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속실·특별감찰관 설치는 대통령 의무”
“DJ, ‘친인척·측근 관리’ 특별 당부…민정수석 역할은 대통령의 민주적 국정 운영 보좌”
(시사저널=이원석·박나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취임하며 폐지했던 민정수석실을 최근 다시 부활시키면서 신임 민정수석비서관(이하 민정수석)에 검사 출신인 김주현 전 법무부 차관을 임명했다. 5월7일 언론 앞에서 김주현 신임 수석을 직접 소개한 윤 대통령은 민정수석실을 다시 둔 이유로 "민심 청취 기능이 너무 취약했다"는 점을 꼽으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재임 시절 민정수석을 없앴다 부활시킨 전례를 거론했다. 실제 DJ는 취임하며 민정수석실을 폐지했다가 2년 만인 1999년 6월 부활시켰다. 그때 첫 민정수석에 임명된 건 비법조인인 김성재 당시 한신대 교수였다. 김성재 수석은 '메기 수석'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조직의 활기를 되살리고 온전하게 민정(民情)의 기능을 잘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6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으로 사실상 승진 기용되기도 했다.
시사저널은 5월20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김 전 수석(현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과 만났다. 그에게 DJ 민정수석 당시 자신이 맡았던 역할과 윤 대통령의 민정수석 부활 결정 등에 대한 견해를 청해 봤다. 김 전 수석은 청와대 근무를 마친 후 DJ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민심 청취 통로는 언론"
DJ 정부 초기에 민정수석을 폐지했다 부활시켰던 배경은 무엇이었습니까.
"원래 민정수석의 역할은 민심·민생을 살피는 겁니다. 그러나 그 본래의 기능은 뒤로 후퇴하고 주로 다 검찰 출신이 맡으며 사정(査定)이 중심이 돼 소위 통치 수단의 하나가 돼버린 거죠. 그러다 보니 민정수석이 정치적 통제수단이 되고 민정수석의 권력이 남용되고 왜곡이 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없앴는데, 1년쯤 지나면서 국정·개혁 과제에 대한 점검이 안 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중에 '대통령이 여론과 민심을 모른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대통령도 필요성을 느끼시고 부활시킨 겁니다."
부활 후 첫 민정수석에 발탁되셨습니다. 예상하셨습니까.
"나도 당황했고 대부분 예상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검사도 아니었고, 시민사회운동을 했던 대학 교수일 뿐이었죠. 김대중 대통령과는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을 같이 하면서 동고동락했고, 대통령이 야당 총재이던 시절엔 정책자문위원장도 맡고 하면서 인연이 있었습니다만, 언론도 '김성재가 누구야?'하면서 굉장히 를 추적했었습니다."
DJ가 민정수석을 다시 도입하면서 바랐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적으로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이 국정이 어떻게 수행되는지를 잘 알도록 하기 위해서 국정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그걸 계속 국민에게 일깨워주길 원했습니다. 대통령이, 수석이, 장관이 혼자 하는 게 아니다, 국민과 같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였지요. 장관과 수석들이 언제나 국민이 있는 현장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국민을 가르치려 하지 마라, 국민보다 반보(半步)만 앞서가라는 것이었어요. 당시 외환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까. 이런 국민을 보지 않고 관료주의적 정책과 행정만으로 국정을 수행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첫 민정수석으로서 어떤 역할을 맡으셨던 겁니까.
"민심을 잘 살펴서 대통령에게 그 민심을 가감 없이 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민심을 모르면, 민심을 얻지 못하면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민정수석은 민심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민생의 어려움을 해결할 방안도 마련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특별히 김대중 대통령께서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돈이 없어서 굶주려서도 안 되고, 공부하고 싶은데 학교에 가지 못해서도 안 되고, 아픈데 병원에 가지 못해서도 안 된다'고 하면서 최우선과제로 이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하라고 했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제정, 중3까지 무상의무교육 확대, 장학금 확충과 학자금저리 대출, 의료·연금·고용·산재 등 4대 사회보험 전면 실시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또,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4대 개혁(기업·금융·공공·노사) 추진도 점검했습니다."
민심을 청취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중요한 통로는 언론이었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언제나 언론과 대화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언론이 민심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였지요. 청와대 수석실을 출입기자들에게 개방했습니다. 또 중앙지부터 지방지까지 25개 신문과 주요 방송을 모두 모니터링했습니다.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경제·사회·문화·민생에 관한 언론의 지적을 전부 체크했어요. 비서실직원들에게도 편향되지 않게 신문을 가리지 말고 확인하도록 했습니다. 대통령은 아침 수석회의에서 수석들에게 언론에 보도된 문제들을 수석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물었습니다."
또 어떤 방법으로 민심을 파악하셨나요.
