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에서 환자 나와도 '22년 연속 인명 무사고'…숨은 비결은 [현장+]
종합통제센터·정비 격납고·객실훈련센터·항공의료센터 공개
"허용 가능한 레벨로 위험도 줄이고 관리해 나가는 것이 중요"
22년 연속 인명 무사고 운항. 수많은 승객과 화물을 싣고 하늘길을 다니는 특성상 안전이 중요한 항공사가 중시하는 타이틀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까지 줄곧 인명 무사고 운항을 이어왔다. 단순한 타이틀을 넘어 고객 신뢰와 수익으로도 직결된다.
지난 23일 대한항공의 안전 운항을 책임지는 핵심 시설인 서울 강서구 본사 종합통제센터(OCC), 정비 격납고, 객실훈련센터, 항공의료센터에 다녀왔다.
축구장 2개 크기 격납고에서 항공기 상태 점검
가장 먼저 대한항공의 정비 격납고를 방문했다. 대한항공은 인천과 김포·부천, 부산에 총 5곳의 정비 격납고 및 엔진·부품 정비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김포 격납고는 대한항공 본사 중심부에 있다. 길이 180m, 폭 90m의 초대형 시설로 축구장 2개를 합친 규모와 맞먹는다. 높이도 25m로 아파트 10층 높이에 달한다. 대형기 2대와 중·소형기 1대 등 항공기 3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대한항공은 항공기 정비 규모와 능력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정비 인력만 약 3100명이며 최신 장비와 시설을 갖춰 간단한 정비 작업부터 복잡하기 짝이 없는 종합 정비까지 가능하다.
철저한 정비 덕분에 기체 결함으로 인한 지연·결항 없이 계획된 시각에 출발하는 정시 운항률도 높다. 항공기 제작사 보잉이 매년 발표하는 전 세계 항공사 실적을 보면 대한항공은 2023년 99.17~99.84%(기종별 상이)의 정시 운항률을 보였다. 전 세계 항공사 평균보다 1~2%포인트 높은 수치다.
대한항공은 통상적인 정비 외에도 △비행 시간·이착륙 횟수별 항공기 엔진·부품 검사 및 부품 교환 △항공기·엔진·부품 전체에 대한 종합 점검 등도 하고 있다. 2015년에는 전담 조직인 정비지원센터를 개설, OCC에서 항공기 상태를 24시간 감시하고 정비 기술을 지원하는 한편 비정상 상황 발생 시 타 부문과 실시간 협조 체제를 통해 안전 운항에 힘쓰고 있다.
기내 환자 발생해도 '응급대처' 항공의료센터
항공의료센터도 있다. 1969년 3월 대한항공 창립과 동시에 만들어진 센터는 안전 운항을 책임지는 승무원과 임직원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곳이다. 지난해 본사 리모델링을 거치며 항공의료센터도 최신식 설비와 장비를 갖춘 의료 시설로 탈바꿈했다. 1차 의료기관인 의원급에서 보유할 수 있는 장비를 최대로 보유하고 있다는 게 대한항공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조종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력 관련 검사에 특화돼 있다. 거리에 따른 시력 검사와 안저촬영장비 등 60세 이하 조종사들이 매년 받아야 하는 항공신체검사를 책임지고 있다. 항공사 업무 특성 및 직종을 고려한 다양한 건강 증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임직원들의 마음 건강 검진 등 스트레스 관리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항공의료센터에 위치한 사내 심리상담실 ‘휴클리닉’에서 임상심리전문가 2인이 상주하며 심리 상담을 제공한다.
기내에서 응급 환자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지상 의료 시스템도 가동하고 있다. 숙련된 의사들로 구성된 ‘24시간 응급의료콜시스템’이다.
실제로 지난 2월 네팔을 향하던 항공기 기내에서 환자 승객이 발생했을 때 승객 중 의사를 찾을 수 없자 24시간 응급의료콜시스템을 활용해 환자의 생명을 구했다. 의료 조언에 따라 기내에서 응급처치를 했고, 네팔인 승객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의식을 회복할 수 있었다.
