 요구가 거센 상황에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으나 당사자들로서는 기분이 좋을 리 없었습니다. 이날 장관과의 대화에 참석했던 한 공관장은 “참석자들이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 지 모를 정도로 분위기가 무거웠다”고 했습니다. 다른 공관장은 “극소수의 문제를 지나치게 일반화했다. 모욕당한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한 외교관은 “동교동계의 도움으로 장관이 된 사람이 어떻게 외교부 개혁을 말할 수 있느냐”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참석자들의 침울한 표정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습니다.

외교부가 이 장관의 재외공관장 질타 등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2001년 2월 김대중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서울 정상회담 때 외교 참사가 발생합니다. 이 공동성명에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조약의 보존·강화’ 조항이 포함돼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 구축을 위해 ABM협정 파기를 추진하던 부시 미 행정부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이 장관은 경질되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P.S.

1. 청와대 요구로 시작된 외교부 ‘개혁 드라이브’는 후임 장관들을 통해서도 계속됐습니다. 외교부는 2004년 공관장급에 대한 대명퇴직제도를 엄격히 적용, 사실상 정년보장을 폐지하고 공관장 자격심사 2회 탈락자는 공관장의 보임을 허용치 않기로 했습니다. 외교관들은 해외공관에 함께 파견 나온 동료들과 동고동락하고 그 가족들과도 친해지면서 간혹 잘못된 일이 발생하면 눈 감아주는 온정주의 문화가 있었는데, 이런 문화도 차츰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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