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통계학 전문가 “초저출산 韓, 너무 오래 일한다”… 출생격차도 꼬집어
“아이 낳아 연금 보존한다는 건 절대 좋은 대책 아냐”
“적은 수의 어깨가 더 무거운 짐 지는 ‘의존의 폭풍’ 예고”
인구통계학 전문가들은 한국의 초저출생 문제를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석학들은 한국 초저출생의 원인으로 장시간 근로를 꼽았다. 너무 오래 일해 육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고령층보다 태어나는 아이의 수가 적은 ‘출생 격차’가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이 월등히 높은 상황이라며 젊은 세대의 부양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는 ‘의존의 폭풍’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군나르 안데르손 스웨덴 스톡홀름대 인구학 교수는 2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초저출생 극복에 나선 각국의 경험,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세션에서 “한국은 장시간 근무하는 노동 구조이고, 이는 자녀 양육을 어렵게 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안데르손 교수는 이날 세션에서 1995년 세계 최초로 남성 육아 휴직제를 도입하는 등 저출생 극복의 모범 예시로 꼽히는 스웨덴과 한국을 비교했다. 그는 “스웨덴은 하루에 8시간 정도 근무해 아이를 데리러 가거나 부모가 아이 행사에 참석할 때 좀 더 지원이 가능한 형태의 노동 구조”라고 말했다.
스튜어트 지텔-바스텐 홍콩과학기술대 사회학·공공정책학 교수는 “저출생은 문제의 원인이 아닌, 파괴된 제도와 시스템의 결과물”이라면서 “개개인으로 돌아가 미시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봐야 한다”고 했다.
바스텐 교수는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원인이 연금이라면 연금을 뜯어고쳐야 한다”며 “아이를 낳아 연금을 보존하겠다는 것은 절대 좋은 대책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사람이 부족하고 아이가 더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청소년 실업률은 여전히 높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도 낮아 노동시장의 포용성이 부족하다”고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족 정책을 총괄하는 윌렘 아데마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20~29세 젊은 층들의 80%는 부모와 살고 있다”며 “스웨덴의 경우 젊은 층의 10%만 부모와 동거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육아, 사교육, 주택 비용이 너무 높다”며 “출산율과 관계가 있는 것은 취업률”이라고 덧붙였다.
윌렘 교수는 “정부와 기업이 저출생에 대한 고민을 함께해야 한다”며 “세종특별시의 경우 공무원, 연구원 등 양질의 일자리가 있고, 주택 가격도 서울에 비해 낮으니 다른 지역보다 평균 출산율이 높은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데이터 과학자이자 영화 제작자인 스티븐 쇼 감독은 ‘초저출생이 가져올 미래 변화… 20년 뒤 세계,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세션에서 “퇴직자는 계속 늘어나 고령화되는데 상대적으로 출생하는 아이의 수가 적은 것을 ‘출생 격차’라고 볼 수 있다”며 “오늘날 한국의 출생 격차는 69%에 달해 다른 국가들 보다 굉장히 큰 수준”이라고 말했다.
쇼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birth gap(출생 격차)’을 통해 각국의 출산율 격차 원인 등을 분석한 바 있다. 그는 “언제 아이를 낳을 것이냐는 질문에 모든 국가의 젊은이들은 ‘아직은 아닌 것 같다’는 답변을 했다”며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을 적기가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은 오히려 희소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젊은이들의 답변은 아직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가임기 여성을 설문 조사하면 절반 이상은 아이를 갖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혼부부에게 주택자금을 빌려주고 출산 수에 따라 이자와 원금을 탕감해 주는 ‘헝가리식 저출생 대책’에 대해 쇼 감독은 “헝가리 가정들을 인터뷰했을 때 세 자녀를 낳겠다고 약정할 경우 집을 구매할 때 정부가 보조해 주는 제도는 도움이 된다고 했다”면서도 “제도에 단점이 있다면 자녀를 가지지 않는 사람들에겐 재정적 부담이 얹어진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헝가리식 저출생 대책은) 세제 부담이 있고,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이 있을 수 있는 정책이지만, 초저출생을 해결하려면 이러한 혁신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글이 선정한 미래학 분야 최고 석학인 토머스 프레이 다빈치연구소장은 “저출생을 기후변화와 엮어 아이가 줄어들어야 환경이 좋아진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며 “이것이 오히려 큰 문제를 야기한다는 문제 인식을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프레이 소장은 ALC 참석을 앞두고 “한국의 고요한 산부인과 병동, 조용한 놀이터, 빈 학교 교실은 세계가 직면한 초저출생을 상징하는 장면”이라며 “여기에 고령화 사회의 무게까지 겹쳐 더 적은 수의 어깨가 더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의존의 폭풍’을 예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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