잠들지 않는 지상의 조종실 '종합통제센터'
대한항공 본사 A동 8층에 위치한 OCC는 24시간 잠들지 않는 '지상의 조종실'이다. 330평(약 1090㎡) 공간에 11개 부서 전문가 총 240여명이 3교대로 근무한다. 지난해 12월 리모델링을 통해 최신식 설비를 갖춘 OCC가 새로 문을 열었다. OCC는 항공기들이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운항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비정상 상황에 대응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OCC에 들어가면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스크린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가운데 있는 가장 큰 화면에는 현재 운항 중인 대한항공 항공기 항적이 실시간으로 나타난다. 그 왼편의 방송 뉴스 화면을 통해서는 테러, 재난, 자연재해 등 세계 주요 이슈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김포·인천국제공항의 지상 트래픽과 램프 운영 현황도 24시간 모니터링 한다. OCC에는 운항 중인 항공기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전화기가 설치돼 있다. 비정상 상황 시 이 전화기를 통해 운항승무원에게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받아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최근 런던발 싱가포르행 항공기가 상공에서 심한 난기류를 만나 승객 1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대한항공도 난기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비행 계획 단계에서부터 난기류 지역을 회피하도록 설계하고 회피가 불가능할 때는 지연운항까지 고려한다는 게 대한항공 축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날 OCC에서는 뉴욕발 인천행 082편 기장과 위성연결을 통해 난기류 상황을 체크하면서 현재 운항 고도를 유지하라는 대화를 주고 받았다.
OCC에는 안전 관련 운항관리센터(FCC) 정비지원센터(MCC) 탑재관리센터(LCC)와 고객서비스 관련 네트워크운영센터(NOC)까지 총 4개 센터가 모여 있다.
운항관리센터에서는 항로와 연료, 탑재량, 비행시간을 산출한다. 항공기가 계획대로 운항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운항승무원에게 안전 운항 정보를 지원한다. 최적의 항로를 구성해 비행시간을 단축하고 연료를 절감하는 역할도 맡는다. 정비지원센터에서는 운항 중 항공기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정비 기술을 지원한다. 정비 작업 스케줄을 조정하고 해외 지점에 정비사를 지원하는 업무도 이곳에서 맡는다.
탑재관리센터에서는 승객 좌석과 화물 탑재 위치를 결정하고 허용 범위 내 항공기 무게 중심을 관리한다. 네트워크운영센터에서는 항공기 및 운항·객실승무원 스케줄을 운영한다. 강설과 태풍 등 대규모 비정상 상황이 발생할 것을 예측하고 대응 전략을 세운다. 비정상 상황이 발생하면 전사 각 부문과 소통하는 역할을 한다.
객실승무원 양성 훈련센터…다양한 훈련 실시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대한항공 본사 건물 옆에 위치한 객실훈련센터다. 객실승무원을 양성하는 곳으로, 객실승무원 하면 흔히 각종 기내 서비스를 떠올리지만 이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승객들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요원 역할이다.
객실훈련센터는 항공기 도어(Door) 작동 실습실, 비상장비 실습실, 응급처치 실습실, 비상사태 대응 훈련 시설 등으로 구성돼 있다. 대한항공 객실승무원들은 항공기 기종별로 다른 도어 작동법을 정기적으로 훈련받는다. 환자 승객 발생 시 사용하는 의료 장비와 화재 진압 장비, 비상 탈출 장비를 점검하고 사용하는 방법도 익힌다.
가로 25m, 세로 50m 크기 수영장에서는 항공기가 바다나 강에 내릴 경우를 대비한 비상 착수 훈련도 진행한다. 실제로 대한항공 직원들이 아파트 2층 높이에서 비상 탈출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오는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공포감을 느낄 법한 높이에서 한치의 망설임 없이 슬라이드로 몸을 던진 후 뒤따라 내려오는 사람들의 구조를 돕는 모습을 눈앞에서 실제로 보게 돼 신기했다.
객실승무원은 기내 난동과 같은 불법 방해 행위에 대처하는 훈련도 정기적으로 받는다. 기내 난동 대응 실습장에서는 기내에서 난동을 부리는 승객을 제압하는 상황을 재연했다. 여러 차례 구두 경고 후에도 난동이 지속될 경우 대형 케이블타이 같은 포박장비와 테이저건을 활용해 승객을 제압했다. 객실승무원은 불법 방해 행위가 발생하면 사법경찰관 지위를 법적으로 부여받아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유종석 대한항공 안전보건 총괄 겸 오퍼레이션 부문 부사장은 "안전 관련 이벤트를 '제로(0)'로 만들 순 없지만 허용 가능한 레벨로 위험도를 줄이고 관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핵심 요소"라며 "절대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대한항공의 최우선 가치이기에 세계 최고의 안전한 항공사로서의 입지를 계속해서 다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cha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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