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대회 나가면 내가 이긴다”…호랑이 등에 올라탄 한동훈
반윤과 비윤 사이, ‘현재 권력’ 尹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 관건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전당대회에 나가면 이긴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달 초 가까운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국민의힘 전당대회 이슈가 대화 주제에 오르자 이같이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출마 의사를 내비친 것은 물론 출마하면 당선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총선 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한 전 위원장은 여의도를 향해 성큼 발을 내딛고 있다.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을 내려놓은 후 잠행을 이어가던 그는 최근 다시 정국의 중심에 섰다. 시민들이 자주 찾는 공공장소에서의 목격담을 통해 존재감을 이어가는 한편 전임 비대위원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과의 '회동 정치'로 꾸준히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메시지 정치'를 재개하며 공개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해외 직구 규제 정책'을 비판했다. 이에 '한동훈의 복귀'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무엇이 그의 결심을 굳히게 했을까. "정교하고 박력 있는 리더십이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만날 때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정교해지기 위해 시간을 가지고 공부하고 성찰하겠다." 위원장직을 내려놓은 지 열흘 만에 그는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당초 시간을 갖겠다는 의미는 당분간 정치권과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읽혔지만, 최근 정부·여당의 움직임이 그의 재등판을 앞당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총선 직후 한 전 위원장은 전당대회에 불출마한다는 입장이 확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그에게서 최근 미묘한 입장 변화가 감지된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출마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변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의 결심에는 여러 변수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스로 민심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고 판단해 전당대회 출마 결심을 굳혔을 가능성도 있고,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떠밀리고 있을 여지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한 전 위원장이 출마한다면 '한동훈 대세론'이 불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여기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라는 '한동훈 체제'가 현실화할 경우 '현재 권력' 윤석열 대통령과 '미래 권력' 한동훈 전 위원장의 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복잡미묘한 고차방정식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與 지지층 반수 이상, 한동훈 당대표 지지
"민심이 부르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고, 민심이 부를 때 거부할 수 없는 게 정치 아니겠나."(장동혁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 5월17일 SBS 라디오 인터뷰), "지지율이 깡패라고 생각한다."(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5월17일 YTN 라디오)
여당 지지자들 사이에 한 전 위원장에 대한 지지율은 압도적이다. 여론조사공정이 5월20~21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당대표로 가장 적합한 인물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 전 위원장이 29.1%, 유승민 전 의원이 27.8%로 나타났다. 다음은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8.5%), 나경원 동작을 당선자(6.7%), 안철수 의원(6.0%), 윤상현 의원(2.5%) 순이었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한 전 위원장에 대한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국민의힘 지지층 54.8%는 한 전 위원장이 차기 당대표에 적합하다고 응답했고 이어 원 전 장관(13.6%), 나경원 당선자(9.5%), 유 전 의원(6.4%) 순이었다.
이보다 앞서 에이스리서치가 5월8~9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 중 자신을 국민의힘 지지층이라고 밝힌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당대표 후보별 적합도를 분석한 결과, 한 전 위원장이 48%를 기록했다. 다음은 원희룡 전 장관(13%), 나경원 당선자(11%), 유승민 전 의원(9%), 안철수 의원(6%), 윤상현 의원(3%), 권성동 의원(3%) 순이었다.
최근 민정수석 부활과 맞물려 단행된 검찰 인사, 총선 백서 등 정부·여당 움직임이 한 전 위원장의 복귀에 명분을 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2년여 만인 5월7일 그동안 대통령실의 민심 청취 기능이 약했다며 민정수석실을 부활하고, 그로부터 엿새 만에 검찰 고위직 인사를 단행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의혹 및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지검장과 1·2·3·4차장검사까지 지휘라인이 모두 교체됐다. 중앙지검은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국면에서 대검 대변인을 역임하며 '윤석열 라인'으로 분류돼온 이창수 신임 지검장이 총괄하게 됐다.
"인사는 인사, 수사는 수사"라며 원칙 수사를 강조한 이원석 검찰총장의 참모인 대검찰청 부장(검사장)도 대거 물갈이됐는데 이른바 법무·검찰 빅4(중앙지검장·검찰국장·반부패·공공수사부장)도 양석조 반부패부장을 제외하고 모두 교체됐다.