"직원들에게 밥을 먹더라도 끼리끼리 먹지 말고 흩어져서 주변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으며 들어보기도 하고 묻기도 하라고 했습니다. 지방 출장도 보냈습니다. 대통령 역시도 직접 민생현장을 가시고, 자주 못 나가실 땐 주 3~4회 각계인사를 청와대에 초청해 직접 듣고 직접 국정에 대해 설명하셨어요. 정부 부처 업무보고도 청와대에서만 받지 않고 지방을 직접 찾아가서 받았습니다. 대통령이 언제나 국민 속에 들어가 계셨던 것이었죠. 기자회견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가지셨습니다."
"도청 안 되는 전화기로 대통령에 직접 보고"
민정수석으로서 독립성도 철저하게 보장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수석으로 임명될 때 비서실장으로부터 이미 비서관들이 내정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대통령께서 비서관들을 내게 직접 선정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새롭게 비서관들을 뽑았습니다. 그렇게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보니 대통령에게도 가감 없이 민생과 민심의 문제를 전달할 수 있었고, 국정이 어디서 왜곡되고 개혁이 어디서 좌초되고 부작용을 낳는지 명백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는 도청이 안 되는, 대통령과 직접 통화할 수 있는 전화기도 설치해 주었어요. 그래서 밤에도 대통령이 전화를 하기도 했고, 나 역시 급할 때 대통령에게 직통 보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반대편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국가의 정책이라고 하는 건 국가와 국민 전체를 상대로 하는 겁니다. 그런데 개혁을 한다든지 국정을 하다 보면 늘 불이익을 당하는 반대급부가 있지요. 그렇다면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불이익은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사전에 다 살펴서 협의하고 조절하면서 진행을 해야 합니다. 현 정부가 의료 개혁 문제로 의료계와 갈등을 빚고 있는데 내가 정책기획수석 때 의약분업을 추진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병원장, 개원의, 의대교수보다도 전공의가 불이익당하지 않도록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그들과 대화하느라 4개월 이상 걸렸지만, 의약분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윤석열 정부도 당위적 주장과 행정을 앞세우지 말고 전공의들과 대화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 같습니다."
DJ가 민정수석을 부활시킨 결정적 계기 중 하나는 '옷 로비 사건'이었다. 1999년 당시 외화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가 남편의 구명을 위해 고위층 인사의 부인들에게 고가의 옷 로비를 한 사건이다.
민정수석의 매우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대통령의 친인척 및 측근 관리입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나를 민정수석으로 임명하면서 특별히 당부하신 게 있습니다. '김 수석은 나와 오래 같이 지냈기 때문에 신뢰하고 있는데 두 가지만 특별히 부탁합니다. 하나는 내 자식들, 친인척 관리를 잘해 주시오. 또 하나는 측근 인사들 관리를 잘해 주시오.'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민정수석인 나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민원 청탁을 합니다. 최측근이나 친인척들을 관리해 주는 건 반드시 필요합니다.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그들을 보호해 주는 것이지요."
민정수석의 사정 기능은 DJ 정부 이후로도 계속 논란이 돼왔습니다.
"민정수석에게 사정 기능을 줘서는 안 됩니다. 그걸 준다는 건 검찰을 통제하겠다는 것이고, 그걸 통치의 수단으로 삼으려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사정은 검찰이, 경찰이 법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민정수석에 사정 기능 줘선 안 돼"
윤 대통령도 민정수석을 없앴다가 최근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민정수석이라는 게 왜 필요한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민심과 민생을 모르고는 국정을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국민은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국정에 참여하고 알 권리가 있습니다. 대통령의 이런 민주적 국정 운영을 보좌하는 것이 민정수석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이런 민주적 국정 운영에 대한 철학과 의지를 갖고 있는가, 그게 아니면 권위적인 통치를 하려고 하는가, 그게 관건입니다. 이에 따라 민정수석 업무도 달라집니다. 지금 윤 대통령도 본인은 아니라고 해도 소통이 부족하다, 민심을 모른다고 국민 대부분이 느끼고 있는 것 아닙니까.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민주적인 국민의 참여나 민생의 모든 현장을 똑바로 파악하려고 하는 그런 노력이 안 보인다는 비판인 것이지요. 민정수석 제도를 다시 둔다는 것은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의지, 자세를 변화시킨다는 의미가 돼야 할 겁니다."
검사 출신인 김주현 신임 민정수석이 임명된 것에 대해 우려가 있습니다.
"그분(김주현 수석)이 해왔던 역할을 보면서 내가 지금까지 얘기한 민정수석의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겠지요. 피의자를 주로 상대한 검찰의 생리가 민심을 제대로 살필 수 있는가, (민정 업무를 올바르게 하기에)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민정수석이 누군가 하는 개인적 측면보다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면서 그 조직은 어떻게 되어있고, 업무 규정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앞으로 그걸 잘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사를 할 때 동향과 동창, 측근은 절대로 피해야 합니다."
