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볼래]민주주의 무너지나…쏟아지는 '위기' 경고음

CBS노컷뉴스 김민수 기자 2024. 5. 2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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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6일 대선 결과에 불복해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연방의회 의사당에 난입해 무력 점거 시위를 벌이는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 연합뉴스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사건이 발생했다. 2020년 말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승리한 결과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불복, 이듬해 1월 6일 미국 워싱턴의 연방의회 의사당 건물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다. 극우단체 주도로 벌어진 난입 사건은 곧 진압됐지만 방송을 타고 전 세계에 실시간 중계 된 이 사건은 미국인들은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겼다.

냉전시대 자유주의 진영을 대표하며 2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 국가로, 세계의 경찰 국가로 급부상한 이래 미국의 민주주의가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에게 삽시간에 점령당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일순간 무너지면 세계에 미칠 파장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 분명했다.

1934년 2월 6일. 청년애국단, 재향군인회, 프랑스행동 등에 속한 수만 명의 프랑스 젊은 남성들이 국회의사당을 습격했다. 이들은 의회 해체와 우파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총을 쏘는 등 폭력을 자행했다. 수많은 이들이 사망하고 다쳤다. 이와 유사한 일이 80여 년 뒤 미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원제: Tyranny of the Minority)의 공저자인 스티브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프랑스와 미국의 의회 폭력 점거 사례를 들며 '부유한 민주주의'와 '오래된 민주주의'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학계의 정설이 깨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민주주의가 제 기능하기 위해서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결과를 존중하고,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반민주주의 세력과 절연해야 한다는 세 가지 규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암살자'인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며 반민주 세력인 극단주의자들을 두둔하고, 심지어 정치적으로 이들을 이용한다. 그들은 극단주의 세력을 묵인하거나 은밀하게 지원하면서 민주주의 기본 원칙들을 파괴한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그러면서 민주적이라고 알려진 수 많은 제도는 사실 사회적 소수자가 아닌 극단적 소수에게 혜택을 부여하며 반동을 꿈꾸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준다고 진단한다.

보수단체 집회

정치철학자 제이슨 브레넌 역시 저서 '민주주의에 반대한다'에서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이루어야 할 가치이자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민주주의가 훌륭한 정치 체제이기는커녕 오히려 해롭다고 말한다.

책에서 민주주의 선거제도의 맹점을 지적하며 유권자를 호빗·훌리건·벌컨 등 세 유형으로 분류한 그는 이상적인 민주주의 이론은 시민이 '벌컨'처럼 아주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이라 전제하지만, 실제 대부분의 시민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치 지식도 많지 않은 비투표자 '호빗'이거나 정치에 관해 확고한 신념을 지녔지만 정치 지식을 편향된 방식으로 소비하는 정치적 성향이 강한 시민들과 대다수 정치인들이 훌리건에 속한다고 진단한다.

민주주의는 결국 호빗과 훌리건이 주도하는 규칙이기 때문에 이론처럼 완벽하게 운영될 수 없다면서, 모두가 평등한 1인 1표를 통해 공직자를 선출하는 경우 다수의 유권자가 잘못된 정치 지식이나 편향된 생각을 바탕으로 투표해 모두에게 해로운 공직자를 선출하게 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18~19세기 사상가들은 민주주의가 '다수의 독재', '다수의 횡포'를 가져올 것이라 우려했지만, 미국 중심의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정치적 다수가 권력을 차지하지 못하고, 또한 선거에서 이기고도 통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스티브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가 미국에서 정치적 소수는 민주주의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헌법 덕분에 다수를 계속해서 이길 수 있다고 지적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제이슨 브레넌은 "소수가 때로 다수를 지배할 수 있다. 소수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소수의 지배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도구가 극단주의자나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소수의 손에 들어갈 때 '특히' 위험하다"라고 꼬집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더 탄력을 받고 있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월터 쇼렌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은 저서 '민주주의의 모험: 대립과 분열의 시대를 건너는 법'에서 민주주의는 완벽한 정치 체제가 아닌 수많은 장애물과 모순을 안고 있기에 새로운 모험을 통해 장애물을 들어내고 모순을 해결해가면서 점진적으로 발전해가는 체제라고 정의한다.

미국적 민주주의 가치를 따르는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신 소장은 대한민국이 오랜 기간 위험을 무릅쓰고 권위주의 체제와 싸워 민주화를 이루어냈지만 지금도 비자유주의, 포퓰리즘, 정치적 양극화와 같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들과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신 소장은 진영 논리가 판을 치고 사회는 분열되어 있으며 정치는 실종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 정직한 현실 인식이라고 진단한다.