특히 기존 '윤석열 라인'이던 법무·검찰 핵심 보직에서 한 전 위원장과 가까운 인사들을 제외시킨 것이 눈에 띈다. 이에 민정수석 부활과 '친한(親한동훈) 색채를 뺀 검찰 인사가 한 전 위원장의 향후 정치 입지를 좁히려는 물밑작업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총선 참패 원인을 분석하기 위한 총선 백서 작업을 두고도 '한동훈 책임론'을 부각해 한 전 위원장의 향후 진로를 막으려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많다. 앞서 총선백서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조정훈 의원이 당권 도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심판이 아닌 선수로 뛰고 있다'는 당내 반발이 확산됐다. 한 전 위원장의 책임을 담는 대신 대통령실의 책임은 제대로 다루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논란이 커지자 조 의원은 "당대표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입장문을 내고 "백서는 절대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을 공격하지 않고, 국민의힘만 생각하며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백서 발간 자체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이가 많고 일각에서 무용론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의 분석도 여의도 정치권의 해석과 결이 맞닿아있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용산의 빌드업 과정을 보면 민정수석 부활과 검찰 인사 등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총선이 끝나자마자 한 전 위원장에게 총선 책임을 덮어씌우는 모양새"라면서 "한 전 위원장 입장에서는 (용산에서) 정치적 행보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자기 방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조기 등판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인사가 하나의 신호였고 한 위원장이 위협으로 느낄 수 있었다. 대권이든 뭐든 일단 살아있어야 가능하니 우선 당대표라는 권력을 갖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당대회 룰 개정 여부가 핵심 변수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이르면 6월말이나 7월초에 열릴 예정이다. 당내에서는 수도권 중진이자 비윤계로 분류되는 나경원 당선자와 안철수, 윤상현 의원 등이 당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정권 심판 민심을 보여준 총선 결과를 볼 때 영남권보다는 수도권에, 친윤(親윤석열)계보다는 비윤(非윤석열)계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원외에서는 한 전 위원장과 유승민 전 의원 등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뿐 아니라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을 맡고 있는 잠룡들까지 가세해 주도권 싸움에 나서는 모양새다.
핵심 변수로는 현재 당원 투표 100%로 치러지는 전당대회 룰이 지목된다.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볼 땐 국민의힘 당원 100%로 전당대회를 치르면 한 전 위원장의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 50%·당원 50%'로 룰을 바꿀 경우에도 누구와 경쟁해도 한 전 위원장이 우세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물론 전당대회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번 당대표 선거는 공천권이 달린 선거가 아니기 때문에 '친한'(親한동훈)계가 득세하기보단 의원들이 대체로 관망세를 보이지 않겠나"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여당에서는 100% 당원 투표로 돼있는 것을 고치지 않는다면 국민의힘이 수직적 당정 관계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친윤계는 기존 룰을 선호하지만, 비윤계에서는 당심보다는 민심을 반영할 수 있도록 룰을 수정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실제로 당 원외조직위원장들은 전당대회 룰을 '국민 50%·당원 50%'로 바꿀 것을 당에 요청하기도 했다.
차기 대권을 노린다면 한 전 위원장이 전당대회 출마를 고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의힘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따르면 대선 경선 출마자는 선거 1년6개월(2025년 9월8일) 전에 당대표를 사퇴해야 한다. 총선 기간에 한 전 위원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 국민의힘 의원은 "당대표가 되더라도 내년 9월엔 사퇴해야 하는데 당권으로 그치기엔 아까운 인물이다. 지금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당권을 통해 대권을 잡을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한동훈 체제'가 현실화하면 윤석열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이 어떤 관계를 설정할지에 주목한다. 총선 패배 직후 윤 대통령이 당 지도부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식사 자리를 제안했으나 한 전 위원장이 건강 회복을 이유로 거절한 것을 두고 그가 비윤도 아닌 반윤(反윤석열)계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차기 당권 주자가 되면 총선 패배에 따른 당내 혼란을 수습하고 여권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와 협업해야 하는 일은 필수가 된다. 친윤 성향을 가진 한 국민의힘 당선자는 "한 전 위원장이 우리 당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는 당원들의 의견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지금은 정부와 당이 어려운 상황이니만큼, 당대표에 나설 경우 용산과의 관계 회복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윤-한 갈등 또 불거지면 尹 레임덕 가속화
윤 대통령 또한 한 번 더 당대표와 대립각을 세울 경우 레임덕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근 거친 말로 한 전 위원장을 견제하는 것을 두고 윤 대통령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는 시각이 있지만 여권 잠룡들이 설전을 벌이는 상황이 대통령 레임덕을 가시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전 위원장이 당대표가 되면 윤 대통령이 탈당할 것이라는 정치권 일각의 풍문에 친윤계가 "그럴 일은 절대 없다"며 일제히 선을 긋고 나선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읽은 데 따른 대처로 보인다.
유승찬 대표는 "윤 대통령이 과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현 개혁신당 대표)와의 선거연합을 깨서 (총선에) 패배했는데, 한동훈 전 위원장과도 깨질 경우 친윤 세력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한 전 위원장이 당대표에 당선됐는데도 용산이 끝까지 손을 잡지 않는다면 분당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정부·여당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만큼 대통령이 잘못하는 데는 당의 책임도 있다. 당과 정부가 한 몸이라는 느낌이 없기 때문에 비윤, 반윤 등이 나오는 것이다. 앞으로 당이 좀 더 주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용산 역시 당의 위상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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