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시장 탐나는 중국 기업, 미 제재 두려운 중국 은행
중국 기업들이 러시아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서방 제재로 인해 송금과 지급 결제 등에 불편을 겪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4일 보도했다. 미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협력에 소극적인 은행과 수출 기업 간 이해관계가 엇갈린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인 VTB 상하이 지점은 중국에서 영업 중인 유일한 러시아 은행이다. 러시아에 수출하는 전국의 중국 기업들이 러시아 내 계좌를 개설하려면 이 은행을 방문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러 교역이 크게 늘면서 이 은행의 고객 수도 대폭 증가했다. 하지만 서방의 금융제재 때문에 중국 기업들은 러시아 측과의 거래에 불편과 번거로움을 겪어 왔다.
보도에 따르면 산둥성에서 온 농기계 제조업자 옌은 러시아 측의 미지급 대금 문제를 해결하러 지난 21일 VTB 상하이 지점을 방문했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다음번 방문 약속만 잡고 돌아갔다. 일 처리에 답답함을 느꼈지만 뾰족한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 중국 주요은행은 러시아와의 거래를 꺼리고 있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 국경 근처의 소규모 은행들은 대형 국유은행에 비해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가 커 보였지만 “너무 멀고 최근 외환 서비스마저 중단했다 들었다”고 말했다.
소규모 업체들은 결제 지연으로 인해 불편을 겪고 현금마저 부족해지면서 러시아 시장 철수도 고려하고 있다고 SCMP가 전했다.
올해 초 미국이 러시아의 무역 거래를 지원하는 중국 은행을 겨냥한 제재안을 마련 중이란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중국의 대러 수출은 다소 움츠러들었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 3월 중국의 대러시아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7%, 4월은 13.6% 감소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첫 감소이다.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근 중국 방문 배경으로도 거론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 16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교역에 위안화와 루블화 사용을 장려하고 이를 위해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회원인 신흥 개도국 간 무역을 위한 결제 플랫폼을 적극 이용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미국의 러시아 금융기관 제재 하에서 지급 결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
결제가 위안화로 이뤄지더라도 기업이 겪는 번거로움은 남아 있다. 중국 은행들이 미국의 제재 대상에 포함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심사가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러시아 측이 제때 결제해도 중국에서 환전과 인출이 지연되는 경우가 숱하다.
저장성 소재 의류 제조업체의 영업 매니저인 릭 왕은 지난 3월부터 비군사적 사용 증명서, 법적 주주 증명서, 선하증권 등을 제출해야 하는 등 입증 책임이 커졌다고 전했다. 저장성의 소비재 판매업자 제리 니는 “은행이 모든 거래를 수동으로 확인하고 거래가 합법적임을 증명하기 위해 고객에게 문서를 제출하도록 요청한다”며 “은행이 너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SCMP는 인터뷰한 기업인 상당수가 러시아 시장 진출에 대한 의지 자체는 강하다고 전했다. 과잉생산으로 국내 경쟁이 치열해 수출을 모색해야 하는 데다가, 서방 기업이 철수한 러시아는 중국기업이 공백을 파고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도이체벨레, 블룸버그 등 서방 매체에 따르면 러시아에 수출하려는 중국 기업들은 중앙아시아를 통한 우회 수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장관은 최근 상하이협력기구(SCO) 참석차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 가상자산을 이용한 거래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장쑤성 기계 제조업자 톰 두는 가상자산 등을 이용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계속 은행을 이용할 것이라면서 “푸틴 대통령 방문 뒤로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SCMP에 전했다.
https://m.khan.co.kr/world/china/article/202405192121025#c2b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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