역사학자 윌리 톰슨은 그의 저서 '20세기 이데올로기'에서 20세기 인류가 겪은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대공황, 냉전, 정보화 혁명 등 가장 큰 발전과 함께 가장 끔찍한 테러와 대량 학살을 경험한 시대였다고 지적하면서, 이들 이데올로기와 결합해 정치적 도구로 쓰였던 배타적 민족주의가 오늘날 21세기 다시 득세하며 평화가 품은 다문화와 다양성, 이를 포용하는 공동체 의식과 관용은 더욱 희박해지고 있다며 우려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자유주의'에서 찾았다.

그는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는 엄밀하게 말해서 민주주의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선적으로 자유주의 제도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다. 더욱이 경제성장과 근대 세계의 번영에 훨씬 더 연관된 것은 민주주의라기 보다 자유주의"라고 지적했다.

다만 19세기부터 산업혁명과 자유무역, 프랑스 혁명 등의 물결을 타며 세계사의 주도적 사상으로 급부상한 개인과 개별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와 관용(tolerance·톨레랑스)을 주요 가치로 삼는 고전적 민주주의 사이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고 부연했다.

결과적으로 자유주의가 보장한 경제적 자유를 극단적으로 확장한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전 지구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만들어냈고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폭탄을 맞았다. 이후 세계는 희미해진 민족주의 틈새를 파고들어 자유주의에 대한 교조화로 탄생한 신자유주의가 남긴 생채기로 인해 여전히 우리 사회와 전 지구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철학자 애드먼드 포셋은 저서 '보수주의'에서 보수주의자를 다음의 두 부류로 구분한다.

1945년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만들고 떠받치는 데 많은 일을 한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가 한쪽이고, 초시장주의를 견지하면서 동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국민(대중)'의 이름으로 대변하는 비자유주의적 강경우파가 다른 한쪽이다. 후자는 타자에 대한 낙인찍기, 사회적 다양성의 부정과 내부 적에 대한 사냥, 배타적 민족주의 등을 보여왔다.

대한민국을 보자. 우리의 입장에서 민주적 기본 원칙은 다음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1990년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준다 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는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의 내부체제를 파괴·변혁시키려는 것"이라고 설시했다.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민주주의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 기본 원칙에서 △선거 결과에 승복할 것 △권력 쟁취를 위해 폭력을 사용하지 말 것 △극단주의 세력과 동맹을 맺지 말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2000년대 이후 대선을 비롯한 선거에서 신자유주의, 뉴라이트, 보수 우파적 성향을 띤 세력의 선거 불복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투표 조작설이 대표적이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극단주의 단체와 협력하는 사례도 쉽게 볼 수 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촉발하는 남은 하나는 폭력이다. 직접 폭력이나 국가 권력을 이용한 폭력 등 그 방식은 다양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미국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단주의 행보를 말하는 '트럼피즘'(Trumpism)으로 폭력적 극단주의가 대표되는 분위기다. 한국은 20세기 미국 등에서 주목을 끌었다가 사라진 '뉴라이트'가 다양한 세력을 규합해 변용되어 한국 정치·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뉴라이트 사상은 케인스주의의 복지국가론을 비판하면서 공공정책을 위한 시장기구의 부활과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두 가지의 뚜렷한 주장을 담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극단주의, 신자유주의, 보수주의, 반공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식민지 근대화론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미국·영국 등의 뉴라이트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변용된 사상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인 보수주의와도 결이 다르다.

손석춘 교수는 저서 '손석춘 교수의 민주주의 특강: 보수와 진보 공동의 정치 철학'에서 신자유주의의 보편화로 극명하게 드러난 '자본세'가 인류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몇 년에 한 번 꼴의 투표 만으로 민주주의를 이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우리가 성숙한 사회를 이루려면 더더욱 민주주의가 어떻게 출현해서 성장하고 위기를 맞았는지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 모두 동의하는 공동의 정치 철학을 담고 있다"면서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보통 선거권과 대의 제도와 같은 절차적 측면이나 권력이 행사하는 방식으로만 좁게 생각하거나 국가 구성원 대다수가 민주주의를 탈역사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체제에서 특권과 기득권을 누리는 세력이 바라는 바라고 강조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적 기본 가치와 원칙을 파괴해 체제를 흔들고 자신들의 권력을 세력화, 지배화 하려는 시도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모든 인민(시민)이 통치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참고문헌= '민주주의에 반대한다'(제이슨 브레넌),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보수주의(애드먼드 포셋), '민주주의의 모험'(신기욱), 손석춘 교수의 민주주의 특강(손석춘),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김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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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민수 기자 maxpres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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