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영의 칵테일파티] 오그라들어도 필요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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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수습기자들은 심리적 압박감을 많이 느낀다.
뭐가 그리 답답했을까 되돌아보면 내가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인지 모를 때가 많았다.
부모가 손발이 오그라든다며 격려의 말을 아낀다면, 아기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게 기꺼이 응원의 말을 건네주는 그 사람이 있어서 참 좋은 곳이라고 느낄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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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수습기자들은 심리적 압박감을 많이 느낀다. 뭐가 그리 답답했을까 되돌아보면 내가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인지 모를 때가 많았다. 취재를 위해 연락한 사람이 나에게 내줄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하루만 더 시간을 주면 더 나은 기사를 쓸 수 있다고 선배에게 얘기해도 되는 걸까. 데스킹 과정에서 틀린 정보가 들어갔다고 솔직히 전해도 될까. 이런 모든 고민에 '과연 내일의 기삿거리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기자 생활 최대 난제가 더해진다. 수습 때는 요령이 없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실존적 위기로 다가온다.
수습기자였을 당시 선배의 지시에 따라 누군가를 인터뷰했다. 그리고 과연 어디까지 요구해도 되는지 몰라서 괴로웠다. 당신이 하는 말은 너무 무례하다고 얘기해도 되는 걸까. 왜 서로 좋은 취지로 만난 건데 자꾸 기선 제압을 하려는 거냐고 물어봐도 될까. 결국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결론 내고 스트레스를 받다가 마무리했다. 선배가 주선해준 인터뷰를 망칠 수 없었다.
인터뷰이가 1시간 남짓 드러낸 철학과 비전이 경청할 가치가 있었는지 되새겨보며 터벅터벅 걷는데,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어땠냐고 묻기에 그저 잘 마무리했다고 대답했다.
상대가 보여준 태도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후배에게 엄했던 선배가 그날 들려준 목소리는 좀 달랐다. "신경 쓰지 마라. 별로 대단한 사람 아니야. 그리고 너는 더 대단한 사람이 돼가는 과정이니까."
선배는 아끼고 아껴서 최소한으로 내놓은 나의 말에서 인터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챘다. 어쩌면 인터뷰를 조율해주다가 인터뷰이의 스타일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떻게 감지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중요한 건 후배의 의기소침해진 마음을 읽고 필요한 말을 건넸다는 것이다.
2000년대는 팩트의 가치를 그 어느 때보다 높게 사는 반면, 감정 표현은 자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시대다. 누군가를 격려하려다가도 '오그라들진 않을지'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그때 선배가 '오그라드는 얘기를 하는 사람'으로 비칠 리스크를 우려해서 말을 삼켰다면 어땠을까. 내겐 그 말이 필요했다.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넘길 수 있었다. 선배의 한마디에 이 조직이 있을 만한 곳이라고 느껴졌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건 꽤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에게 필요한 말을 건네주는 선배가 있는 곳이니 말이다.
새로운 세계에 막 발을 들인 존재에겐 늘 많은 응원이 필요하다. 우리는 갓 태어난 아기들에게 '공주님' '왕자님' '우주에서 제일 예쁘다'는 말을 쏟아낸다.
낯선 세상에 적응하도록 도와줘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손발이 오그라든다며 격려의 말을 아낀다면, 아기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그라들더라도 필요한 말을 해야 한다. 길면 100년 정도 사는 인간은 세상에 채 적응하지 못한 상태로 떠나게 되니 말이다. 이 세상에 사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라고 여길 수 있게 서로 세워줘야 한다.
내게 기꺼이 응원의 말을 건네주는 그 사람이 있어서 참 좋은 곳이라고 느낄 수 있게 말이다.
[박창영 컨슈머마켓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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