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장례부터 종교의식까지… 의례는 ‘사회의 접착제’ [북리뷰]
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 지음│김미선 옮김│민음사
인간 역사와 함께한 ‘의례’
인류학자의 흥미로운 탐구
유럽의 ‘불 건너기’ 축제처럼
의식은 때론 고통 따르지만
심리적 위안과 소속감 제공
뇌가 자극받고 보상 만든 것
“의례, 본능이자 해방구 역할”
돌잔치에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난다.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인생을 살지만, 그 시작과 끝은 대체로 이렇게 요약된다. 삶의 중간중간에도 사람들이 모여 축하와 위로를 건네는 자리는 언제나 존재한다. 입학식에서 함께 학교에 다닐 친구들을 만나고 졸업식에서 헤어짐에 눈물짓고 결혼식에선 주위 사람들의 축하 속에 부부의 연을 맺는다. 이보다 일상적으로는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생일에는 케이크를 둘러싸고 축하 노래를 부른다. 사회가 점차 파편화되고 개인화되는 가운데에도 어째서 우리의 주말은 이런 의례들로 가득할까.
근대 사회학의 선구자인 에밀 뒤르켐은 이러한 의례가 없다면 사회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에 이르러 인간 사회에서 더욱 공고해지고 체계화되는 의례를 바라보면서 이 책의 저자이자 실험인류학자인 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는 여기서 나아가 의례를 인간의 본능이라고 여기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의례적인 종이다.”
저자가 말하는 의례의 핵심은 ‘무의미’에 있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이라는 점에서 의례는 습관과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동작이 상징적 의미를 지니며 보통 그 자체를 위해 수행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를 닦는 습관은 그 목표가 뚜렷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만 의례는 사실 인과성이 보이지 않는다. 차례를 지낼 때 절을 하는 행위나 결혼을 할 때 상대방의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끼워주는 절차는 실질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 외에도 수많은 동물이 이런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돌고래는 동시에 물 위로 나오면서 일종의 군무에 참여하고 혹등고래는 단체로 노래를 부른다. 기린은 구애할 때 암수가 나란히 걸으며 긴 목을 비비고 탱고와 유사한 춤을 춘다. 코끼리는 죽은 동족을 애도하고 경의를 표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인간을 포함해 동물들이 의례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자체로는 어떤 성과나 보상이 나오지 않지만, 이는 우리에게 짝을 만나거나 공동체를 형성하거나 상실과 불안 같은 감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정신적 여유분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 정신적 여유분은 곧 우리가 생산적이거나 지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여력이 된다. 여타 종보다 인간에게 의례와 의식이 많은 까닭도 지적 능력이 월등한 인간이 그만큼 많은 정신적 여유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사회에서 스트레스와 불안이 집중된 생활 영역에서 의례화가 많고 미신이 많아진다. 이를테면 운동선수나 도박사에게는 수많은 징크스와 미신이 있다. 모두 실제 경기나 도박에는 불필요한 행위지만 경기장과 카지노 등 이들을 둘러싼 공간이 주는 엄청난 압박감으로부터 의례가 해방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직접 뛰어든 전 세계의 의례 현장에서 의례가 우리 사회의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것을 목격한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의례는 물론 종교적 의식이다.
일례로 힌두교는 의식에 참석할 때 제물을 태우고 남은 재나 주홍색 가루를 사용해 이마에 찍는 표식인 틸라크를 받는다. 간혹 의례는 고통이나 압박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리스와 불가리아, 스페인 일부 지역에서는 맨발로 불을 건너는 ‘불 건너기’ 의식이 축제처럼 시기마다 열리고 타이푸삼에서는 온몸에 500개에 달하는 피어싱을 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다지기도 한다. 외지인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의식들은 사실 과학적으로도 높은 결속 효과가 있다. 인간을 포함해 동물은 강한 자극과 고통을 이겨내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우리는 특정한 자극을 이겨냈을 때 이에 따르는 보상을 얻은 무수한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강한 자극은 물질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우리에게 심리적 위안과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라는 심리적 보상을 제공한다. 높은 수준의 충성을 요구하는 집단은 대가가 큰 입단식을 치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 세계적으로 군사 조직은 훈련 체제에 고강도 의례를 포함하고 정예 부대일수록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동반한다. 훈련이라는 강한 자극을 받은 뇌가 충성심이라는 보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류 역사와 함께한 의례도 한 차례 위기를 맞은 시기가 있다.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다. 단절과 디지털 전환 속에 대면 행사는 축소됐고 일각에서는 이를 의례의 위기이자 사회의 위기로까지 바라봤다. 그럼에도 인간은 의례를 포기하지 않았다. 온라인 입학식과 졸업식, 미사와 예배 등 2020년대에 새롭게 탄생한 의례는 이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보여준다. 점점 더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의례는 얼마 남지 않은 쓸모없지만 의미 있는 행동이다. 의례는 우리에게 가장 마지막까지 남을 ‘인간다움’이다. 408쪽, 2만 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안전핀 뽑았는데… 훈련병은 왜 수류탄을 안 던졌나
- 송대관 “100억 집 날리고 월세살이…죽어야 하나 고민”
- ‘징역 2년’ 조국 “盧, 검찰·언론에 조리돌림…어떤 것인지 나는 안다”
- 엔비디아 “주식 10대 1 분할”…시간외 주가 1000달러 돌파
- 입가에 피범벅…피랍 7개월째 이스라엘 여군인질들 영상 공개
- 문다혜-청 경호원 ‘금전거래’ 정황… 검찰, 전 남편 ‘특혜채용’ 연관성 집중
- “김정숙 참석 인도 축제는 지자체 행사… 영부인 참석 격 안맞아”
- 코미디언 홍인규 “골프 유튜브 월 5000~6000만원 번다”
- 버닝썬 증거 노렸나…금고만 쏙 들고나간 구하라 금고 절도범
- ‘박근혜 문고리’ 정호성, 대통령실 비서관으로 발탁…논란 불가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