민정수석 임명 직후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장 등 수뇌부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대통령 부인은 공직자가 아닌 민간인이지만, 그러나 권력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에 많은 사람이 이해관계로 있게 마련입니다. 제2부속실을 둬서 도와줘야 하는 이유입니다. 감시하거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함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관리와 조력을 해줘야 합니다. 또 과거에는 '사직동 팀'이 있었지만 지금은 특별감찰관 제도를 두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특별감찰관 제도를 두어야 대통령이 올바로 국정을 수행할 수 있게 되고, 친인척이 보호받고, 청탁하려는 사람들도 조심하게 되지요. 그래서 이런 제도는 대통령이 원하면 하고 원하지 않으면 안 하는 게 아니라, 의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尹 대통령, 검찰 생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워"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도전을 공식 선언하기 직전이었던 2021년 6월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도서관에서 윤 대통령을 안내했던 이가 김성재 전 수석이었다.
3년 전쯤 윤 대통령이 이곳(김대중도서관)을 찾아와 화제가 됐었습니다.
"당시 제게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정책에 대해 듣고 싶다고 해서 오시라고 했습니다. 김대중도서관에 있는 전시실을 함께 둘러보고 얘기를 가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방문시간이 얼마나 되십니까'라고 했더니 '많이 듣고 싶습니다. 충분히 하십시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거의 4시간 반, 5시간 얘기를 나눴습니다. 내가 먼저 '왜 대통령을 하려고 하십니까'라고 물어보니 이념과 투쟁이 아니라 자유와 정의가 올바로 서고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되게 하고 싶다는 요지의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평생 검찰을 해 오셨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려면 법과 상식의 원칙 강조 이전에 국민의 마음을 품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쓴 국정노트와 개인수첩을 보면 항상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 국가 비전과 국민의 행복과 희망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담겨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소통을 많이 강조하셨는데 윤 대통령도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기는 등 초반엔 소통을 굉장히 강조했지만, 도리어 불통 이미지가 강해졌습니다.
"윤 대통령은 그만큼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려는 순수하고 의욕적인 의지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근본적인 건 대통령의 직무수행이라는 게 무엇인지 좀 더 숙고를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대통령직이라는 게 본인이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수석과 장관들이 일을 하게끔 만들어줘야 하는데 본인이 앞장서서 '나를 따르라'며 훈시하듯 회의하는 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수석회의나 국무회의 때 먼저 말하지 않고, 항상 끝까지 듣고 마지막에 정리해서 말했습니다.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길 정도의 의지가 있었다면 그만큼 마음의 문을 열고 국민 속으로 들어갔어야지요. 안타까운 건 윤 대통령은 검찰의 생리에서 벗어나 대통령으로의 전환이 잘 안된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또 행정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건 권위적인 겁니다. 일방이 돼버리지요. 경청하고, 대화하고, 타협하고, 민심을 알려고 해야 합니다. 이게 민주적인 정치와 국정 아닙니까?"
야당과의 대화도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야당과는 자꾸 소통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의회주의자로서 야당 총재와도 만나고 언제나 야당과 대화했습니다. 나 역시 민정수석을 지내며 야당과도 대화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했습니다. 지금처럼 싸우지 않았지요. 민주화운동, 광주 5·18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법, 의문사진상조사법, 제주 4·3특별법, 국가로부터 독립된 방송법과 인권법, 여성차별금지법 등 민주·인권에 관한 법률이 내가 민정수석일 때 대부분 제정됐습니다. 야당과 대화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국정을 수행하겠습니까. 야당과 대화하지 않으면서 국민과 대화한다는 건 어불성설 아닌가요."
오늘 들어보니 보좌하는 이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 윤 대통령 주변엔 올바르게 직언하고 그 마음을 헤아려 바르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요. 비판만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대통령이 지금처럼 이렇게 비난을 받으면 비서실장부터 수석을 포함해 모든 비서관들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비켜서서 대통령이 전부 혼자 비난과 비판의 포화를 맞고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사건이 문제가 되어 탄핵된 것도, 본인의 책임이 크지만, 대통령이 어떻게 사건 사고를 다 알 수 있습니까?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이 보좌를 잘 못한 것이지요. 대통령은 국민과 국가에 대한 무한 책임이 있는 겁니다. 그걸 미리 살피는 게 민정수석의 업무입니다. 그래서 민정수석이 누구인지보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자세와 의지가 정말 민주적으로 국민을 참여시키고 국민과 함께하겠다는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또 그걸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민정수석이 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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