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섹스, 거짓말 그리고 인과응보
법률 전문가들은 기업 장부 조작 혐의와 관련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에서 오랫동안 그의 ‘청부 해결사’ 역할을 담당했던 마이클 코언이 검찰측의 핵심 증인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물론 코언의 증언이 검찰측 공소사실을 입증하는데 큰 몫을 하겠지만 재판의 결과를 좌우할 결정적 증언은 두 명의 여성에게서 이미 나왔다. 트럼프는 종종 여성을 폄훼하고 비하했으며,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거나 비방하고 억압했다. 여성 혐오론자를 연상케 하는 그의 평소 언행을 지켜본 미국인들이라면 호프 힉스와 스토미 대니얼스의 증언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트럼프의 최측근이었던 호프 힉스 전 백악관 공보국장의 증언은 검찰측이 공소유지를 위해 필요로 하는 두 가지의 불가결한 범죄사실 구성요인을 제공했다. 첫째 그녀는 2016년 트럼프의 음담패설이 담긴 ‘액세스 할리우드(미국 TV프로그램)’ 테이프가 불러일으킨 파문으로 위기를 맞은 트럼프 선거캠프의 혼란상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곤혹스런 성추문이 추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트럼프 진영은 서둘러 시한폭탄에 다름 없는 상대 여성들의 입막음에 나서야 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캠페인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입막음 돈’ 지급의혹을 은폐해야 했고, 결국 이것이 중범죄에 해당하는 기업장부 조작과 선거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사실을 구성하는 동기로 작용했다.
둘째 힉스는 입막음 돈을 은폐한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포르노 스타인 대니얼스에게 돈이 지급됐다는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트럼프는 이 문제가 선거 직전에 불거지면 골치가 아프니 지금 처리해야 한다고 지시했다”는 게 힉스의 증언이다. 대니얼스에게 돈을 지급한 것은 부인인 멜라니 트럼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트럼프측 변호인의 반론은 힉스의 증언으로 설득력을 잃었다. 증언대에서 흘린 힉스의 눈물과 불편한 모습도 증언의 신뢰도를 높였다. 형사재판에서 자신의 전 상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따른 복잡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힉스의 증언이 트럼프에게 충격을 주었다면 대니얼스의 증언 내용 및 그녀가 보여준 태도는 메가톤급 파괴력을 과시했다. 그녀의 가장 강력한 증언은 반대신문 중에 나왔다. 대니얼스의 충실한 대답과 솔직하고 재치있는 태도는 배심원들의 신뢰를 얻기에 충분했다.
이번 재판의 모두진술에서 트럼프의 변호인은 대니얼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그녀의 증언은 더없이 중요했다. 증인석에서 대니얼스가 한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혐의의 본질과는 상관없지만, 트럼프는 처음부터 포르노 배우의 신뢰성을 공격 포인트로 삼을 것을 주문했고, 실제로 그의 변호인단은 그녀가 위증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그녀를 주 공략대상으로 삼은 것을 후회할지 모른다. 대니얼스와 트럼프의 신뢰성 경합에서 배심원단은 거의 틀림없이 포르노 여배우의 손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법정증언만으론 부족했는지, 대니얼스는 코언이 대납한 입막음 돈을 되갚았다고 시인한 트럼프의 녹취발언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대니얼스는 트럼프와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혔고, 배심원단은 그녀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재판’의 저자인 놈 아이젠은 필자에게 “대니얼스의 증언은 입막음 돈 지급이 지연된 속사정을 비롯해 코언의 법정진술을 뒷받침해주었다”고 말했다. 코언은 “대금 지급이 연기된 것은 트럼프가 이 문제를 선거가 끝난 뒤로 미루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힉스의 증언이 뒤이어 나온 대니얼스의 증언과 연결되면서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이 어떻게 기업장부 조작과 선거법 위반 행위로 이어졌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코언은 입막음 돈 지급이나 지급 목적을 입증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증인이 아니다. 물론 코언은 이번 재판의 본질인 트럼의 기업장부조작 혐의를 입증하는데 필요한 결정적인 증언을 했다.
요약하자면 힉스와 대니얼스는 코언이 증언석에서 해야 할 가장 어려운 일의 상당 부분을 대신 해주었다. 코언이 아니라 그들이 트럼프를 꼼짝 못하게 묶어 놓았다. 코언은 마무리 투수의 역할을 맡은 셈이다.
재판이 종료될 때까지 앞으로 수 주가 걸릴 것이다. 검찰측과 변호인측 모두 추가 증거제시와 최종진술을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두 여성의 증언이 나오기 이전에 비해 트럼프가 유죄평결을 받을 가능성은 한결 높아졌다. 트럼프가 유죄선고를 받는다면 그 공로의 상당부분은 트럼프의 탈선행위를 가린 커튼을 활짝 열어젖힌 두 명의 솔직하고 용기있는 여성에게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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